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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욱의 과학 산책] 처녀의 페로몬

중앙일보 2011.02.14 19:43 종합 33면 지면보기






조현욱
객원과학전문기자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어느 암컷이 처녀(virgin)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을까. 일부 쥐, 도마뱀, 딱정벌레, 거미, 꿀벌, 귀뚜라미의 수컷이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생물학 리뷰(Biological Reviews) 2월호에 실린 논문이 이 분야의 연구 현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제목은 ‘화학신호를 이용한 암컷의 짝짓기 지위 탐지(Detection of female mating status using chemical signals and cues)’.



 곤충의 경우 수컷이 암컷의 페로몬을 통해 짝짓기 지위를 분간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페로몬이란 같은 종에 속하는 동물 개체 사이의 정보 전달에 사용되는 체외 분비성 물질을 말한다). 논문은 이를 세 종류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 짝짓기를 한 암컷은 처녀와는 다른 페로몬을 발산한다. 꿀벌(여왕벌)을 포함해 일처다부제 곤충들의 대체적인 행태다.



 둘째, 짝짓기 후 수컷을 유혹하는 페로몬의 분비가 중단된다. 임신한 매미나방이 그런 경우다. 큰담배밤나방은 짝짓기 후에 유혹 페로몬의 농도가 뚝 떨어진 후 차차 올라가지만 처녀 때의 농도는 끝내 회복하지 못한다.



 셋째, 교미 도중이나 직후에 수컷이 암컷에게 화학물질로 표시를 남긴다. 벌의 한 종류는 짝짓기 후 암컷의 날개에 ‘처녀가 아니다’는 표지물질을 바른다. 심지어 초파리 수컷은 구애 과정의 단순한 신체접촉만으로도 페로몬을 묻힌다. 암컷은 짝짓기를 하지 않았어도 한동안 다른 수컷으로부터 기피당한다.



 식별 능력의 제왕은 호주 왕귀뚜라미 수컷이다. 현재 신체에 남아 있는 화학적 신호를 기초로 암컷의 짝짓기 경력을 0회, 1회, 다수(각기 다른 수컷과 5회)로 세분해 식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수컷들과의 교미 도중에 전해진 화학물질이 구분가능한 표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논문은 밝히고 있다.



 일부 쥐의 경우 페로몬 수준은 못 되더라도 냄새를 통해 암컷의 상태를 식별하고 선호도를 달리 한다. 수컷 갈색나그네쥐는 방금 짝짓기를 한 암컷보다는 처녀의 냄새를 훨씬 더 좋아한다. 목초지 들쥐(meadow vole)는 암컷의 영역에 표시된 다른 수컷들의 냄새 신호를 통해 경쟁자의 숫자를 파악한다. 이 종의 암컷은 대단히 개방적이어서 경쟁자의 숫자는 곧 교미 상대의 숫자이기도 하다.



 다행히 인간의 페로몬 식별 능력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만일 남성이 냄새만으로 여성의 성적 상황을 식별할 수 있다면 세상은 사건과 비극으로 넘쳐날 것이다.



조현욱 객원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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