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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 묻고 윤필용 사건 무죄 판결 받은 손영길 답하다

중앙일보 2011.02.16 00:23 종합 23면 지면보기



박정희 원망 안 해, 권력의 어두움 보여줬으니 …



손영길씨는 “윤필용 사건은 내게 권력의 어두운 면과 인권, 인간 세상에 대해 알게 해주었다”며 “그래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재판장의 입에서 “무죄”라는 말이 떨어진 순간 손영길(79)씨는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았다. 지난 1월 20일 서울고등법원. ‘윤필용 사건’에 연루돼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강제예편당했다가 재심을 통해 38년 만에 명예를 되찾은 것이다. 죄목은 구실이었을 뿐 사건의 본질은 대통령의 ‘권력 관리’였다. 손씨를 서울 광화문 오피스텔 사무실에서 만났다. 7시간에 걸친 인터뷰도 ‘잃어버린 38년’을 다 듣기엔 짧게 느껴졌다. <인터뷰 전문은 17일 발간되는 『월간중앙』 3월호에 수록>



-육사 11기 선두주자였는데요.



 “(청와대 외곽 경비를 책임지는) 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장도 했고, 연대장도 동기 중 가장 먼저 했지요. 30대대장 후임으로 전두환·김복동이 물망에 올랐는데, 제가 대통령께 ‘전두환이 충성심 강하고 믿을 만하다’고 추천해 낙점받았습니다. 육군대학을 졸업(68년 10월)할 무렵엔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보안사령관, 윤필용 20사단장이 서로 데려가려 한 적도 있지요.”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이 대단했다는 말씀이군요. 언제 인연을 맺었습니까.



 “1957년 강원도 7사단 시절에 처음 뵈었어요. 저를 아끼셨고 저도 정말 존경했습니다. 5·16 혁명 후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전속부관으로 3년간 모셨어요. 민정 이양(63년) 때 ‘저는 군인의 길을 걷겠다’고 간곡히 말씀드리고 군에 복귀했습니다.”









1967년 8월 17일 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장 이·취임식 후 청와대를 방문해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와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이 전두환 후임 대대장, 오른쪽이 손영길 중령. [손영길씨 제공]






-윤필용 사건으로 하루 아침에 추락했군요. 고문도 당했죠.



 “처음엔 대통령이 매를 좀 대는 정도로 생각했어요. ‘윤필용이 감독 잘 하라고 수경사 보냈는데 왜 안 하느냐’고요. 서빙고(보안사 대공분실)에 끌려가니 ‘대통령의 명에 의해 쿠데타 모의에 대해 조사한다’는 거예요. 20일 넘게 당했습니다. 명색이 장군인데… 창피해서 말하기도 힘드네요. 발가벗겨 비행기 태우고, 수건을 씌워 코에 물 붓고, 전기고문 하고…. 특히 내 전속부관을 잡아와 바로 내 앞에서 고문할 때는 정말 미칠 것 같더군요. 자살도 생각했지만 누명만 쓸 것 같아 ‘반드시 살아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쿠데타가 말이 안 되자 업무상 횡령, 총기불법소지 등 5가지를 뒤집어 씌우더군요. 박 대통령이 주월미군사령관 웨스트모얼랜드 대장에게서 선물받은 상아 손잡이 권총을 제가 베트남 파병 갈 때 주셨는데, 그 총까지 불법소지죄로 엮었어요.”



-감옥에서 심정이 어땠나요.



 “갈증과 배신감에 잠이 안 오더군요. 불교서적을 읽으며 삭였습니다. 마음 가라앉히려고 일기에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을 천 번 넘게 쓴 적도 있어요.”(그는 1년간 수감 후 건강 악화로 형집행이 정지됐다가 80년 2월 29일 사면받았다.)



-윤필용 사건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권력투쟁, 시기심, 음모죠. 박종규(청와대 경호실장)는 이후락(중앙정보부장)을 밀어내고 중정부장 하고 싶었고, 강창성(보안사령관)은 라이벌인 윤필용을 제치고 싶었겠죠. 게다가 또… 전두환·노태우 둘이서 박종규를 ‘꾸은’( 구워 삶았다는 뜻) 것 같아요. 그런 정황들이 있었어요.”



-권력 실세들 이해관계에 육사 동기생들의 시기심도 작용했다는 말이네요. 어떤 정황인가요.



 “내가 윤필용·이후락을 붙여주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고, 또 박 대통령이 ‘손영길이는 참모총장감이야’라고 말하자 윤필용 장군이 전두환에게 ‘너는 뭐하고 다니는 거냐’며 놀린 적도 있고…. 제가 청와대 경호실장 된다는 말도 있었어요. 이래저래 불편한 사람들이 있었겠죠.”



-출옥 후 전두환·노태우씨를 만난 적 있습니까.



 “74년 경모(敬母)님(육영수 여사를 깍듯이 ‘경모님’이라 불렀다) 서거 후 박종규 경호실장이 물러난 뒤 전·노가 찾아왔길래 물었죠. ‘내가 부정을 했나. 불충했나. 왜 각하께 내 말 안 해주었나. 의리 지키고 충성하기로 맹세하지 않았나. 어기면 자결하기로 하지 않았나’고 했죠. ‘박종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해요. 하지만 보세요. 둘 다 나중에 경호실 차장보를 지내지 않았습니까. 그때도 대통령께 내가 결백하다는 말을 안 한 거예요. 인간적으로 도저히 납득 안 돼요. 내가 자기들을 몇 번이나 살렸는데…. 친구로 안 봅니다.”



-박 대통령을 원망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지금은 고맙게 생각합니다. 내게 줄곧 밝은 면만 보여주시다가 그 사건을 계기로 어두운 면을 보여주셨어요. 권력의 어두운 면이죠. 덕분에 인권에 대해, 인간 세상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인간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고요.”(아들이 운영하는 회사 ‘카이온 인터내쇼날’의 회장으로 있는 손씨는 매우 건강해 보였다. 그의 사무실 벽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71년 2월 6일 하사한 친필 휘호 액자가 걸려 있었다. ‘자주국방태세 확립-손영길 대령을 위하여’였다. 73년 1월 1일 준장 진급 후 찍은 사진도 있었다. 그는 장군이 된 지 석 달도 채 안 돼 윤필용 사건을 만났다.) 



글=노재현 논설위원

사진=오종택 기자



◆윤필용 사건=1973년 발생한 한국 현대 정치사의 대표적인 권력 스캔들. 박정희 대통령의 측근이던 윤필용 수경사령관(소장·육사 8기), 손영길 수경사 참모장(육사 11기·준장)을 비롯한 군 간부 10명이 횡령·수뢰·직권남용죄 등으로 징역 15년~2년을 선고받았고 31명은 강제 예편됐다. “박 대통령 후계자는 이후락”이라는 윤 사령관의 말이 대통령 귀에 들어가 사건으로 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똥을 피한 전두환·노태우씨는 훗날 대통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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