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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신발자식

중앙일보 2011.02.14 00:17 종합 39면 지면보기








인류가 처음 신발을 신은 건 2만6000~4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이때 이후 인류는 엄지를 뺀 네 발가락 뼈가 급속히 얇아졌다. 발을 보호하는 신발 없인 설명될 수 없는 진화였다. 날카로운 가시와 돌멩이의 아픔에서 해방시켜준 이 발명품은 그래서 사랑의 대상이자 특권의 상징이었다. 고대 그리스시대에는 귀족·평민만 신발을 신었다. 노예는 맨발로 다녀야 했다. 고대 중국에서도 평민들이 나무나 가죽 샌들을 신었는데 이게 오랑캐와의 구별 기준이었다.



 자기 짚신은 본인이 짜야 했던 옛 한국에서도 신발 사랑은 극진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섣달 그믐, 아이들은 신발을 방에 두거나 안고 자야 했다. 안 그러면 야광귀(夜光鬼)라는 귀신이 밤새 돌아다니다 맞는 신발을 찾아 신고 달아난다는 거다. 이렇게 신발을 도둑맞으면 한 해 내내 액운이 따른다. 신발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풍습이다.



 그러나 중동에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온갖 곳을 밟고 다니기에 신발, 특히 바닥은 더러움의 표상이다. 영미와 한국의 대표적 욕설 ‘×자식(son of a bitch)’의 중동판 버전이 ‘신발자식(이븐 알 쿤다라)’이다. 신발 바닥을 보이는 건 물론 앞끝이 상대를 향하게 놓아도 큰 실례다. 1995년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미국 하원의원 빌 리처드슨(현 뉴멕시코 주지사)과의 면담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도 신발 탓이었다. 리처드슨이 다리를 꼬고 앉아 바닥이 보였다는 거다.



 그랬기에 2008년 이라크에서 한 카메라기자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벗어 던진 건 일대 사건이었다. 중동인들의 눈으론 책·재떨이를 던진 것과는 차원이 다른, 분명한 거사였다. 그 후 많은 인사를 향해 신발이 날아갔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인도 만모한 싱,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에다 중국 원자바오 총리에게까지 신발이 던져졌다. 2009년에는 팔레스타인 침공 항의시위가 벌어진 런던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 무수한 신발이 쏟아졌다. 영국 법원은 진압 경찰을 향한 신발 투척을 폭력이 아닌 종교적 의사표현으로 인정, 논란을 불렀다.



 지난 10일 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 거부 메시지가 발표되자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선 수많은 신발이 물결쳤었다. 격분한 시위대들은 너나없이 신발을 흔들며 하야를 외쳤다. 극에 달한 군중의 분노는 신발로 표출됐고 이를 본 무바라크는 다음 날 퇴진을 결심한다. 튀니지에서 촉발된 중동 민주화의 불길이 이집트를 거쳐 요르단·시리아 등 주변으로 번질 기세다. 이들 이슬람 형제국에서도 신발의 바다가 물결칠지 지켜볼 일이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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