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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갇힌 7번 국도 ‘악몽의 46시간’

중앙일보 2011.02.14 00:20 종합 1면 지면보기



최정열씨 ‘부산 → 삼척 → 부산’ 탈출기 … 영동 오늘도 최고 50㎝ 눈폭탄
6시간 버스에 갇히고, 1시간 눈길 헤매고, 13시간 만에 라면 한 그릇



특공대도 투입 육군 8군단 특공부대원들이 13일 강릉시 고립지역 내 환자 수송을 위해 헬기로 투입되고 있다. [연합뉴스]











눈폭탄 때문에 2박3일간 삼척시의 읍사무소·마을회관과 버스에 갇혀있다. 빠져나온 최정열(46)씨가 13일 오후 ‘고난의 탈출기’를 설명하고있다. [이찬호 기자]



13일 오후 1시30분 동해발 구전행 열차에 몸을 실은 최정열(46·강릉시 연곡면 동덕리)씨는 지난 46시간10분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졌다.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그는 11일 오후만 해도 강릉에 사는 아내와 두 딸을 만날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그는 2박3일간 ‘공포의 7번 국도’에 갇혀 눈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간신히 눈 폭탄에서 빠져나왔지만 집에 가는 걸 포기하고 다시 직장이 있는 부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100년 만의 눈 폭탄 속에서 살아났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폭설이 이렇게 무서울 줄 몰랐습니다. 구조하려 애써 준 장병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최씨가 부산의 건설회사에 취직한 것은 지난해 12월. 이후 최씨는 한 달에 두 번 쉬는 날마다 가족을 만나는 즐거움으로 타향살이의 어려움을 이겨 냈다. 그가 부산발 강릉행 시외버스를 탄 것은 지난 11일 오후 3시20분. 가족 얼굴을 그리며 마음이 들떴다. 고3 수험생이 되는 큰딸 윤화(17)와 나이 마흔에 본 작은딸 윤서(6) 생각에서다.



 부산에서 출발한 시외버스는 쏟아지는 눈을 뚫고 7번 국도를 따라 북진했다. 경북 울진을 지나 강원도 땅에 진입하자 눈발이 더 거세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최씨는 곧 악몽이 시작될 것이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1시간30분 정도만 더 가면 강릉에 도착할 것이란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이런 기대감은 곧 절망이 됐다.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를 지난 버스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오후 7시 호산나들목을 200여m 지난 지점에서 버스는 멈췄다. 차창 밖으로는 눈이 폭탄처럼 쏟아졌다. 버스는 있는 힘을 다해 1㎞ 정도를 전진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고갯길에 멈춰 선 버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버스 앞뒤로 차량 100여 대의 발이 묶여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최씨와 승객 20여 명은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일단 기다렸다. 여성들은 화장실 다녀오는 게 불편해 물을 먹지 않았다. 먹을 것이라고는 일부 승객이 가져온 과자가 전부였다. 서로 나눠 먹었다. 이렇게 버스에서 6시간을 버텼다. 하지만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었다. 버스 문을 열었다. 눈이 세차게 쏟아져 얼굴을 때렸다. 눈조차 뜨기 힘들었다. “걸어갑시다.” 한 승객이 소리쳤다. 서로 손을 잡았다. 발을 내디디니 눈이 허벅지까지 찼다. 발은 물론이고 바지도 다 젖었다. 한기가 몰려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한 시간을 걸어 새벽 2시쯤 호산정류장에 도착했다. 일종의 시외버스 휴게소였다. 버스정류장에는 부산에서 출발한 다른 시외버스 3대가 더 있었다. 정류장은 승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정류장 간이매장에는 먹을 게 하나도 없었다. 이미 다 떨어진 상태였다. 최씨는 겨우 정류장 옆 분식집에서 라면을 사 먹었다. 전날 낮에 회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13시간 만의 요기였다. 이후 최씨는 다른 승객들과 함께 정류장에 발이 묶인 시외버스에서 밤을 지새웠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전화를 했더니, 오히려 아내가 울더라고요. 전 괜찮다고 했는데….” 최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해가 밝았다. 온 세상이 하얀 눈 천지였다. 오전 8시가 돼서야 경찰과 읍사무소 직원 등의 안내로 정류장에서 700여m 떨어진 원덕읍사무소로 갔다. 이곳에서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운 최씨에게 좋은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옷은 젖은 데다 잠도 제대로 못 자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오후에 소방 헬리콥터가 날아와 임시구호세트를 떨어뜨렸다. 모포 한 장과 치약·비누·수건 등이 들어 있었다.



 “하룻밤을 더 이곳에서 새워야 한다고 하니 답답하더군요. 하지만 모두 침착하게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남 탓 하지 않고요. 천재지변인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12일 저녁 네 끼 만에 밥을 먹은 최씨는 읍사무소에서 배정해 준 호산1리 마을회관에서 잠을 청했다.



 13일 아침 최씨는 강릉으로 갈지, 아니면 타고 온 버스 편으로 다시 부산으로 되돌아가야 할지 망설였다. 되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는 생각에 강릉으로 가기로 했다. 최씨는 운 좋게 삼척행 승용차를 얻어 탔다. 1차선 길이 뚫려 있었다. 사지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강릉으로 가지는 못했다. 직장으로 복귀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동해로 가서 오후 1시30분 구전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가족들을 만나는 것은 다음번으로 미뤘다. 7번 국도에서 악몽의 2박3일을 보낸 그는 임시구호세트 하나 챙긴 채 돌아서야 했다. 최씨는 “두 딸을 안아 주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아쉽다”며 “그래도 이번 경험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삼척=이찬호·유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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