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 Novel] 이문열 연재소설 ‘리투아니아 여인’ 5-3

중앙일보 2011.02.12 03:11 주말섹션 10면 지면보기



“화려한 창작 뮤지컬을 위하여”



일러스트: 백두리 baekduri@naver.com



“나도 처음에는 그 말이 터무니없게 들렸어요. 그런데 그 시대를 아는 사람들한테 들으니 그게 꼭 있을 수 없는 일만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54년이면 전란으로 불타거나 유실된 호적이 아직 제대로 정비되지 못한 때라, 끼어들려고 하는 호적의 구성원과 형성 이력을 잘 알고 인우(隣友)증명만 적당히 끌어댈 수 있으면, 호적을 복원시키거나 빈 곳에 끼어들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거라고 합디다. 거기다가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떠나려는 사람이니 대공(對共) 용의점도 없고…. 따라서 임화의 딸 혜란이 외사촌 미치코의 호적에 들어가 그 호적으로 국제결혼을 할 수도 있었을 거란 얘기죠.”



 배영기는 여전히 열을 올리며 그렇게 받았지만 나는 왠지 그 추측이 미덥지 않았다.



 “그렇다고 임화의 딸이 양공주가 되어 미군과 결혼했다는 것만으로 드라마가 되겠어?”



 내가 미덥잖아 하는 심경을 그런 반문으로 드러내자 흥미로운 표정으로 우리 둘이 주고받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혜련이 배영기를 감싸듯 받았다.



 “그것만이면 배 선생님이 미국까지 와서 취재할 마음을 먹었겠어요? 무언가 더 극적인 후일담이 있었겠죠.”



 그러자 배영기가 큰 격려라도 받은 사람처럼 거침없이 하던 얘기를 이어갔다.



 “그래요. 좀 애매한 데가 있기는 하지만, 그 평전 말미에는 별나게 작가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얘기가 더 있었어요. 바로 그 혜란으로 추측되는 여자가 시카고의 흑인 빈민가에서 홀로 살고 있었는데, 90년대 초 재미교포들의 북한 방문 러시 때 북한을 다녀온 뒤로 실어증(失語症) 비슷한 증세를 앓다가 양로원에 실려가 쓸쓸하게 죽었다는 후일담이 그겁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한 편의 드라마가 아퀴 맞게 짜여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러고 그는 또 다른 글에서 본 지하련의 마지막 모습을 우리가 방금 본 드라마의 한 막처럼 우리 머릿속에 펼쳐보였다.



 월북한 임화가 미제의 스파이로 몰려 총살당한 뒤 그의 아내 지하련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50년대 중반 평양에 거주했다가 뒷날 우여곡절 끝에 일본에 자리 잡게 된 어떤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임화가 처형된 뒤로 몇 달인가 임화의 막내로 짐작되는 어린아이를 업고 미쳐서 평양거리를 헤매는 지하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만약 북한을 다녀온 뒤로 실어증이 걸려 죽은 사람이 임화의 딸 혜란이 맞다면 그대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막이 없어요? 생각해 보십쇼. 그들 부녀가 헤어질 때는 그들의 공화국이 번성의 절정을 누리고 있었지요. 수도 서울이 그들의 군대에 함락되고, 남한은 낙동강 전선을 빼고는 거의 점령된 상태였습니다. 거기서 아버지는 마지막 적을 섬멸시키는 전투를 격려하러 낙동강 전선으로 떠나고, 딸은 아무 저항 없는 호남지역을 무인지경 가듯 하는 점령군의 여전사가 되어 서로 헤어졌으니, 그때 그들이 인민공화국에 품었던 꿈과 환상이 어떤 것이었겠습니까? 특히 온 세상이 다 알아주는 인민의 시인 임화의 딸로 서울에서 명문 고녀(高女)까지 다닌 적이 있는 그녀에게는….



 그런데 몇 달 만에 전세는 상전벽해로 뒤집혀 국군이나 경찰의 포로가 되고, 급기야는 양공주로까지 전락하면서 그녀가 겪은 정신적 공황은 흑인 병사와 결혼해 미국으로 따라가는 것이 오히려 구원으로 느껴졌을 만큼 처참했을 것입니다. 미국에 가서 곧 홀로가 되었다는 것도, 그녀가 적지나 다름없는 남한 땅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방편으로 삼았던 그 흑인 병사를 그녀 쪽에서 버렸다기보다는, 그녀가 버림받은 쪽으로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뒤로도 그녀는 흑인 빈민가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거기 머물렀다니까요.



 그러다가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긴 악몽에서 깨어난 듯 정신을 차려 일하고 살면서 약간의 여유를 회복하고 나서야 그녀는 조심스레 교포 사회와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어디선가 재미교포들에게 북한 방문의 길이 열렸다는 풍문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들과 접촉을 시작했는지 모르죠. 그래서 몇 년 뒤 북한을 가게 되었을 때만 해도 그녀의 가슴속에 있는 공화국과 아버지는 여전히 휘황한 그 무엇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북한에 가자마자 알아보려 한 것은 ‘머리가 절반 흰’, 그러나 자랑스럽던 아버지와 ‘가슴이 종이처럼 얇아, 항상 마음 아프던’ 병약하면서도 우아한 계모 지하련의 삶이었을 겁니다.



 그 폐쇄된 사회에서 누가, 어떤 경위로 그녀에게 임화 부부의 운명을 전해주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북한 방문에서 임화의 딸은 곧 두 사람의 최후에 대해 알게 된 듯합니다. 그리고 처형된 아버지 임화와 미쳐서 어린동생을 업고 평양거리를 헤매던 계모 지하련의 마지막 모습은 그녀에게 실어증으로밖에는 받아낼 수 없는 충격이었을 겁니다. 식민지의 딸이자 혁명가의 딸이 겪었을 모멸과 능욕의 세월을 자학하듯 버텨온 힘은 아마도 한국전쟁에서는 패퇴하였지만 여전히 건재한 인민공화국과 그 공화국의 품 안에서 보람 있게 살고 있을 인민의 시인 아버지 임화였습니다. 그런데 사십 년이 넘는 인고의 세월 끝에 확인한 것이 아직도 고난의 행군 중인 공화국과 일찌감치 그 공화국의 제단에 희생으로 바쳐지고 만 아버지의 최후뿐이게 되자 그때까지 그녀를 지탱시킨 의지는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더는 바랄 것도 없고, 그리워할 것도 빌 것도 없어진 그녀의 의식은 실어증의 형태로 바닥 깊이 자맥질해 들어간 것입니다. 자, 이제 이만하면 인상적인 서장 한 막이 떠오르지 않겠습니까?”



 무엇에 취했는지 배영기가 그새 얼굴까지 벌겋게 상기되어 그렇게 신파조로 물었다. 솔직하게 말해 나도 묘한 감동에 가슴이 먹먹해 왔으나 그의 지나친 열기가 나를 오히려 냉소적으로 만들었다.



 “뭐가 그리 인상적인 서막이 되는데?”



 내가 짐짓 비꼬는 어조로 그렇게 묻자 배영기가 조금도 식지 않는 열기로 받았다.



 “요양원이나 정신병동을 상기시키는 격리된 방. 짙은 어둠으로 처리된 방 안에는 늙은 여자의 성성한 백발을 강조하는 빛살 한 줄기가 가만히 비치다가 차차 밝아지며 의자에 앉은 여자의 상반신이 비치고 다시 맞은편에 옆으로 앉은 남자의 실루엣이 천천히 드러난다. 저는 위대한 노동자 농민의 시인 임화 선생을 연구해 온 사람입니다. 부디 아는 대로 들려주십시오. 월북하신 뒤의 행적 가운데 비어 있는 부분, 어쩌고…. 그러나 늙은 여자 아무것도 듣지 못한 듯 반응이 없다. 이윽고 남자의 실루엣 꺼진 듯 사라지고, 맞은편에 또 다른 실루엣. 주인공과 또래로 보이는, 그러나 잔뜩 차려입고 온 여자. 나를 봐 나 모르겠어? 경기고녀 동창 명순이. 너 북한 들어갈 때 내가 아는 사람 몇 길 놓아주었잖아? 그래 어쨌어? 아버지·어머니 소식은 들었어? 동생들은 만나봤고? 말 좀 해봐. 거기서 돌아온 지 벌써 며칠째야? 언제까지 이렇게 입 다물고 있을 거야 등등. 여자 여전히 못 알아들은 사람처럼 멍한 눈으로 빛살이 비쳐 오는 쪽만을 응시하고 있다. 맞은편 남녀의 실루엣 둘 모두 사라지고 암전. 다시 무대가 천천히 밝아지면서 인민군 야전사령부 위장된 막사 앞….”











 거기까지 듣자 나는 배영기의 구상을 대강 짐작할 것 같았다.



 “그래서 회상으로 얘기를 끌어갈 모양이군. ‘너는 전라도로/나는 경상도로’ 떠날 무렵의 광경부터 말이야. 뭐 그렇게 풀어가면 이야기야 되겠지만 적어도 스무 개는 넘어야 할 구슬을 모두 어떻게 꿰맞추지?”



 그렇게 묻는 내 목소리에서 빈정거리는 기운이 줄어든 것을 느꼈는지 배영기 쪽도 오기가 가신 목소리로 받았다.



 “그래서 여기 온 거 아뇨? 한 열 개는 임화의 화려한 행적이나 해방공간의 여류 소(小)인텔리 계층의 행태에서 뽑아낼 수 있지만 나머지는 영 자신이 없어서. 특히 그녀가 호남전선에 투입된 이후의 것으로 적어도 대여섯 개는 더 있어야 균형이 맞는데 그게 잘 안 돼 이 멀리까지 취재 온 거 아뇨?”



 “근데 그게 잘 안 됐다며? 좀 전 서막에 나온 그 할머니 같으면 뭘 들려줄 수도 있을 것 같던데, 실은 만나지도 못한 거야?”



 “맞아요. 원래 그 할머니들을 찾아 시카고로 간 건데, 정보 소스에 착오가 있었어요. 가서 보니 내가 소문 듣고 찾으려 한 할머니들은 경기고녀를 다녔던 임화의 딸 혜란의 세대가 아니라, 그보다 이십 년 가까이 많은 김수임 시대의 이화여전 동창들 가운데 살아있는 몇몇이었어요. 이미 팔십 고개를 넘은…. 내게 소개한 그 사람 딴에는 저만 아는 신기한 정보원(源)이라 싶어 내게 자랑한 모양인데, 어렵게 만나 봐도 오락가락하는 소리거나 불요불급한 가십거리 정도였어요.”



 “불요불급한 가십거리라니? 그럼 그 할머니들한테서도 뭐 듣긴 들은 거야?”



 “뭐 이런 거죠. 모윤숙 시인이 김수임의 구명운동을 한다고 앞서 나서기는 했지만 결코 진심으로 힘을 쓰지는 않았을 거라든가….”



 “그건 무슨 소리야?”



 “김수임과 모윤숙은 이강국을 가운데 둔 오래된 연적 사이였다나요. 그밖에도 김수임이 정말로 이용당한 것은 베어드 대령에게였다든가, 이강국은 정말로 CIA의 스파이였다든가, 김수임의 아들이 미국에 살고 있는데 그도 베어드의 아들이라든가….”



 “그럼 한국을 떠날 때나 마찬가지로 임화의 딸 얘기는 아무 진척이 없는데, 언제 그렇게 극화까지 구상했지?”



 “나도 처음에는 허탕쳤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주 허탕친 건 아닌 듯하더라고요. 이강국이 임화와 같은 고향에 같은 학교 동창이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인물인 데다, 만약 임화의 딸이 미국으로 간 게 맞다면 베어드의 아들인 김뭐라는 친구와 대조를 이뤄 둘을 엮을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때 우리 두 사람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혜련이 다시 끼어들었다.



 “김수임 그 사람 얘기는 전에 나도 흥미 있게 들은 적이 있는데, 오늘 임화 시인의 딸 얘기를 들으니 어쩌면 둘을 연결시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 것도 같네요. 좀 더 자세히 들어볼 만한데요. 자 이쯤에서 우리 건배해요. ‘식민지의 딸’과 ‘혁명가의 딸’을 결합시킨 화려한 창작 뮤지컬을 위하여.”



 그렇게 되자 더 이상의 토의 없이 배영기의 주제는 우리의 주제가 되어 우리 길거리 대학의 커리큘럼에 슬그머니 편입되었다.



이문열 소설가

일러스트: 백두리 baekduri@naver.com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