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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벼랑에선 달콤한 소리만 들린다

중앙일보 2011.02.19 02:15 주말섹션 15면 지면보기






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시민혁명의 불꽃이 중동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역시 석유가 많이 묻힌 땅은 다른가 봅니다. 발화점인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의 장기독재 정권을 불사르고도 전혀 누그러지지 않고 이웃 나라로 옮겨붙고 있습니다. 여태껏 국민이 주인 노릇하지 못한 한풀이라도 하듯 그 땅의 모든 거짓 주인들을 살라버릴 기세입니다.



 그런데 궁금합니다. 왜 독재자들은 배우지 못하는 걸까요. 과거 독재 선배들을 보면 말로가 눈에 보이는데 왜 제 발로 내려오지 않고 끌려 내려질 때까지 버티는 걸까요. 운이 좋아 권좌에서 생을 마친다 해도 역사에 더러운 이름으로 남는다는 걸 어찌 두려워하지 않느냔 말입니다.



 물론 욕심 때문이겠지요. 탐욕의 살은 눈꺼풀서부터 찌기 마련이니까요. 앞을 가릴 수밖에요. 하지만 그것 역시 설명으론 부족합니다. 선배들의 몰락을 꼼꼼히 살폈다면 거기서 욕심을 보지 못했을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일까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크세노폰이 힌트를 줍니다.



 크세노폰은 『히에론:혹은 참주에 관해서』라는 책에서 독재자의 심리 상황을 예리하게 묘사합니다. 독재자 히에론이 철학자 시모니데스에게 털어놓지요. “시모니데스, 이건 결코 하찮은 게 아냐. 왕들도 백성들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정의로운 사람들, 현명한 사람들을 알고 있다네. 백성들이 그들을 사랑한다면 왕들은 그들을 두려워해야 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권좌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현명한 사람들이 모반 계획을 세우지 못하도록, 정의로운 사람들이 신하들과 결탁해 왕궁을 떠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조처해야 한단 말일세. (…) 왕들이 이런 사람들을 처단해 버리면 과연 누가 남게 될까. 결국 남아있는 사람들은 부정한 자들, 방종한 자들, 그리고 아첨 떠는 자들일 거야. 그런 자들은 타인으로부터 미움을 사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권력에 복종하지.”



 독재자 주변에, 그리고 그 독재가 오래갈수록, 모리배와 아첨꾼들만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독재자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중용하고,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독재자를 이용합니다. 그 추악한 이해가 꿰맞춰질수록 권력과 부패의 사슬은 한층 견고해집니다. 처음부터 독재자는 아니었더라도 그 운명공동체에 한번 발을 디디면 다시는 뺄 수 없게 됩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더라도 절대 그 탐욕의 바다에서 혼자 헤엄쳐나올 수 없는 거지요.



 당 태종이 치국의 요체를 밝힌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 추가 설명을 합니다. “임금은 오로지 한마음인데 그 마음을 공략하려는 자는 너무나 많다. 힘으로, 말재주로, 아첨으로, 간사함으로, 임금이 좋아하는 것으로 무차별 공략해 서로 귀여움을 차지하려 든다. 임금이 조금이라도 해이해져 그중 하나라도 받아들였다가는 당장 위기와 망조가 뒤따른다. 바로 이것이 어려운 점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군주 중 하나인 당 태종도 그럴진대 그저 운 좋게 권력을 쥔 사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무바라크 역시 그랬습니다. 퇴진 거부 연설을 하던 날 저녁 대통령궁에서 무바라크의 장남 알라가 동생 가말에게 소리쳤다지요. “네가 아버지의 명예로운 말년을 망쳐놓았다.” 2002년 집권당의 서열 3위인 정책위의장에 임명된 뒤 친구들과 함께 온갖 권력과 이권을 독점한 사실을 질책한 겁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누굴 탓하겠습니까. 결국 아들을 비롯한 측근들에게 눈 가리고 귀 막힌 권력자의 책임일 수밖에 없지요. 그는 모든 사람이 즉각 사퇴를 예상했던 그날조차 상황 파악을 못하고 고집을 부리다 마지막 명예까지 놓치고 말았습니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하고 절대몰락합니다. 이 진리를 아는 지도자는 늘 절대권력이 되지 않기 위해 경계하지요. 한 가지만 잊지 않으면 가능합니다. 듣기 싫은 소리를 듣는 겁니다. 언젠가부터 달콤한 소리만 들린다 싶으면 이미 벼랑에 선 겁니다. 그때 바른 길로 인도한 사람이 없었다고 탓해봐야 하늘 보고 침 뱉기일 뿐이지요.



 또 한 명의 훌륭한 임금 원나라 영종 얘기로 글을 맺겠습니다. 영종이 승상 배주(拜住)에게 묻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당 태종 때 위징처럼 과감하게 진언하는 신하가 있소?” 배주가 답합니다. 미래를 위해 꼭 기억해두십시오. “그야 어떤 황제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을 둥근 잔에 담으면 둥글게 되고,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네모난 모양이 되지요. 당 태종은 쓴소리를 받아들일 만한 도량이 있었기에 위징이 용감하게 진언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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