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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과의 긴 싸움에 예비비 바닥 날라

중앙일보 2011.02.14 00:40 종합 26면 지면보기



방역에 절반 이상 써 … 시·군마다 예산 운용 비상





강원도 화천군은 14일부터 구제역 방역초소에서 일하는 유급인력을 36명으로 줄인다. 방역비로 올해 군 전체 예비비 22억원 중 13억원을 이미 써 돈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종전까지는 총 33개 초소에서 최대 280명이 근무했다. 구제역을 막기 위해 초반에 예비비를 많이 쓴 결과 도리어 방역 인력을 줄여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화천군 관계자는 “예산이 없어 방역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방역활동이 허술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충북 증평군 김기옥 예산담당은 각 실·과에서 올라온 서류만 보면 한숨이 나온다. 하나같이 구제역 방역에 써야 한다며 돈을 달라는 요구다. 증평군은 올해 예비비 17억6000만원 가운데 10억원을 구제역 방역비용으로 사용했다. 구제역이 3~4월까지 계속되면 남은 예비비도 모두 쏟아 부어야 한다. 증평군은 그래서 시급한 사업이 아니면 중단하고 그 돈을 방역비용으로 끌어다 쓰기로 했다. 구제역이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자치단체 살림을 더 쪼그라들게 만들고 있다.



 구제역이 발생한 시·군은 방역에만 예비비의 절반 이상을 썼다. 이로 인해 여름철 태풍이나 냉해 등 자연재해가 발생해도 지원해 줄 돈이 부족해질 공산이 크다. 방역비용에서 차지하는 정부 지원은 절반도 안 된다. 증평군이 방역에 쓴 돈은 14억1130만원. 예비비 10억원, 특별교부금 3억원. 국비 1억원, 도비 1130만원 등이다. 군이 65% 가량을 부담했다. 증평군의 올해 예산은 1594억원으로 충북도 내 12개 시·군 가운데 가장 적다.



김기옥 담당은 “구제역이 3월까지 계속되거나 작년처럼 냉해라도 오면 예비비가 모두 바닥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경남도는 계속되는 시·군의 방역비용 추가 요청으로 곤혹스럽다. 경남지역 18개 시·군이 “한 달 정도 더 방역을 해야 한다”며 방역비 135억원을 요구해서다. 경남도 김주붕 가축방역담당은 “예비비는 여름철 풍수해 등을 위해 남겨둬야 하기 때문에 전액 지원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경북 예천군도 39억원의 예비비 중 이미 14억원을 구제역 방역을 위해 지출했다.



 이 때문에 추가경정예산 편성까지 논의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황태연 예산팀장은 “평년에도 예비비의 50% 정도는 홍수나 태풍피해 등에 쓰기 위해 남겨 두어야 하는데 예비비가 벌써 바닥나 경기도 차원에서 추경편성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나 국회 차원의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가축전염병 예방법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법은 구제역 등이 발생했을 때 비용의 전액 또는 일부를 지원토록 하고 있지만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논란이 크다. 정범구 국회의원(민주당)은 “구제역은 매년 되풀이되는 사태인 만큼 국회에서 구제역 특별법을 제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찬호·신진호 기자



◆예비비=홍수·태풍·냉해 같은 예측할 수 없는 현안이 발생했을 때 사용하기 위해 책정한 예산. 지방자치단체는 통상 한 해 예산의 1% 가량을 예비비로 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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