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할레비 모사드 전 국장 이집트 혁명을 말하다

중앙일보 2011.02.16 03:00 종합 1면 지면보기



“이스라엘에 네번 진 이집트 군부
정신이상자 아니라면 평화 못 깨”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친구는 아니다. 공통의 이해를 가질 뿐이다. 이집트 입장에서 이스라엘과 평화를 유지하는 건 매우 중대한 이해가 걸린 문제다.”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전 대통령의 퇴진 등 이집트 사태에 가장 민감한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중동 정세를 뒤흔들 수 있는 대사건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Mossad)의 에프라임 할레비(Efraim Halevy·76·사진) 전 국장을 만났다. 할레비 전 국장은 직무상 비밀에 대해 묻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14일 텔아비브의 한 식당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이집트 국민이 무바라크의 30년 독재체제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집트가 이스라엘 같은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독재체제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말하는 건 성급하다. 이집트는 한 번도 민주적인 정부 시스템을 가져본 적이 없다. 선거나 정당 등 민주주의의 틀은 있었지만 그건 형식에 불과했다.”



-비관적으로 본다는 의미인가.



 “판단하기 이르다는 뜻이다.”









2002년 10월 예루살렘 총리실에서 열린 모사드 국장 이임식. 에프라임 할레비 전 국장(오른쪽)이 아리엘 샤론 당시 총리(가운데), 메이르 다간 신임 국장과 건배하고 있다.



-이번 혁명의 결과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변수가 뭐라고 보나.



 “이집트 국민이 거리로 나선 건 세 가지를 원해서다. 첫째 자유다. 자유로운 정부 시스템,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이다. 둘째 일자리와 정당한 소득을 보장하는 경제 시스템과 삶의 질 향상을 원했다. 셋째 그들은 존중받기를 원했다. 이집트의 이번 시민혁명은 대외적인 문제나 이슬람주의와 상관이 없다. 세속적인 혁명이지 종교적 혁명이 아니다. 그래서 세속적 열망의 충족 여부가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튀니지와 이집트 다음은 어디일까.



 “이집트의 사례가 아랍권의 모든 나라에서 재현될 것으로 보진 않는다. 이집트가 군 최고위원회가 주도하는 과도기를 끝내고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할 것으로 확신하는 건 시기상조다.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나 아무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이 새 리더로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허상이다. 대중적 지지 기반이 없다.”(※공교롭게도 이 인터뷰 뒤에 엘바라데이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되길 희망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최선최악의 시나리오는.



 “이집트가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게 최선의 시나리오다. 대외정책의 주도권 확보에 우선 순위를 두지 말고, 중동 지역의 평화 정착에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든든한 파트너가 돼야 한다. 그게 이스라엘로선 최선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혁명 이후 상황이 통제 불능으로 가는 거다. 군이 이끄는 과도체제가 원만하게 작동하지 못할 경우 새로운 봉기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스라엘 모사드 로고



-이집트에서 누가 집권하더라도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은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나.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1948년부터 네 차례 전쟁을 했지만 모두 졌다. 무바라크가 공을 세웠던 73년 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의 경우 처음 일주일간 이집트가 주도권을 잡는 듯했지만 2주일 만에 전세가 역전됐다(당시 북한은 조종사들을 보내 이집트 군을 지원했다). 이런 기억이 이집트군에 남아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다시 대결하는 상황을 원치 않고 있다. 정신이상자가 아니라면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무효화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



-이집트 정치에서 무슬림 형제단의 역할은.



 “무슬림 형제단은 80년 이상 존재해온 세력이다. 1952년 혁명으로 나세르가 집권한 뒤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에서 유일한 야당으로 기능해왔다. 반대 의견을 제시할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해온 것이다. 민주화가 이루어진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무슬림 형제단은 독점적 야당 지위를 잃게 될 것이다. 누구보다 그들 자신이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이 이번 사태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는가.



 “팔레스타인 정부는 이스라엘과의 대화가 당분간 동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평화협상 프로세스의 지지자인 이집트의 ‘유고(有故)’ 때문이라는 것이다. 잘못된 판단이다. 지금은 오히려 양측이 대화를 진전시켜 나가야 할 때다.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무바라크 등의 사례가 북한의 김정일에게 교훈이 될 수 있다고 보나.



 “그에게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 배울 능력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평가할 입장이 아니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가.



 “1992년이다. 공식 방문이었다. 당시 우리는 북한의 중동 국가에 대한 미사일 수출에 큰 우려를 갖고 있었다. 나는 모사드 부국장 자격으로 평양에 갔고, 북한 당국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북한이 미사일 등 무기 수출에 매달리는 이유를 이해할수는 있다.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일 것이고, 그렇게라도 해야 체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은 이란·시리아에 미사일을 공급했고, 이집트에 스커드B 미사일 제조 능력을 전수했다. 나는 북한이 팔레스타인 혁명을 지지한다거나 아랍국가들과 특수관계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외화 수입이라는 현실적 목적 때문이라고 본다. 중동의 안정을 해치는 요소다. 다만 이 문제는 미국이나 중국·러시아 등 동아시아 지역의 강대국들이 해결할 문제지 이스라엘이 나선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텔아비브=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에프라임 할레비=1934년 영국 태생의 유대인. 14세 때 가족 모두와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27세 때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Mossad) 요원이 됐으며, 모사드 9대 국장(1998~2002)과 국가안보회의(NSC) 의장(2002~2003)을 지냈다. 에후드 바락·아리엘 샤론·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밑에서 일했다.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 페데르만 공공정책 및 정부 대학원 부설 샤샤(Shasha) 전략연구센터 소장이다.



◆이집트·이스라엘 전쟁=1948·56·67·73년의 네 차례 중동전에서 격돌했다. 이스라엘은 1차전에선 가까스로 공격을 막아냈고, 2차전에선 승전했으나 국제사회 압력으로철군했으며, 3차전(6일 전쟁)에선 선제 기습으로 대승을 거뒀다. 4차전은 이집트가 개전 초 선전했으나 이스라엘 반격으로 휴전했다. 북한 김일성 주석이 이집트에 조종사·무기를 지원했고, 공군사령관 무바라크는 전쟁 영웅이 됐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