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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포퓰리즘으론 물가 못 잡습니다

중앙일보 2011.02.17 00:25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영욱
경제전문기자·논설위원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께, 처음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정유·통신업계의 가격책정에 문제가 많다고 질타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말입니다. 장관은 국내 휘발유 가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국보다 13.2%나 높다면서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생산성 향상에 비해 가격하락이 미진하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가격결정의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풀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공정거래위원장이나 지식경제부 장관이 늘 해오던 얘기입니다. 하지만 장관은 그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장관까지 가세하다니요. 휘발유값은 국제유가 시세가 오를 때는 더 많이 오르고, 떨어질 때는 덜 떨어지므로 문제라고 합니다. 이게 정유사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근거라고 합니다. 얼토당토않다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국제시세와 국내 판매가의 움직임이 일치하지 않는 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한 나라의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단정적으로 말할 때는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국내 가격이 국제 시세보다 덜 올랐던 때도 있었습니다. 2005년 1~8월 중 두바이유의 배럴당 평균가격은 2004년보다 38% 올랐습니다. 하지만 국내 휘발유값은 2%만 올랐습니다. 이때 정부는 국제유가의 상승분을 90% 이상 흡수했기 때문이라고 자랑했습니다. 그 이유로 환율 절상과 세금 비중 축소를 들었습니다. 이 설명이 맞다면 지금 국내 가격이 더 오르고, 덜 떨어지는 것 역시 환율과 세금 때문이어야 합니다. 국제 시세보다 덜 오를 때는 정책 때문이고, 더 많이 오를 때는 기업 탓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없습니다.



 폭리 주장은 더욱 말이 안 됩니다. 정유사업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국내 4개 정유사 중 이익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SK에너지의 경우 지난해 3분기까지 정유부문 영업이익률은 2.8%에 불과합니다. 국내 전체 제조업체 영업이익률(2009년 6.15%)의 절반도 안 됩니다. 삼성전자나 포스코 등은 10%를 훨씬 웃돕니다. 가격 조작으로 폭리를 취했다고 볼 수 없는 증거입니다.



 가격은 결과입니다. 수요와 공급의 움직임에 따라 정해집니다. 가격은 시그널입니다. 가격 상승은 국민에게는 소비를 줄이라는, 기업에는 투자와 공급을 늘리라는 신호입니다. 기업이 가격을 함부로 책정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이익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팔 비틀어 떨어진들 일시적이며, 나중에는 폭등한다는 건 경제학의 오랜 가르침입니다. 장관이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유는 단 하나, 장관 역시 포퓰리즘에 휘둘리고 있기 때문이라 봅니다. 지금은 달지만 결국엔 나라를 망치는 물가 포퓰리즘 말입니다. 복지 포퓰리즘만큼 나쁩니다. 장관까지 나서면 기름값이 잠시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가격 기능이 무너집니다. 가격이 올라도 휘발유 소비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최근 통계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기름은 낭비되고 국부는 유출됩니다.



 길게 봐야 합니다. 독과점 구조를 경쟁구조로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형마트의 주유소 영업을 허용하자 기름값이 떨어졌고, 시장을 개방하자 수입 휘발유가 7%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습니다. 장관도 “시장구조 개선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답은 알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실천은 늘 거꾸로입니다. 대형마트의 주유소 영업은 ‘공정사회’라는 이름으로 제한했고, 휘발유 수입사에는 비축시설 설치 규정을 만들어 철수하도록 했습니다. 정유와 통신 산업을 독과점으로 만든 장본인은 정부입니다.



 얼마 전 대통령이 “물가 잡느라 힘들 텐데”라며 위로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장관은 “지금 좋자고 물가 포퓰리즘을 하다간 진짜 큰일 난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라면 대통령에게도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김영욱 경제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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