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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장하준 신드롬의 실체

중앙일보 2011.02.16 00:21 종합 34면 지면보기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국내 독서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출간된 그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40만 부 가까이 팔렸다. 이에 앞서 2007년 펴낸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50만 부를 넘어섰다. 각종 공무원 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의 필독서인 ‘경제학 원론’류를 제외하고, 경제학 책이 단기간에 이렇게 많이 팔린 사례를 발견하기 어렵다.



 일종의 ‘장하준 신드롬’이다. 주로 30∼40대 남성층이 고객이었다가 요즘엔 20대도 많이 구입한다고 한다. 20대 비율이 30%에 육박한다고 하니 요즘 젊은이들 책 안 읽는다는 소리도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그의 책이 잇따라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고객층을 넓혀가며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경제학 책은 크게 두 종류였다. 하나는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해설서,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 경제 이론에 기초를 둔 자유시장경제 비판서다. 장하준은 그 두 종류 이론을 가로지른다. 최근 국내 좌·우파 양 진영에서 모두 장하준에 대한 비판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보수-진보의 연합공격’이란 소리까지 들린다. 하지만 공격의 칼날이 그리 날카로워 보이지 않는다. 장하준은 유연하게 피해간다.



 그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는 점에서 좌파로 분류할 수 있다. 반면 자본주의 시장과 이윤, 경쟁의 효율성을 인정한다는 점으로 보면 우파다. 두 자루의 칼을 들고 춤을 추는 장하준. 그를 칼 한 자루로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그들’이란 자유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을 가리킨다. 그는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시장만능주의를 비판한다. “자유시장이란 없다”는 말까지 했다. 이런 장하준에 대한 우파의 비판은 일종의 반격이다.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의 폐해를 우파는 걱정한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장하준의 정부 옹호는 우려스럽다. 하지만 경쟁에서 낙오된 이들을 보호할 안전장치로 국가의 역할을 요청하는 장하준의 상식적인 주장까지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좌파는 한편으로 장하준이 고맙다. 자유시장주의를 공격하면서 복지정책을 주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재벌을 옹호하는 장하준의 또 다른 모습을 못마땅해 한다. 노동자와 농민의 피와 땀의 소중함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본다는 데 장하준의 특징이 있다. 신드롬의 실체는 어찌 보면 대단할 것도 없는 상식의 재확인이다. 독재정치와 독점 자본의 부정적 측면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정책과 재벌의 리더십을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주요 요인으로 인정하는 것도 그렇다.



 이념의 이분법을 횡단하는 그를 통해 잘 부각되지 않던 우리의 현실과 역사가 새롭게 조명된다. 그의 주장이 모두 진리는 아니겠지만, 이념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듯한 장하준. 바로 이 점에 많은 독자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 아닐까.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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