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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한반도 운명의 순간(Ⅱ)

중앙일보 2011.02.14 00:19 종합 38면 지면보기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천안함 폭침 한 달 후인 지난해 4월 26일 나는 ‘한반도 운명의 순간’이라는 글을 썼다. ‘덩샤오핑과 고르바초프가 개혁·개방에 성공한 건 개인숭배와 부패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다르다. 개인숭배와 부패가 극심하며 이는 김정은에게도 세습될 것이다. 개혁·개방을 하면 국민은 진실에 눈을 뜨게 되고 이는 김정일 부자에겐 몰락을 의미한다. 그러니 김정일은 개혁·개방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서론은 이런 내용이었다.



 김정일은 구조적 한계 때문에 비핵화·개방이라는 소프트 트랙(soft track)이 아니라 벼랑 끝 대결이라는 하드(hard) 트랙을 선택했다. 하드 트랙은 핵강국을 만들어 미국과 한국을 위협하는 것이다. 제네바 합의·6자회담·남북 정상회담은 하드 트랙을 위장한 것이고 천안함 폭침은 하드 트랙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6자회담 같은 환상에 매달리지 말고 대북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서 ‘한반도 운명의 순간’에 대비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했다.



 그러나 남한사회는 극도의 분열을 보였다. 제1 야당 민주당은 천안함 폭침 규탄 결의안에 반대표를 찍었다. 핵심 진보좌파 지식인들은 끝까지 정부를 의심하고 북한을 감쌌다. 지금 2012년 진보진영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는 이는 그때 천안함 외부폭발 주장을 ‘소설’이라고 했다. 남한이 먼저 천안함 사태를 접어야 한다는 논리도 많이 등장했다. 북한문제 전문가라는 미국 조지아대 박한식 석좌교수는 북한에 다녀온 후 “북한은 (천안함을) 자기네들이 하지 않았다고 철저하게 믿고 있다”는 ‘최면상태’의 발언을 하면서 천안함 사태 종결을 주장했다.



 남한의 분열은 김정일이 노린 바로 그것이었다. 북한 어뢰는 천안함과 동시에 남한의 이념적 허점을 강타했다. 만약 민주당이 폭침 규탄에 동참하고 진보좌파 지식인들이 만행을 거세게 나무랐다면 북한이 과연 제2의 도발을 할 수 있었을까. 연평도에서 국민 4명이 추가로 죽은 것에는 ‘분열세력’의 책임이 적지 않다.



 튀니지의 벤 알리가 쫓겨나고 이집트 무바라크의 30년 독재가 무너졌다. 이집트 국민은 2대 세습을 막아냈다. 1649년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이 왕의 목을 친 이래 혁명은 여전히 살아있다. 그 바람은 산맥과 바다를 넘고 있다. 이런 엄청난 변혁이 김정일에게는 강 건너 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김일성·김정일은 1989년 동구권 몰락의 바람을 막아내기는 했다. 루마니아 차우셰스쿠가 인민에게 처형당해도 김일성 정권은 별 탈 없이 넘어갔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22년이나 지났고 북한은 더 썩었으며 더 굶주리고 있다. 정권이나 주민이나 온통 “쌀” 얘기뿐이다. 지방에는 목탄차(木炭車)가 굴러다닌다. 연평도로 넘어온 목선(木船)을 보라. 추운 겨울 그 낡고 작은 배에서 31명이 먹고 자고 배설했다. 소말리아 주민도 그런 배는 타지 않을 것이다. 이 목선이 김정일 체제의 마지막을 알리는 오동나뭇잎은 아닌가.



 물론 마지막의 시기와 방법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확신할 수 있는 게 있다. 김정일은 핵을 포기하거나 개혁·개방에 나서지는 못한다, 모든 대화는 구조적으로 위장(僞裝)일 수밖에 없다, 기아와 고통이 한계에 이른 정권에서 3대 세습은 불가능하다, 언제일 지는 모르지만 일단 터지면 둑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1989년 1월 동독의 호네커 서기장은 “베를린 장벽은 50년 또는 100년은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해 11월 9일 장벽은 무너졌다. 그리고 이듬해 10월 3일 독일은 통일됐다. 지금 한반도에는 ‘운명의 순간’이 오고 있는지 모른다. 천안함에 다가가던 북한 어뢰처럼 그 운명은 한국인의 방심(放心)을 강타할 수 있다. 북한의 급변사태와 통일 국면은 남한 국민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것이다. 그 파도는 개헌이나 무상복지를 한순간에 삼켜버릴지 모른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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