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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일간 350쪽 … 피랍 금미호 선장의 유서 같은 일기

중앙일보 2011.02.17 00:17 종합 16면 지면보기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 지난 9일 풀려난 금미305호 김대근(54) 선장이 124일의 피랍 기간 동안 써내려간 350쪽 분량의 일기가 공개됐다. 일기엔 금미305호가 해적질에 동원됐던 일과 김 선장이 목격한 해적들의 일상생활이 생생하게 들어 있다. 김 선장은 “해적의 총에 죽으면 유서 한 장 남기지도 못할 것 같아 일기를 썼다”고 밝혔다. 연합뉴스가 지난 15일 케냐 몸바사항에 도착한 김 선장에게 입수한 일기를 정리해 소개한다.


김대근 선장 “해적에게 수면제 먹이고 탈출하려다 포기”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 풀려난 금미305호 김대근 선장이 피랍 기간 자신이 쓴 일기를 들고 읽고 있다. [몸바사(케냐)=연합뉴스]





◆해적에 수면제 먹이고 탈출하려 했지만=지난해 10월 9일 케냐 라무지역 앞 18㎞ 해상에서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당한 김 선장은 초기엔 탈출을 시도했다. “배에 있는 대게(crab) 마취용 수면제 1000알을 해적들이 마시는 물에 넣으라고 케냐인 주방장에게 말했지만 ‘잘못하다간 우리 모두 죽는다’고 울면서 사정을 했다. 수면제 먹고 조는 녀석이 있으면 총을 빼앗아 싸우자고 했지만 허점을 찾을 수 없어 포기했다. 차라리 내가 수면제 먹고 잠들어버릴까 수없이 생각했다.”(지난해 10월 12일)



 “내가 자는 방에 유일한 무기가 있다. 12파운드짜리 아령 2개다. 잠자는 해적 한 명만 처리하고 권총을 뺏은 뒤 한 명씩 차례로 처치하는 시나리오를 수십 번도 더 세웠지만 기회가 오지 않는다. 허술하지도 않고 실패하면 다 죽을 위험이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미칠 지경이다.”(지난해 10월 29일)



◆해적질에 동원=해적들은 금미호가 몸값을 지급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다른 선박을 상대로 해적질을 할 때 모선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LPG 운반선이 약 4마일 지점까지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자 해적 두목이 명령을 내렸다. 해적들은 보트 2대에 대원 10명, AK소총·권총·로켓포·기관단총으로 중무장하고 사다리·줄사다리·던지기용 외줄로프 등을 싣고 출발했다. 10분 후 배가 움직이지 않으니까 우리 배에 남은 해적들이 성공했다고 총을 쏘면서 축하를 했다.”(지난해 10월 24일)



◆해적들 인터넷 뉴스도 챙겨=해적들은 소말리아어와 영어에 능통한 통역요원을 통해 해적과 관련한 인터넷 뉴스, BBC 라디오 뉴스 등을 챙기며 정보를 축적했다.



 “선원 43명을 죽여도 돈 1달러도 나올 데가 없다고 호소했지만 막무가내다. 해적들은 ‘인터넷에서 305 Golden Wave(금미호)를 치면 한국 선원 2명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돈 받는 데는 지장 없다’고 우긴다. 과연 한국 정부가 어떻게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지 의문이다.”(지난해 11월 3일)



 “Golden Wave는 CNN이나 BBC에서 계속 뉴스로 보도되고 군함과 헬기 조종사들이 알고 있는지라 선명을 지우고 SAGAL이란 이름으로 붙여 놓았다고 하는데 확인은 못했다. 꼼짝할 수 없기 때문이다.”(지난해 11월 20일)



◆재벌 부럽지 않은 해적=“상선 1척 잡으면 기본이 600만 달러라고 한다. 그 돈으로 케냐·동남아·유럽 등지에 부동산을 사고 주식도 사고 재벌보다 더 잘살고 있는 실정이다. 해적들이 우리 케냐 선원에게 한 달 급료가 얼마냐고 물었을 때 150달러 정도 된다니까 웃었다. 해적들은 우리 선원에게 ‘뭐 하러 배 타느냐 해적 한번 하면 너희 평생 버는 것을 한번에 해결한다’며 원서를 내라고 한다. 참 기가 막힌 일이다.”(지난해 10월 25일)



 “비슷한 시기에 함께 잡혀 왔던 일본 선적 NYK호가 풀려났다. 700만 달러 주고 풀려났다고 한다. 부럽다. 회사도 튼튼하고 국가도 힘이 있어서 빨리 합의되나 보다.”(지난해 11월 1일)



◆선박이 월척으로 보이는 인도양 =“해적들이 우리 배 주변에 보트 3척이 보인다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것으로 착각한 다른 해적 떼들이 우리를 보고 접근해온다. 선수에 있던 해적들이 ‘이 배는 우리가 잡은 배다’ 하고 고함을 치고 총으로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니 해적 잡으러 다니는 위장 경비선인 줄 알고 도망을 친다.”(지난해 10월 20일)



 “여기 소말리아 하라데레 해적 기지에는 지금 우리 빼고 인도 선적 유조선, 이탈리아 일반 화물선, 일본 자동차운반선, 어제 잡아온 LPG 운반선 등 4척이 정박 중이다. 이런 해적 기지가 소말리아 해역에 여러 군데 있다고 한다. 배마다 해적 우두머리가 다르다고 한다.”(지난해 10월 27일)



◆군함 접근해도 태연한 해적들=“납치한 배를 끌고 가자 군함이 전후방에 각각 한 척씩 따라오며 기동 시위를 했다. 그러나 해적들은 인질 방패를 믿고 걱정도 않은 채 음악을 틀고 콧노래를 부르며 승리감에 젖어 있다.”(지난해 10월 25일)



 “(금미호가 동원된 첫 해적질에서 납치됐던 배인) 요크호의 선장이 UHF 16번 채널을 통해 ‘군함이 30마일 밖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전부 죽이겠다 하니 빨리 철수하라’고 애절하게 호소한다. 해적 두목이 총을 겨누며 시키는 것 같다. 군함은 서서히 멀어져 갔다. 해적질 한두 번 하는 게 아니니까 모든 것이 프로다.”(지난해 10월 26일)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 표현도=“오늘 밤이 시월의 마지막 밤, 가난했지만 희망에 부풀었던 신혼생활 때 부산 서면 카페에서 나오던 ‘잊혀진 계절’이란 노래가 생각나는구려. 당신을 사랑하는 남편이.”(지난해 10월 31일) “내가 진 빚 중에 제일 큰 빚이 당신에게 진 빚일 게요. 이 빚을 다 갚기 전에는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절망을 딛고 꼭 성공하여 코스모스보다 더 맑은 청초한 당신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소. 사랑하오.”(1월 13일)



정리=김상진 기자



금미호 피랍에서 석방까지



▶ 2010년 10월 9일 = 한국인 2명, 중국인 2명, 케냐인 39명 등 43명 탄 대게잡이 어선 금미305호 케냐 해상에서 해적에게 피랍



▶ 2010년 말 = 해적, 선원 몸값으로 600만 달러 (약67억원) 요구



        = 케냐 교민 김종규씨 해적과 협상 시작



▶ 2011년 1월 초 = 해적들, 몸값 60만 달러 (약6억7000만원)로 낮춰



▶ 2011년 1월 15일 = 삼호주얼리호 다른 해적에게 피랍



▶ 2011년 1월 21일 =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삼호주얼리호 구출



▶ 2011년 1월 말 = 김종규씨 해적들과 계속 협상



     2월 9일 = 금미305호 석방



     2월 15일 = 케냐 몸바사항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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