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무상’ 은 커녕 ‘쪽박’ 이라도 깨지 말라

중앙일보 2011.02.24 00:21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우리 사회에서 어느덧 정치가 아닌 게 없게 됐다. 여야가 요즈음 격렬하게 벌이는 복지논쟁만 해도 그렇다. ‘상주보다 곡쟁이가 더 서럽게 운다’더니 복지야말로 가난한 당사자보다 정치인들에게 생사의 문제가 된 것이다. 동남권신공항이나 과학비즈니스벨트 선정 문제만 해도 정치를 피해갈 수 없게 됐다. 기독교계가 반발하는 이슬람채권법은 또 어떤가. 이제 정치는 사회, 경제, 교육, 종교와 딱히 경계선이 없을 정도로 일상적인 것이 됐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문제부터 비롯해 청소년들의 비만을 걱정하고 학교급식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전세대란과 대학등록금 문제까지 챙길 정도로 정치의 영역이 넓어진 것이다.



 최근 들어와 정치가 이처럼 초스피드로 자기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혹시 여당과 야당이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서로 격렬하게 다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결과가 아닐까.



 정부와 여당은 자랑할 만한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의 공로를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여러분, 우리가 집권한 다음 얼마나 행복해졌는지 알고 있지요? 여러분이 더욱더 안전해졌고 경제가 좋아졌다고 느낀다면, 정치를 잘해온 덕분입니다.” 이를 맞받아치는 것은 당연히 야당의 몫이다. “여러분, 힘들지요? 그 모든 게 정부·여당이 정치를 잘못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집권을 하면 여러분을 반드시 행복하게 해 주겠습니다.”



 정치인들의 요란한 수사와 자기선전이야말로 행불행을 막론하고 모든 운명을 만들어내는 ‘운명의 여신’으로 정치를 생각하도록 만든 원인이다. 정치란 작을수록 아름다운 법이다. 한데 공룡처럼 커지니 두려운 느낌마저 든다.



 이제 선거가 다가온다. 물론 대선과 총선은 내년의 일이지만, 그건 일반인들의 생각일 뿐 정치인들에겐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나라를 단순한 ‘지상의 왕국’이 아니라 무릉도원과 같은 ‘천상의 왕국’으로 만들겠다는 거대하고도 달콤한 약속을 경쟁적으로 내놓을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정치인들은 좀더 정직해져야 한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정직한 정치인이라면, 자신들이 하는 일이 ‘돌’을 ‘빵’으로 변하게 하거나 ‘물’을 ‘술’로 변하게 하는 기적과 같은 것이 아님을 국민들에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빵’을 ‘돌’로 변하게 하고 ‘술’을 ‘물’로 변하게 한 적이 많았음을 실토하며 용서를 구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가난에 찌들어 살고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행복한 신데렐라로 만드는 기적을 행할 수 없다는 사실도 국민 앞에 솔직히 밝혀야 한다. 정치인 가운데 누가 있어 옛날에 바다를 가른 모세의 기적을 재현할 수 있으며, 또 어떤 정치인이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우렁 각시’처럼 일터에서 돌아오면 공짜로 집 안에 밥상을 차려줄 수 있으랴. 오히려 평지에 풍파를 일으키지 않으면 다행이고, 또 ‘공짜’로 주지 않아도 좋으니 국민들의 ‘쪽박’이나 깨지 않으면 도와주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미다스왕’처럼 자신의 손에 닿으면 무엇이든 황금으로 만드는 기술을 가진 연금술사가 아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홀든처럼 사람들이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도록 테두리를 쳐놓고 파수꾼 역할을 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다. 인기는 없을는지 몰라도, 바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정치인의 정도(正道)일 터다.



 정치인들이여! 국민들에게 정치로부터 무엇인가 받는 일 말고도 아름답고 소중한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줄 수 없겠는가. 무엇인가 받기보다는 남에게 주며, 또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주고 심지어 생명까지도 주는 것이 그런 것이라고.



 아프리카 수단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의술을 베풀다 목숨을 바친 이태석 신부처럼 자기 자신이 가진 것을 사람들에게 베풀고 사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해줄 수 없겠는가. 또 구제역 퇴치를 위해 엄동설한에 밤낮으로 헌신하다 과로와 추위로 숨져간 순직 공무원들의 삶이 아름답다고 말해줄 수 없겠는가. 자신의 몸을 추스르지 못하는 독거노인들을 찾아 그들을 목욕시키며 등을 긁어주는 따뜻한 마음씨의 젊은이들이 실천하는 봉사의 삶이 아름답다고 말해줄 수는 없겠는가.



 그런가 하면 스스로 일터에서 땀을 흘리며 살아가는 많은 보통사람들처럼 혼신의 힘을 다하는 자구의 노력과 자립의 정신이 아름답다는 것도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모름지기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칠 수 있는 용기를 보이라. “하늘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처럼 “정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