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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주검으로 증거조작? 드라마 '싸인' 황당"

중앙일보 2011.02.14 11:02








매일 시신과 대화하는 사람들. "시신은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만 말한다"며 주검과 정을 나누는 사람들. 그들은 시신이 말하는 사연을 듣기 위해 밤을 지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의 법의관들은 하얀색 가운을 입은 여느 의사들과 다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연을 살려낸다. 그렇게 억울함을 풀고, 망자의 못다 말한 한(限)을 풀어준다. 따지고 보면 구천을 떠도는 원혼의 한을 달래는 무속인의 역할까지 하는 사람들인 셈이다.



최근 시청률 20%대를 기록하며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싸인'의 무대를 제공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극중 윤지훈 법의관(박신양)은 천재적 재능을 가진 해결사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50여 년전의 시체를 보고 폐결핵을 앓았던 소녀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트럭 앰블럼 하나로 방화전과가 있는 연쇄살인범을 역추적해 체포한다. 그것도 단 몇 일만에 말이다. 일반인에겐 낯설기만 한 법의관들의 일상이 드라마를 통해 국민에게 공개되고 다가선다는 점에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물론 드라마틱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시신을 놓고 몇 주, 몇 달을 고민하고 분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아주 작은 단서 하나를 찾아낸다.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은 국과수 법의관들의 손에서 비로소 실타래가 풀린다. 원혼은 한(限)의 보따리를 그들에게 풀어놓는다. 이 때부터 윤지훈이 했던 역추적의 역할은 경찰이나 검찰이 맡는다. 윤지훈처럼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는 일은 거의 없다. 대신 원혼이 풀어놓은 보따리와 검·경의 수사로 새로 드러나는 단서를 조합한다. 그렇게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했고,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임신부 자살사건이 사실은 타살에 의한 살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드라마 '싸인'의 자문역을 맡은 최영식(53) 수석법의관은 20년 넘게 국과수를 지켜왔다. 그에게서 드라마에 나온 허구과 진실, 법의관으로서의 삶을 들어봤다.



#시청자에 익숙한 약물로 조작하는 것이 드라마더라



-드라마 '싸인'의 자문을 맡았는데, 실제로 법의관의 삶이 그렇게 드라마틱한가.




"처음엔 국과수가 어떤 일을 하는지 홍보하고 법의관의 현 상황을 알리기 위해 (자문에)응했다. 그런데 지금은 걱정이 많다. 정확한 팩트(사실)가 전달되지 않고 허구가 사실인 것처럼 포장돼 시청자가 오해하는 부분이 많아졌다. 예컨대 드라마 중 청산가리 0.3g이면 사람이 혼미한 상태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쓰러진다는 설정이 나온다. 하지만 청산가리의 약물 특성은 그렇지 않다. 목이 타들어가며 바로 사망한다. 만약 '혼미한 상황을 그리려면 다른 약물을 써야 한다'고 했는데도 제작자가 '시청자가 청산가리를 가장 잘 알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고 하더라. 안티몬이라는 약물은 구토를 유발시켜 일정 시간 후엔 기도가 막혀 죽음으로 모는 살해 도구로 묘사됐다. (웃으며)그런 사례는 없지요. 아무리 드라마틱한 전개를 원한다 해도 어느 정도 과학적 진실에 근거해서 대본을 썼으면 좋겠다."



-어디까지나 드라마 아닌가.



"드라마가 뭔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 드라마로 인해 모방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신중하고 진실되고 접근했으면 하는 것이다. 극중 윤지훈은 검사·경찰·법의관·국과수 연구원의 역할을 혼자 도맡아 한다. 시신 부검하고, 수사하고, 체포하고…. 드라마라도 사회 각 부문의 역할을 존중하고 그에 맞는 스토리를 그려줘야 하지 않겠나. 무엇보다 어이없는 것은 국과수에서 조작한다는 내용이다. 국과수에선 절대 조작이 일어날 수 없다. 극중 원장과 일부 법의관이 대기업으로부터 돈을 받고 사건을 은폐하거나 조작하기 위해 증거를 없애더라. 그런데 국과수는 한마디로 그럴 수 없는 시스템이다. 법의관, 법의조사관, 전문 사진사 등이 부검 내내 모든 기록을 다 적는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원하는 이는 사건을 열람할 수 있다. 드라마를 보면 '적당히 작당하면 조작이 가능한 곳이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아무리 드라마라도 어이가 없다."



#"(한국의)법의학자가 20명"이라면 외국 학회에선 "어느 도시냐"고 묻는다.



-드라마에선 부검 일과가 무척 바쁘다. 실제로는 어떤가.




"보통 일주일에 3건 정도 부검한다. 하루 걸러 한 번 꼴이다. 경찰ㆍ군 수사기관ㆍ검찰ㆍ법원 등이 부검을 의뢰하면 혈액·지문·모발·손톱·소변 등을 분석하고, 부검을 토대로 사망 종류ㆍ사인ㆍ사후 경과 시간ㆍ치사 방법 등을 감정한다. 이후 감정서를 해당 기관에 보내면 그것으로 임무가 종료된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4000~5000여 구 정도를 부검했다. 그 중 사인을 밝힌 것도 있지만 못밝힌 것도 있다. 현장을 직접 갔다면 '불명(unknown causes)'으로 처리된 사건을 더 많이 밝혔을텐데…. 현장엔 반드시 사인의 실마리가 있다. 그런데 법의관이 없는 현장이 너무 많다."



-왜 현장을 못가나.



"우선 현장에 나갈 인력이 없다. 제대로 사인을 분석하려면 법의관이 사건 발생 현장을 보고 직접 검시(시체의 외부를 검사하는 일)해 부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현재 인원으론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국과수 법의관 정원은 전국적으로 23명 밖에 안된다. 그것도 8년째 4명을 못채워 19명 뿐이다. 의대를 졸업한 이들이 병원보다 처우가 못한 국과수에 지원하지 않는다. (국과수 법의관은 4급 서기관 대우로 입사한다.) 해외 학회에서 한국 법의학자가 20~30명 된다고 하면 '어느 도시냐'고 묻는다. '어느 국가'가 아니라 '어느 도시냐'고 묻는다는 말이다. 여기에다 국과수 남부분원(부산 소재)에는 부검실도 없고 법의관도 없다. 사건이 일어나면 지역 대학의 법의학과 교수를 촉탁의사로 위촉해 부검을 맡긴다."



-그래도 큰 사건일 경우 현장에 가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선 경찰서 과학수사계 수사관이 현장에 나가 감식을 한다. 검시는 전공에 관계없이 검찰의 의뢰를 받은 공중보건의나 의사가 한다. 법의관은 그 때까지도 전혀 (움직일)권한이 없다. 검사가 법원에 압수·수색·검증 영장을 청구해서 영장을 발부받으면 그제야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한다. 법의관의 움직임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현장은 물건너가고 시체는 냉동된 상태에서 법의관이 움직인다는 얘기다. 경찰, 검사, 법원 모두 인체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다. 공중보건의나 의사 역시 해부를 하지 않고 시체의 겉만 본다. 이들이 봤을 때 '별것 아니다'라고 하면 부검을 하기도 전에 '별 사건도 아닌게' 된다. 외국의 경우 부검률이 20~30%인데 우린 6~7%밖에 안된다. 외국은 부검 결정권한을 법의학 검시관이 갖고 있다. 미국드라마 CSI(Crime Scene Investigation. 범죄현장조사반)를 봤다면 알 것이다. 미국에선 법의학 검시관이 현장에 가지 않으면 절대 현장을 훼손할 수 없게 돼 있다."



-푸켓 쓰나미 참사 때 자국민 신원을 모두 밝힌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고 들었다.



"아이러니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인력이 적어서 가능했다. 한 사람이 맡은 일이 너무 다양하고 많다 보니 그 경험을 외국 법의관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것이다. 법의학은 철저히 경험 의학이다. 기술적인 측면이나 사인에 대한 사례를 가늠하는 범위가 넓다. 또 1명 당 배당받는 사건들이 많아 '정확히' '빨리' 처리하다 보니 직관력이 높아졌다고 생각된다."



# 부검은 죽은 사람을 보는게 아니라 어떤 사연을 갖고 이곳에 왔느냐를 보는 것이다.



-많은 시신을 봤을텐데 부검할 때 어떤 생각을 하나.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에 중점을 둔다. 우리는 죽은 '사람'을 보는게 아니라 이 사람이 왜 이 곳(부검실)에 오게 됐는지 그 사연을 들여다 본다. 시신은 자신의 몸에 반드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기는 법이다."



-어떻게 법의관이 됐다.



"아마 처음부터 본인의 의지로 여기 온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공중보건의로 배정돼 왔다가 '누군가 해야 할 일'인데 아무도 하지 않으니 내가 해야겠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사명감이다. 자신의 의술로 죽음의 진실을 찾겠다는 의지라는 말이다. 나도 비슷했다. 1991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를 포함해 법의관은 5명이었다. 상황이 굉장히 열악했지만 우리는 밤마다 희망을 꿈꿨다. 술잔을 기울일 때면 '법의학을 위하여'를 외쳤다. 그 때에 비하면 좋아지긴 했다."



-최근에 부검실이 첨단화됐다고 하던데.



"예전엔 에이즈, 결핵 환자 등을 부검할 때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히 2009년 첨단 부검실이 생겼다. 오염된 공기를 아래로 눌러 밖으로 배출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래서 시신의 부패를 막고 세균과 악취, 감염에서 법의관을 보호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축적된 각종 사인에 대한 정보가 데이터베이스화 됐다. 시신의 사진이 부위별로 전송되면 자동으로 추청 사인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갖췄다. 올 7월엔 남부분원이 경남 양산에 새 둥지를 튼다. 이 곳에는 법의학실, 유전자분석실, 분석화학실, 약독물실, 물리분석실, 교통공학실 등이 들어서는데 영남권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ㆍ사고의 원인을 서울까지 올라올 필요없이 이곳에서 규명될 것이다."



-가장 어려운 사건, 기억에 남는 사건은?



"시신을 인수할 때 어떤 사인으로 결론지어질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어렵다’ ‘쉽다’를 말하기 곤란하다. 법의학은 선입견이 없는 시신이 말하는 진실을 캐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부검은 있다. 상처가 아주 많은 경우와 단서가 거의 없는 경우다. 전자는 그만큼 소견서를 쓸 때 시간이 많이 걸리고, 후자는 현장부터 살피지 못해 사인을 찾을 증거가 부족한 경우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 때다. 내가 법의학과장이었는데 감식 현장에 경찰과 함께 갔었다. 비교적 증거물을 획득하기 쉬웠다. 그래서 강조하는 것이 현장이다. 법의관은 현장에서의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고 이를 단서로 범인을 잡는데 일조해야 한다. 억울한 죽음으로 가는 미제 사건도, 불명도 줄어들 것이다."

(최 법의관은 "과학적 진실을 찾는 사람은 증거로만 대중 앞에 서는 것이 맞다"며 사진 촬영을 정중히 사양했다.)



글·사진=이지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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