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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의 세상탐사] 역사의 장엄한 기습

중앙일보 2011.02.16 00:18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보균
편집인




헬리콥터는 체제의 붕괴를 상징한다. 독재 권력의 종막에 등장한다. 경찰과 시위대 사이의 질식할 듯한 긴장 속에 헬기는 날아간다. 그 비행은 한 시대의 퇴장을 자극적으로 묘사한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카이로를 탈출했다.



 그를 태운 헬기가 이집트 대통령궁 위에서 떴다. 30년 철권통치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감상은 서사적이다. “우리 일생에서 역사가 이뤄지는 것을 목격하는 특권의 순간은 많지 않다. 지금이 그 순간 중 하나다.”



 그 장면은 역사의 반복이다. 루마니아의 22년 전 거리를 연상케 한다. 수도 부쿠레슈티의 루마니아인으로부터 e-메일이 왔다. 지난해 여름 그곳에서 나를 안내했던 고교 선생이다. 차우셰스쿠 몰락 때 그는 대학생이었다. 그 무렵 반정부 시위의 기세는 격렬한 정점을 넘었다. 동시에 24년간 군림한 독재자는 헬기로 탈출했다. 1989년 12월 22일이다.



 그의 회고조 메일은 이렇다. “정오쯤이었다. 헬기가 공산당 중앙위 건물 위로 날았다. 시위대는 공포 속에서 흩어졌다. 헬기에서 기총 사격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잔인한 유혈이 이어지고 있었다. 헬기는 그냥 지나갔다. 독재자의 피신 소식이 들렸다. 헬기는 드라마의 극적 도구였다. 군중은 환호했다. 불가능한 일을 이룬 경이로움은 서로를 대견하게 했다.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이집트 사람들은 그런 감격과 성취에 젖어있을 것이다.” 차우셰스쿠는 사흘 뒤 처형당했다.









김일성과 무바라크(왼쪽). 노동신문 90년 5월 15일자.



 카이로에 가면 누구나 역사학자가 된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명을 일궜던 곳이다. 그런 나라의 쇠락은 역사의 흥망을 생각하게 한다. 그곳에서 집단 저항과 민주 혁명이 급습하듯 이뤄졌다. 고정 관념도 깼다. 이슬람 교리와 민주주의가 맞지 않는다는 인식은 무너졌다. 이집트 혁명은 부담스럽지 않다. 1979년 이란의 호메이니 혁명과 다르다. 신정(神政)은 꺼림칙하다. 신정 체제에서 국민은 진정한 주권자가 아니다. 무바라크의 퇴장은 정치·문화적 상념에 젖게 한다. 이집트 혁명은 정치적 감수성의 혁명이기도 하다.



 이집트 혁명은 우리에게 강렬하게 다가온다. 한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때문이다. 카이로 궐기는 1987년 6월 항쟁과 같으면서 다르다. 독재 타도의 외침은 같다. 하지만 그때 한국 경제는 유례없는 호황이었다. 대졸자의 취업 걱정은 드물었다. 산업화 이후 민주화 과정이었다. 이집트의 청년 실업률은 30%를 넘는다. 빈곤은 심각하다. 경제 기반 없는 민주화는 취약하다. ‘무바라크 이후’는 시작일 뿐이다.



 이집트 봉기는 북한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무바라크, 차우셰스쿠가 주석 김일성과 특별히 친했기 때문이다. 차우셰스쿠와의 관계는 기묘한 호기심을 일으킨다. 차우셰스쿠는 평양을 다섯 차례 방문했다. 김일성은 네 번 루마니아를 찾았다. 동유럽에서 동북아까지의 여정은 길고 힘들다. 북한 노동신문은 “혁명적 의리에 기초한 동지적 우정”(88년 10월)이라고 설명한다.



 차우셰스쿠는 부쿠레슈티를 평양처럼 재설계했다. 그는 인민궁전을 지었다. 궁전의 연면적은 펜타곤(미국 국방부) 건물 다음으로 크다. 주체사상도 도입했다. 루마니아식 공산 독재는 기괴하고 혹독해졌다.



 무바라크는 평양에 네 번 갔다. 1973년 10월 전쟁 때의 이집트는 북한과 혈맹이었다. 10년 뒤 무바라크와의 정상회담에서 김일성은 이렇게 언급한다. “그때 우리나라 비행사들이 직접 애급 형제들과 함께 한 전선에서 싸웠습니다.”(노동신문) 북한 정권은 애급(埃及·이집트)에 조종사와 미그기를 보냈다. 전쟁 초반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압도했다. 공군 사령관이 무바라크였다. 무바라크는 북한 세습체제를 벤치마킹했다.



 카이로의 아브딘 궁전 박물관에 김일성과 무바라크가 양손을 잡은 대형 그림이 있다. 88년 5월 무바라크의 60회 생일 때 김일성의 축하 선물이다.



 이집트 시민혁명은 예상을 깼다. 대부분 학자, 전문가들은 혁명의 성공 가능성에 부정적이었다. 루마니아 궐기 때도 그랬다. 역사적 사건은 예측할 수 없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역사는 전광석화처럼 진행된다. 동서독 통일도 그랬다. 북한의 변화는 전격적으로 벌어질 것이다. 거대한 역사는 장엄하면서 기습적으로 전개된다. 인간은 대비할 뿐이다.



박보균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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