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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기한제

중앙일보 2011.02.13 20:07 종합 37면 지면보기








지금보다 난방 수단이 부실했던 옛 사람들은 겨울이 따뜻하면 좋아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겨울이 따뜻하면 나라에서 추위가 오기를 비는 기한제(祈寒祭)를 지냈다.



『국조보감(國朝寶鑑)』 성종 17년(1486) 12월조에 ‘겨울이 따뜻해서 얼음이 얼지 않자 기한제를 지내게 했다’는 기록이 이를 말해 준다. 성종의 아들 연산군은 재위 5년(1499) 겨울 “기한제를 끝내니 찬바람 불어오네/하늘에서 작은 정성에 감응하셔서 곧 보답하시는구나(祈寒初畢澟風吹/天感微誠報片時)”라는 시를 지었다.



춥지 않은 겨울보다 더 큰 문제는 눈이 없는 겨울이었다. 눈이 많이 와야 땅이 기름져서 보리와 밀이 잘 자라기 때문이다. 눈이 안 오면 보리나 밀이 상하리라고 걱정했다.



 그래서 납일(臘日) 전에 세 번 눈이 와 천지가 설국이 되는 삼백(三白)을 상서로 여겼다. 납일은 한 해의 농사상황에 대해 신에게 제사 지내는 날인데 중국에서는 동지 뒤의 셋째 술일(戌日)로 여겼다.



조선은 인조 14년(1636) 통신사의 일행으로 일본에 갔던 황호가 일본인들에게 “우리나라에서는 (동지 뒤) 미일(未日)을 (납일로) 쓰는데, 아마 동방은 본디 곳간이 미방(未方)에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중국과 달랐다.



 눈이 오지 않으면 눈을 비는 기설제(祈雪祭)를 지냈다. 『국조보감』 철종 4년(1853) 12월조는 ‘겨울에 눈이 오지 않자 종묘, 사직, 북교(北郊·창의문 밖)에 기설제를 지냈는데 이튿날 큰눈이 왔다’고 전한다.



숙종 8년(1682)에는 두 번의 기설제를 지냈으나 눈이 오지 않자 12월 16일 세 번째로 삼각산·목멱산(木覔山·남산)·한강·풍운뇌우산천단(風雲雷雨山川壇)과 우사단(雩祀壇·기우제를 지내는 단)의 다섯 곳에 다시 지냈다. 풍운뇌우산천단은 서울 청파역(靑坡驛) 근방에 있던 풍운뇌우산천성황단(風雲雷雨山川城隍壇)의 가운데에 위치한 풍운뇌우의 신좌(神座)를 가리킨다.



 고려 때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는 ‘여러 신사(神祠)에 눈을 비는 제문’이 있는데 “바라건대 구현(九玄·도교의 신)께서 내리도록 인도하셔서/삼백(三白)의 상서로움을 늦추지 마소서(罔稽三白之祥)”라는 구절이 있다. 삼한사온(三寒四溫)이 삼한사한(三寒四寒)으로 변한 올겨울 함석헌 선생이 애송했던 영국 시인 셸리의 “겨울이 만일 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오”라는 싯구가 생각난다. 겨울은 이미 왔으니 봄이 곧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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