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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의 여론女論] 배고픈 창작자

중앙일보 2011.02.17 00:27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그것은 길진이가 △△사에 지난달에 써준 원고료였다. 명색이 원고료라는 것이 몇 푼 되지도 않건만 무슨 심사로인지 선뜻 내놓지를 않고 다달이 네 번 다섯 번씩 걸음을 걸리어서 진땀을 뺄 대로 빼고 나서야 퉁명스럽게 내던지는 것이 길진이에게는 차마 못 당할 모욕같이 생각이 들어서 이번 △△사에는 밥거리가 없을 때에 두어 번 독촉을 하여보다가는 아주 단념을 하여두었던 것이다. 어제도 종일을 내외가 굶고 들어앉았으면서도 △△사에를 가보거나 전화를 걸어보려는 유혹을 억제하고 지내왔던 터이다. 그러나 생각다 못하여 오늘 아침에 △△서점에 원고 팔 교섭을 하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와 보니 혜순이는 그 모양으로 넙치가 되어 누었던 것이다.”(염상섭, ‘조그만 일’, 『문예시대』, 1926.11.)



 위 글은 염상섭이 쓴 단편소설의 한 대목이다. 소설가인 주인공 길진 내외는 몇 푼 안 되는 원고료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데, 그마저도 제때 받지 못해 굶기를 밥 먹듯 한다. 게다가 아이까지 임신한 길진의 아내 혜순은 남편에게 짐이 되기 싫어 양잿물을 먹고 자살을 기도한다.



 이 시기 작가들은 실로 가난했다. 그래서 그들 대부분은 창작 외에 신문·잡지의 기자로도 활동하는 ‘투잡(two-job)’ 생활을 해야 했다. 위 소설을 쓴 염상섭도 생계는 기자라는 직업에 맡겨놓고 문학 활동은 별도로 해야 했다고 회고했다(염상섭, ‘나와 폐허시대’, 『신천지』, 1954.2.).



 또한 1920년대 소설에는 유독 자살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다. 그 이전에는 자살이 문학에 흔한 소재가 아니었고, 설령 자살을 하더라도 효(孝)·충(忠)·열(烈)과 같은 유교적 이념을 지키기 위해서일 뿐 그 외의 자살은 금기시되었다. 그런데 유교윤리에 균열이 생기면서 ‘나의 목숨은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한국문학에도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1920년대 신문·잡지의 수많은 자살사건 기사들이나 실제 주변인들의 자살 소식이 작가들로 하여금 자살을 자신과 무관한 일로 여기지 않게 만들었다.



 이러한 1920년대의 사회적·문학적 환경 속에서 창작된 작품이 위 소설 ‘조그만 일’이다. 그런데 근 백 년 전 소설에 나오는 창작자의 가난, 밀린 원고료, 굶주림, 자살… 어느 것 하나 오늘날의 우리 문화계에게도 낯선 것이 없다.



 최근 한 젊은 작가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예술가들 사이에서 예술과 생계 문제에 대한 논쟁이 분분하다고 한다. 예술가로서 각자의 소명의식이나 삶의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과 성찰을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전에 최소한 ‘그 누구도 죽지 않을 수 있는’ 기반만큼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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