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환영의 시시각각] 마르크스와 세상 바꾸기

중앙일보 2011.02.16 00:20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2000여 년 전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를 주장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인간이 아니라 신(神)에게 주권이 있는 이상적인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세례자 요한의 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리스도교에 흡수됐다. 그러나 예수가 아니라 세례자 요한이 진정한 메시아라고 믿는 사람들이 21세기에도 아직 6만~7만 명이 있다. 만다교(Mandaeism) 신자들이다. 성인 시성(諡聖) 제도가 있는 그리스도교 교단에서 세례자 요한의 축일은 6월 24일이다. 사망한 날이 축일이 되는 다른 성인들과 달리 세례자 요한은 생일이 축일이다. 이슬람교에서도 그를 예언자로 추앙한다. 그만큼 그는 세계 일신교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공헌을 했다.



 활동 영역은 전혀 다르지만 비슷한 운명에 처한 인물은 카를 마르크스(1818∼1883)다. 마르크스는 세계 역사, 사회과학, 철학에 엄청난 자취를 남겼으나 그를 직접적으로 추종하는 정당이나 사람들의 수는 급속도로 줄고 있다. 2004년 50권으로 된 영문판 마르크스·엥겔스 전작집이 발간됐다. 학술적으로는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으나 출간을 둘러싼 분위기는 침통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예외가 있다. 최근 달라이 라마는 자신을 ‘중국식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하는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정의했다.



 지난달 영국 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것인가 :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 이야기(How to Change the World: Tales of Marx and Marxism)』를 출간했다. 이 책의 핵심적인 테마는 ‘마르크스주의로 21세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홉스봄 교수는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3부작으로 유명하다. 그는 역사상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사학자로 평가되며 최소한 영국 좌파에게 그는 ‘영국의 국보(國寶)’다.



 1917년 출생한 홉스봄 교수는 30년대에 공산당원이 됐다. 그는 마르크시즘의 오류와 단점에 대해선 무자비할 정도로 엄격했다. 그러나 그는 마르크스의 추종자로 남았다. 홉스봄 교수는 자본주의가 역사의 끝이 아니라 역사의 한 단계에 불과하다는 마르크스주의 시각에 충실하며 역사의 다음 단계는 사회주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홉스봄 교수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없는 현실을 개탄한다. 그는 지난 25년간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한 유럽 좌파 정당 지도자는 없으며 그나마 주저하지 않고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 공적 인물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홉스봄 교수는 “다시 마르크스를 진지하게 고려할 때가 되었다”고 선언하며 『어떻게 세상을 바꿀 것인가』를 마무리한다.



 이러한 홉스봄 교수의 역사 인식에 대해 중도좌파 일각에서도 맹렬히 비난한다. 공산주의 정권들이 저지른 반인류적 만행으로 1억 명이 희생됐으나 이런 사실에 대해 홉스봄 교수가 외면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추종자가 있다. 2000년 후에도 마르크스의 추종자가 있을까. 만약 남아 있다면 역사는 단계적으로 발전한다고 믿는 사람들일 것이다. 사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기도 할 것이다.



 ‘아직도 마르크스 타령이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가 우리의 대안이 아니더라도 마르크스에겐 버릴 수 없는 게 많다. 마르크스는 1865년 링컨 대통령에게 “귀하가 큰 표 차로 재선에 성공한 데 대해 미국 국민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런 일화는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할 수도 있다. 우리가 마르크스나 마르크스가 활동했던 시대 상황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홉스봄 교수의 경우처럼 세계적인 석학 중에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많다. 그들의 학문 업적과 마르크스·마르크스주의를 분리할 수 없다. 분명 마르크스주의 정치와 마르크스의 학문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역사의 진보를 위한 담론이 나올 수 있는 게 아닐까.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