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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권의 봄 시작, 모두가 변화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

중앙선데이 2011.02.12 23:27 205호 4면 지면보기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마침내 물러났다. 그가 사임한 2011년 2월 11일은 아랍권의 역사에 획을 그은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전망이다.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이집트 시민혁명의 의미와 파장을 현지 석학과의 인터뷰를 통해 진단했다. 아랍권을 취재 중인 배명복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이 아랍혁명의 진원지인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 역사학계의 거두인 칼리파 차터(74·사진) 튀니스대 교수를 만났다.

튀니스대 칼리파 교수가 진단한 ‘이집트 키파야 혁명과 아랍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에서도 시민혁명으로 독재체제가 무너졌다. 아랍권에 변화의 봇물이 터진 것인가.
“시민혁명으로 수십 년 독재체제가 붕괴된 것은 튀니지와 이집트가 똑같지만 파장과 의미는 다르다. 튀니지는 아랍권의 중심 국가는 아니다. 아랍권 전체를 바꿀 힘은 없다. 이집트는 아랍권의 중심 국가다. 아랍권의 오랜 문화와 역사를 대표하는 인구 8500만 명의 대국이다. 이집트가 흔들리면 아랍권 전체가 흔들리고, 이집트가 변하면 아랍권 전체가 변한다. 튀니지가 아랍권의 변화에 불을 붙인 불씨였다면 이집트는 타오르는 불꽃이다. 바야흐로 ‘아랍권의 봄’이 시작됐다.”

-다음 차례는 어디가 될 것으로 보는가.
“알제리에서 요르단, 예멘에서 수단까지 이미 아랍권 곳곳에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당장 다음이 어디가 될지 점칠 수는 없다. 하지만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33년째 장기집권 중인 예멘에서 다음 주 대대적인 민중 봉기가 일어나도 놀랄 일은 아니다. 튀니지와 이집트 사이에 있는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에서 무아마르 카다피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41년째 국가원수로 있는 카다피는 세계 최장수 집권 기록을 매년 경신하고 있다. 어디가 먼저고, 어디가 나중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변화가 시작됐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시간과 순서의 문제일 뿐 아랍권의 모든 나라가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같은 아랍권이라도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물론이다. 아랍권은 산유국인 걸프 지역 국가들과 비걸프 국가들로 구분할 수 있고, 모로코에서 리비아까지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국가와 홍해 동쪽의 중동국가로 구분할 수도 있다. 튀니지처럼 문화적 변화를 받아들인 나라와 문화적 변화는 거부하면서 서구식 시장주의만 받아들인 나라로 구분할 수도 있다. 산유국이냐 아니냐도 중요한 차이다. 사우디아라비아나 리비아, 알제리 같은 산유국은 경제적 수단을 통해 국민의 불만을 무마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튀니지 같은 비산유국에는 그런 수단이 없다. 모로코나 요르단, 사우디처럼 왕정을 유지하고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도 있다. 나라마다 변화의 양태는 다르겠지만 변화를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는 점은 마찬가지다.”

-무바라크 체제의 붕괴가 이집트의 민주화로 귀결될 수 있다고 보는가.
“낙관할 것도, 비관할 것도 아니다. 대내외적으로 많은 변수가 있다. 가장 큰 변수는 군의 역할이다. 군은 중립을 지키면서 원만한 정치개혁 과정을 통해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로 민간에 권력을 넘겨줄 수 있어야 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건설적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국민의 인내와 자제력도 필요하다. 미국과 유럽 등 국제사회도 적극적인 지원과 성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졌을 때 이집트는 민주화라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아랍권의 문화나 정서와 양립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시민혁명은 이런 시각이 잘못됐음을 입증하는 것인가.
“그렇다. 잘못된 시각이다. 이슬람이란 종교에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요소는 없다. 코란은 독선이 아니라 협의를 강조하고 있다. 1956년 제정된 튀니지 헌법은 타인의 종교적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무슬림과 비무슬림을 구별하지 않고, 종교의 자유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함으로써 세속화의 길을 열어 놓았다.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이슬람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종교는 개인의 문제이지 공공의 문제가 아니다. 이 점을 혼동하니까 자꾸 오해를 하는 것이다. 아랍권 문화와 민주주의의 ‘양립불가론’은 서구가 만든 편견일 뿐이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시민혁명으로 아랍권이 역사적 전환기를 맞은 것인가.
“북아프리카나 중동의 아랍권 민중이 절대권력에 본격적으로 저항한 사례가 없다. 이번 사태는 아랍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19세기 아랍권에서도 엘리트 계층을 중심으로 개혁 운동은 있었다. 20세기에는 서구의 식민지 지배에 반대하는 민중적 저항 운동도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혁명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연히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이 14일로 꼭 한 달이다. 지난 한 달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온갖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진 기간이었다. 아직은 열정의 시기고, 분노의 시기다. 하지만 모든 요구를 다 충족시킬 순 없다. 과도기에 필요한 것은 목소리를 낮추고 차분하게 기다리는 자세다. 과도정부에 요술 방망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과도정부를 책임진 사람들은 개혁 작업을 서두르고, 나머지 사람들을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가장 시급한 개혁은 사회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개혁안이 마련되고 시행에 들어가면 사회가 점차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본다.”

-시민혁명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보나.
“토론의 제도화다. 토론 없이는 투명성을 확보할 수 없다. 지난 정부에는 투명성의 원칙이란 게 없었다. 언론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해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막았고, 정부 정책이나 의견에 대한 반박을 원천 봉쇄했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자유의 책임성이다. 비판하는 것은 자유지만 남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심사숙고 해야 한다. 자유가 보장된다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권리도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민주주의를 위한 훈련 기간이다.”

-아랍권의 시민혁명이 왜 튀니지에서 시작됐나. 튀니지만의 특수성이 있는 것인가.
“재스민 혁명은 초대 대통령이었던 하비브 부르기바가 매설해 둔 시한폭탄이 터진 것이다. 튀니지의 특수성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부르기바는 세속주의 원칙에 입각한 현대 튀니지의 국가적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사회적 권리와 교육에서 남녀평등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중혼제도를 금지했다. 깨어 있는 시민을 키운 것이다. 튀니지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인구 비율이 90%로 아랍권에서 가장 높다. 이집트보다 먼저 튀니지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튀니지 소요 사태의 화근은 경제 문제 아니었나.
“그렇다. 부르기바가 만든 사회적 엘리베이터가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정권에서는 작동을 멈췄다. 과거에는 가난한 사람도 교육을 통해 사회적 신분 상승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다. 소요 사태가 처음 시작된 중남부 지방은 대졸자의 43%가 실업자다. 과거에 이룩한 사회적 성취가 벤 알리 정권에서 실종되면서 사회 모든 계층에 걸쳐 불만이 폭발 일보 직전까지 쌓였다. 중산층은 중산층대로 인권 문제가 불만이고, 마피아 조직을 방불케 하는 벤 알리 일가(一家)의 전횡을 눈 뜨고 보아야 하는 것도 큰 불만이었다. 한 청년의 분신자살이 누적된 불만에 불을 붙였고, 여기서 시작된 사회적 저항이 정치적 저항으로 이어져 시민혁명으로 순식간에 발전한 것이다. 이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벤 알리는 시위 사흘 만에 물러났다. 반면 무바라크는 18일 만에 물러났다. 이 차이를 어떻게 보는가.
“튀니지와 달리 이집트에는 복잡한 국제관계와 역학이 작용하고 있다. 당장 이스라엘과의 중동평화 문제가 걸려 있다. 무슬림 형제단 등 이슬람 원리주의 문제도 있고, 수에즈 운하의 통행권 문제도 있다. 무바라크의 퇴진이 자신들의 이해에 미칠 영향을 미국과 이스라엘, 유럽국들은 면밀히 따져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반면 튀니지의 경우에는 이런 문제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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