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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회의 무대에 선 15세 병우와 윤희

중앙일보 2011.02.14 00:28 종합 35면 지면보기



한국 청소년으로는 처음
제네바 아동권리위원회서
발표자로 한국 실태 보고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들고 있는 배병우군(오른쪽)과 김윤희양.



지난 10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아동권리위원회 회의실. 한국의 아동·청소년 인권을 심사하기 위해 인권위원 18명이 모인 자리에 한국 청소년 두 명이 발표자로 참석했다. 경남 합천에서 온 배병우(15)군과 김윤희(15)양이었다. 합천 가회중 3학년인 두 사람은 한국 청소년으로선 처음으로 회의에 참여했다. 유엔에서는 만 18세 이하를 ‘아동(Child)’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 아동의 권리가 충분히 존중 받지 못하는 이유는 어른들이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5분 간의 발표가 끝나자 위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한국 아동들은 초상권을 침해당할 때 누구에게 얘기합니까?” “체벌은 얼마나 자주 당하나요?”



 배군과 김양의 답변에 위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12일 귀국한 배군과 김양을 서울 마포구의 국제아동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실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이번 회의 참석이 전환점이 될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은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다. 정부는 5년마다 한번씩 국내 아동·청소년 인권 현황에 관해 보고서를 제출했다. 객관성 확보를 위해 정부와 별도로 민간단체들도 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그 동안 아동·청소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보고서는 없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이번 보고서를 준비하며 아동·청소년들이 말하는 인권 침해 사례를 담기로 했다. 보호시설이나 농촌 등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 107명을 모아 지난해 인권 캠프를 개최했다. 이들은 유엔이 보장하는 아동의 권리를 공부하고 토론했다. 인터넷을 통해 침해 사례를 모으기도 했다. 배군과 김양도 이 캠프에 참가했다. 두 사람이 사는 합천군 가회면은 흔한 보습학원 하나 없는 외진 동네다.



 이렇게 모인 671명의 답변을 항목 별로 정리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가장 부족하다고 답했다. “소풍 장소를 정할 때나 가족들과 TV를 볼 때, 선생님과 부모님들이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 다음으로 입시교육으로 놀이나 여가를 즐길 권리가 없다는 답변이 많았다. “선생님이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검사해 기분이 나빴다”는 답도 있었다. 캠프 참석자들은 이 보고서를 제네바에서 직접 전달할 대표로 배군과 김양을 뽑았다.



 “어른들은 우리들이 생각이 짧다고 해요. 그러나 우리에게도 고민이 있고, 지키고 싶은 비밀이 있어요.”



 김양은 “어엿한 국민인 청소년들에게 좀 더 빨리 투표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군은 “피부색·성별 때문에 차별 받지 않을 권리 역시 폭넓게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발표한 보고서와 질의응답 내용은 오는 9월 정부 보고서 심사 때 중요한 참고자료로 쓰이게 된다. 두 학생은 합천으로 돌아가 어린이·청소년들의 인문학 토론 모임을 만들 계획이다. “왜 인문학이냐”는 물음에 “인권과 인문학은 무관하지 않다”는 어른스런 대답이 돌아왔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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