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수대] 나사

중앙일보 2011.02.16 00:18 종합 35면 지면보기








폴란드의 한 회사원이 속달 우편물을 14일 만에 받았다. 화가 치민 회사원은 우편물의 이동속도를 계산했다. 발송지점에서 자택까지 11.1㎞에 총 292시간이 걸렸다. 평균 시속 0.038㎞다. 동시에 달팽이의 이동속도도 쟀다. 측정 결과 평균 시속 0.048㎞였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폴란드 우편은 달팽이보다 느리다”고 주장했다.



 달팽이는 느림의 대명사다. ‘달팽이가 바다를 건넌다’는 말은 시간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엄청나게 느린 행보를 와행우보(蝸行牛步)라고 한다. 와우(蝸牛)는 달팽이의 한자말이다.



 비슷한 종류에 소라가 있다. 나선(螺旋)형의 ‘나(螺)’는 소라를 뜻한다. 달팽이 ‘와(蝸)’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달팽이와 소라 모두가 소용돌이 문양의 등껍데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의 학자 아르키메데스가 고안한 양수기(揚水機)에 ‘물달팽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절묘하다. 나선형 홈이 파인 너트(nut) 방식으로 물을 퍼 올리는 장치였던 것이다. 비록 한 바퀴를 돌아야 겨우 파인 골과 골 사이만큼 이동할 뿐이지만, 이 느림에 훗날 산업혁명의 맹아(萌芽)가 움트고 있었다. 바로 볼트와 너트다. 우리말로 수나사와 암나사다. 물체를 연결하고 고정하는 장치다. 영국의 선반공 헨리 모즐리(Henry Maudslay)가 1797년 당시 제각각 다르던 볼트와 너트의 나사선 간격을 통일하면서 정밀기계를 바탕으로 한 대량생산시대를 연다.



 나사 머리에 십자(十字) 홈을 낸 사람은 미국의 수리공 헨리 필립스(Henry Phillips)다. 당시 일자(一字)머리 나사는 홈이 잘 닳아 나중엔 풀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십자(十字) 나사는 마찰력이 뛰어나 헛돌지도 닳지도 않았다. 이는 1936년 GM의 캐딜락 승용차에 사용된다. 나사 이름도 ‘필립스 헤드(Phillips Head)’다. 홈 하나 더 파는 아이디어로 그는 거부가 됐다.



 KTX의 탈선사고가 너트 하나 제대로 안 조여 일어났다고 한다. 그보다 안전관리에 총체적으로 나사가 풀렸기 때문일 것이다. 시속 300㎞의 고속철도가 달팽이 속도로 움직이는 나사에 당한 셈인가. 그런데 암나사를 뜻하는 영어 ‘너트(nut)’에는 핵심·근본이란 의미와 함께 바보·멍청이란 뜻도 있다. 후자는 우리 식으로 ‘나사가 풀린 자’쯤이다. 차제에 또 어딘가 나사가 풀린 곳은 없는지 찾아 잘 채우고 죌 일이다.



박종권 논설위원·선임기자



▶ [분수대] 더 보기

▶ [한·영 대역] 보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