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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골프보다 소중” … 매일 와인 한 병, 게임 중엔 시가

중앙선데이 2011.02.12 20:26 205호 14면 지면보기
지난달 바레인의 로열 골프클럽에서 열린 유러피언 투어 볼보 골프 챔피언스에서 경기 중 시가를 피우고 있는 히메네스. 시가에 대한 비난에 그는 “한 번뿐인 인생이라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회에서 그는 2위를 했다. [핑골프 제공]
나이에 걸맞지 않은 꽁지머리에 올챙이처럼 볼록 나온 배 때문에 그리 볼품은 없었지만 그는 어깨를 편 채 수탉처럼 당당하게 드라이빙 레인지로 들어왔다. 그런데 유러피언 투어의 다른 선수들이 대부분 젊고 헌칠하며 세련됐기 때문에 그가 오히려 돋보였다. 미겔 앙헬 히메네스(47·스페인)는 예상대로 두터운 쿠바산 시가를 물고 있었다. 유러피언 투어 오메가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을 하루 앞둔 9일 대회장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에미리츠 골프장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악수할 땐 손이 저렸다. 역도선수처럼 몸을 만들고 세계랭킹 1위가 된 리 웨스트우드(37·잉글랜드)의 손을 잡을 때보다 더 뻐근했다. 그는 생각보다 통뼈였고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히메네스는 일부러 기자가 못 알아듣는 스페인어로 인사를 하고는 “스페인어도 모르느냐”고 농담을 했다.

두바이서 만난‘필드의 자유인’ 미겔 앙헬 히메네스


히메네스는 스페인이 자랑하는 라 만차의 기사 돈키호테처럼 엉뚱한 구석이 있다. TV 중계를 해도 시가를 입에 문 채 벙커샷을 하고, 틈틈이 에스프레소를 음미하며, 저녁이면 스페인 최고 와인 리호아를 즐기는 낭만주의자다. 고급 스포츠카 페라리 애호가인데 운전보다는 정비를 더 좋아한다. 미국 투어에 가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도 유럽투어를 지킨 첫 유럽 선수다. 그는 인생을 즐긴다.

그는 시가에 관한 얘기를 하자 “스포츠맨에게 와인·커피·시가 같은 것은 물론 좋지 않다”고 했다. 자신의 행동이 어린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철학은 분명했다. “스포츠가 전부가 아니라 인생도 중요하다. 인생은 단 한 번이다. 와인과 시가, 에스프레소는 물론 위스키·페라리 등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모든 스위치를 끄고 해변에 누워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은 세계랭킹 1위 리 웨스트우드, 2위 마틴 카이메르(독일), 3위 타이거 우즈(미국) 등이 참가한 메이저급 대회다. 그러나 대회장 입간판 한가운데에는 히메네스의 사진이 있고 우즈와 웨스트우드가 좌우에 배치됐다. 히메네스는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다. 그렇더라도 우즈와 웨스트우드를 밀어내고 주인공 대우를 받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가 유럽 팬들이 가장 매력을 느끼는 선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성공을 위해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규격화된 삶을 사는 요즘 골프 선수들 사이에서 히메네스는 빛이 난다.

40세 이후 13승, 지난해 유럽투어 3승
그는 나이가 들면서 더 잘 한다. 32세까지 우승이 없었는데 40세가 지난 후 13승을 했다. 지난해 유러피언 투어에서 3승을 거뒀고, 노장으로는 드물게 유럽과 미국의 대륙대항전인 라이더컵에 나갔다. 싱글매치에서 그는 티샷 거리가 40~50야드 더 나가는 미국의 최장타자 버바 왓슨을 꺾기도 했다. 히메네스는 “힘으로 다 되는 거라면 골프가 매력이 없지 않겠느냐. 골프는 정확성의 게임”이라고 말했다.

히메네스는 스페인 남부의 말라가에서 태어났다. 형제가 7명이나 되는 대가족이었다. 그의 큰형에게서 골프를 배웠다. 그다지 체계적이지 못했다. 스윙이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악조건 속에서 골프를 배웠기 때문에 매우 감각적인 플레이어가 됐다는 평이 있다. 역시 형에게 스윙을 배우고 공이 없어 돌을 때리며 성공한 스페인의 전설 세베 바에스트로스와 비견되곤 한다. 히메네스는 지난달 말 열린 볼보 챔피언스에서는 퍼트가 잘 안 돼 퍼트를 부러뜨린 후 로브웨지로 퍼팅을 해 3연속 버디를 잡았다. 그는 “퍼터가 기분이 나쁜지 혼자 가방으로 날아가 부러져 버려서 어쩔 수 없이 웨지를 썼다”고 농담을 했다.

그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이런 낙천주의다. 그의 에이전트 세라 필립스는 “미겔은 고민하지 않는다. 다른 선수들이 심리학자를 만나서 상담받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히메네스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즐긴다. 한 번뿐인 인생을 즐겨야지 왜 고민 속에 사느냐”고 말했다. 라틴계라 천하태평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남유럽 선수라고 해서 다 그런 건 아니다. 확고한 신념을 갖지 못하면 태산처럼 무거운 골프의 압박감을 이기기 어렵다. 스페인의 골프 천재로 불렸던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오랫동안 깊은 슬럼프에 빠졌었다.

그의 몸은 매우 유연하다. 용품회사 핑의 유러피언 투어 담당 도미니크 그리피스는 “유연성으로 보면 미겔은 20세 정도일 것”이라고 했다. 히메네스는 “올리브 오일 같은 스페인의 좋은 음식, 좋은 와인을 먹고 좋은 생각을 하면 유연해진다. 고향 말라가 사람들은 다 몸이 유연하다”고 농담을 한 후 “원래 몸이 유연하며 경기를 앞두고 스트레칭에 몰두한다”고 했다.

몇 년 전 ‘인생을 즐겨야 하기 때문에 러닝 머신에 올라가 있을 시간이 없다’라는 히메네스의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그는 “아무래도 나이가 드니 운동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다른 선수처럼 많이는 아니지만 요즘은 트레이너를 고용해 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투어에 나왔을 때 세베 바에스트로스, 닉 팔도가 있었고 이후 로리 매킬로이 같은 젊은 선수들과도 경쟁하고 있는데 이보다 더 어린 선수가 나와도 혼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도 다른 선수에 비해 연습 시간은 적다. 오전 한 시간 연습한 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오후 한 시간 연습 후 또 에스프레소다. 대신 연습할 때 집중력은 최고라고 한다. 드라이빙 레인지와 연습 그린에서 다른 선수들과 잡담을 거의 하지 않는다. 웨스트우드는 “미겔은 경기가 시작되는 목요일이 되면 눈빛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래도 매일 저녁엔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한 병쯤 마신다. “한 병 정도, 양이 아니라 질로 와인을 마신다”고 히메네스는 말했다.

캐디 집 놀러가 요리 직접 만들어
히메네스는 의리가 있는 선수로 유명하다. 10일 1라운드가 끝난 후 지난해 이 대회에서 우승을 함께한 캐디의 집에 가서 스페인의 파예야 요리를 해줬다고 한다. 뒤늦게 스타가 된 후에도 IMG 같은 큰 회사로 옮기지 않고 12년 동안 동고동락한 에이전트와 함께하고 있다. 용품업체 핑과도 20년 넘게 함께 간다. 에이전트는 “40세 이후 활약이 좋아져 다른 브랜드에서 돈을 더 준다는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으나 미겔은 거들떠도 안 봤다”면서 “용품이 익숙하고 좋은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의리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상금이 더 많은 미국으로 가지 않은 것도 그렇다. 히메네스는 “인생에 돈이 전부가 아니다. 나는 고향인 스페인과 유럽을 좋아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여행을 좋아한다”라고 했다.

그는 “왜 나이가 들수록 골프를 더 잘하나”라는 질문에 “내가 게임을 사랑하고 건강해서 좋은 와인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럽 골프 팬들은 그를 좋은 와인이라고 생각한다. 대체할 수 없는 빈티지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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