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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공짜 점심’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2011.02.16 00:22 종합 33면 지면보기






박헌영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




시장경제에서 ‘공짜 점심은 없다’는 인식에 대한 발상전환이 필요하다. 본래 ‘공짜 점심’은 미국의 한 식당에서 ‘음료수를 시키면 점심을 공짜로 준다’고 해 생겨난 말이다. 음료수 값은 점심 값보다 싸지만, 점심을 먹게 되면 대부분 음료수를 한 잔 이상 시키게 돼 결국 전체 음식 값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표준경제학에서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하기 위해 많이 사용돼 왔다.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사람들이 무수히 존재하는 시장에서는 공짜 점심이 있다는 것을 알면 이미 누군가 차지한 이후이고, 정부 규제를 포함한 모든 경제행위에는 모두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결국 ‘공짜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시장참여자들이 모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종전의 표준경제학에서만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비합리성을 감안한 최근 행동경제학에서는 개개인은 하기 힘들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 미래의 경제효과가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는 새로운 도구·방법·정책들을 유도하는 것이 ‘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공짜 점심’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예를 들면 미국 일리노이주에서는 초등학교 원어교육이라 하여 외국학생들에게 각 나라의 언어, 즉 한국학생들에게는 한국어 교육을 영어 교육과 병행해 받을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 국민 입장에선 세금 낭비로 생각하기 쉽고, 외국학생 입장에선 공짜 점심으로 생각하기 쉽다. 결과는 그렇지 않다. 현재 공짜로 보일지 모르지만 훗날 돌아오는 경제효과가 지금 원어교육을 위해 쓰는 경비를 훨씬 능가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짜 점심은 필요하다. 미소금융도 저소득층에 낮은 이자율로 돈을 빌려주고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비용보다 더 큰 경제효과를 유도하자는 정책 아닌가.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겐 안 빌려주고 기업가 정신도 없는 사람들에게 빌려주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 문제라든지 정부의 의도를 역이용해 남의 돈이라 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와 같은 문제점들이 있어서 그렇지 원칙적인 면에서만 보면 공짜 점심에 해당되는 정부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서민금융뿐 아니라 녹색금융, 공해규제 등 장기적으로 국민 모두에게 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공짜 점심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것이 바로 정부 입장에서 강조해야 할 진정한 복지정책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도 마찬가지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재원이 부족하다’거나 ‘포퓰리즘’이라며 거부하기보다, 그 돈으로 국민 모두에게 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반대로 무차별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복지의 핵심은 양이 아니라 내용에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당장 눈앞의 공짜 점심에만 집착하지 말고 장기적인, 진정한 의미의 공짜 점심에 해당하는 복지정책에 집중했으면 하는 희망이다.



박헌영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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