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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Insight/인터뷰] 투비아 이스라엘리 주한 이스라엘 대사

중앙일보 2011.02.12 03:10 주말섹션 8면 지면보기
천안함 폭침, 연평도 공격, 그리고 잇따른 한국 선박 납치 사건으로 안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다. 적대 행위와 테러에 대해 주권국가라면 어떻게 대응해야 마땅할까. 이 질문과 관련해 ‘이스라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j는 9일 투비아 이스라엘리(Tuvia Israeli·56) 주한 이스라엘 대사를 만났다. 서울 서린동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2시간 넘게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이스라엘은 1948년 독립 이후 수차례의 전쟁을 경험했다. 이스라엘리 대사는 “주변국들이 이스라엘을 약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여지없이 전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천안함·연평도·선박납치…‘대처법’을 말하다
‘주변’서 만만히 볼 때, 전쟁이 났다

글=성시윤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이스라엘리 대사는 2009년 8월 한국에 부임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공격 등 일련의 사건을 지켜봤다. 그에게 극동아시아 근무는 한국이 처음이다. 1978년 이스라엘 외무부에 들어간 뒤 이집트·파라과이·스웨덴·스위스·요르단 등지에서 외교관으로 일했다. 그는 1m86㎝의 거구였다. 그의 말은 빠르지 않았다. 시종 부드러운 인상이었지만 홀로코스트와 전쟁을 말할 때는 표정이 숙연해졌다.



●한국인에 대한 인상은.



 “한국은 이스라엘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지만 매우 친근하다. 한국인들은 교육적이고, 예의 바르고, 근면하다. 설 연휴 때도 한국인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았다.”



●한국사람들이 진짜 친절한가.



 “외교관이다 보니 많은 나라를 가봤다. 그래서 비교할 수 있다. 나를 믿어도 좋다. 한국인들은 친절하다. 그렇지 않은 한국인을 만나도, 나쁜 의도 때문이 아니라 언어 때문임을 알고 있다.”



●한국와 이스라엘은 공통점이 많은 것 같다.



 “근대사가 비슷하다. 한국은 독립과 동시에 분단을 경험했고, 운 좋게 한 번의 전쟁을 겪었다. 이스라엘은 여러 번의 전쟁을 경험했다. 그러나 양국은 자원 없이 사람으로 나라를 건설했다. 한국인들은 엄청난 나라를 건설했다. 대단한 성취다. 이스라엘인도 전 세계를 떠돌다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조국으로 돌아왔다. 두 나라 다 안보 위기를 겪고 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이스라엘의 상황에 대해 이해를 잘 해준다. 그런 관점에서 내 업무는 쉬운 편이다. 역사와 상황이 비슷하니까. 그러나 다른 나라에선 다르다.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는 유럽의 경우 그들은 중동의 지속적 갈등에 아주 질려 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갈등이니까. 한반도 갈등보다 더욱 오래된…. 그럼에도 나는 이러한 이해, 정서가 한국과 이스라엘 두 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지속돼야 한다고 본다. 그들은 부모와 다른 관점에서 미래를 맞을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한국 젊은이들에게서 받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이스라엘인들은 한국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나.



 “이스라엘인들은 한국을 잘 알지 못한다. 내 기억에도 한국사는 공부한 적이 없다. 그저 한국전쟁만 수업시간에 잠깐 언급될 정도다. 불행히도 양국이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미디어와 다른 나라 언론은 한반도에 대해선 ‘긴장’만 보도한다. 한국 언론도 유럽 언론도 이스라엘에 대해 마찬가지지만. 따라서 이스라엘인들은 때론 남한과 북한을 구별도 못했다. 90년대까지 한국도 군사정부였지 않나. 남한과 북한의 차이가 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양국 협력 증진을 위해, 서로 간에 더 많은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사는 이스라엘인이 얼마나 되나.



 “이스라엘인은 100명이 안 된다. 유대인은 400명 정도다. 유대인은 민족적 개념이기도 하고, 종교적 개념이기도 하다. 한국인 중에도 기독교, 불교, 무신론자가 있지 않나. 이스라엘 인구는 80%는 유대인이고, 20%는 아랍인이다. 아랍인 중 4분의 1은 기독교도이고, 4분의 3은 회교도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인 중에는 유대인도 있고 회교도도 있다. 근대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됐을 때, 독립선언서에 이런 내용을 담았다. ‘이스라엘은 모든 유대인의 고향이다’. 지금까지 법규에 ‘유대인은 누구든지 이스라엘에 오면 자동시민권을 갖게 된다’는 조항이 있다. 이스라엘 사회는 이민자 사회다. 나 역시 루마니아에서 태어났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2차대전 후 결혼해 자식들을 낳았다. 나는 일곱 살 때 부모님을 따라 이스라엘로 이민했다. 많은 사람이 이민을 와서 이스라엘인이 됐다. 이게 이스라엘의 백그라운드다.”



●혹시 가족 중에 홀로코스트로 인한 희생자도 있나.



 “아버지, 어머니 양쪽의 조부모가 다 희생됐다. 어머니의 누이 두 분, 그리고 아버지의 누이 한 분과 형제 한 분도 희생됐다. 홀로코스트의 영향이 우리 집안엔 매우 컸다. 어머니는 아우슈비츠에 수용 중에 종전을 맞아 생존했다. 홀로코스트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여전히 ‘현재’로서 남아 있는 셈이다. 끔찍한 고통이었는데, 부분적으로는 이스라엘이 왜 그토록 국방에 관심을 두는지를 보여준다. 유대계의 절반이 희생된 홀로코스트가 그리 오래된 과거가 아니니까. 그래서 ‘생존하기 위해선 강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스라엘이라면 천안함·연평도 같은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까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연평도 사건이 일어난 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우리 입장에서 한국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제시해줄 수는 없다. 다만 우리 경험을 얘기하겠다. 천안함·연평도 같은 사건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겪었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스라엘 정부는 전쟁에 대한 억지력(deterrence)을 반드시 유지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억지력만이 평화를 보장해준다. 그럼 어떻게 억지력을 갖느냐. 우선 강력한 화력을 갖춘 군대가 있어야 한다. 우리 이스라엘은 주변국 군대보다 한 단계, 두 단계, 세 단계 앞서 있어야 한다. 군사기술과 전투 노하우, 물질 면에서… 이것은 매우 비용이 많이 드는 정책이다. 너무 오랫동안 이스라엘 예산은 국방 관련 분야에 집중돼야 했다. 예산은 예산이다. 국방에 쓴다면 다른 분야에 더 쓸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떤 경우에도 억지력을 유지해야 했다.”



●지나치게 경직된 게 아닌가.



 “간혹 정권이 바뀌면서 이 억지력이 약화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주변국들은 ‘이스라엘이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으니까,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겠다’고 믿었다. 이것이 우리가 왜 반복적으로 전쟁을 치르게 됐는지를 설명해준다. 어떤 순간이든지, 누군가 때때로 이스라엘에 해를 입힐 수 있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가 약하지 않다.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줘왔다. 이게 우리가 억지력을 유지해온 이야기다. 레바논 예를 들어보자. 1982년에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실질적으로 레바논 남부를 점령해 전쟁에 들어가게 됐다. 레바논 남부는 이스라엘과 매우 가깝다. 그들은 그곳을 이스라엘을 목표로 하는 포격 기지로 활용하고, 국경지대의 민가를 공격하려고 했다. 그래서 선택의 여지 없이 전쟁에 들어갔다. 전쟁이 끝난 뒤 복잡한 구성의 레바논 사회에선 정부의 강한 통제력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군대가 그곳에 10년 넘게 주둔해야 했다. 그런데 우리가 철수하자, 적대세력들은 우리의 철수를 ‘약함의 신호’로 해석했다. 그 신호가 다시 2006년에 2차 레바논 전쟁을 일으켰다. 이것이 한반도를 위한 교훈이 될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연평도 사건 이후 한국 정부는 ‘자주국방’을 실감한 것 같다. 북한이 다시 뭔가를 벌인다면, 남한도 이전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겠나.”









1982년 요르단에서 추방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이스라엘 북부 접경인 레바논 남부로 본거지를 옮겼다. 위협을 느낀 이스라엘 군은 레바논 남부로 진격해 18년간 주둔하고 2000년에 철수했다. 2006년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 도시를 폭격하자 이스라엘은 2차 레바논 전쟁을 시작했다. [AP=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남북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건 내가 말해줄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이니까. 이스라엘 사람보다 자기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게 민주주의의 일부다. 정부가 어떻게 하든 간에,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은 항상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 아니겠는가. 지금 이집트에서 벌어지는 일을 봐라.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함성을 지르고 있지 않나. 그들은 아직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누구도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경험해보지 않았다. 그들은 군주정에서 군사혁명을 거쳐 군사정권을 경험했다. 민주주의는 복잡한 것이다. 한국도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않았나.”



●이집트는 중동국가 중 이스라엘에 비교적 우호적이다. 이집트의 정책 변화에 대해 우려가 많을 것 같다.



 “우리는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바랄 뿐이다. 나 자신도 이집트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외교관으로서 첫 부임지였다.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거의 30년간 전쟁을 치렀다. 나는 평화협정 후에 이집트에 갔다. 그때 이집트 사람들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알았다. 그들은 평화를 애호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자, 어떻게 전쟁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전쟁이란 오해와 선동, 리더십의 실패, 유대국가에 반대하는 정치분파들의 영향 아니겠나. 평화협정 후에 이집트와 요르단이 바뀌기는 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적대적인 중동국가들 사이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스라엘 대사관 회의실에는 사해 인근의 마사다 요새 사진이 걸려 있다. 기원전 이스라엘이 로마제국의 침략을 받고 끝까지 항전하다 옥쇄한 곳이다. 이스라엘 저항정신의 상징인 셈이다. 이스라엘리 대사는 “이스라엘인들 가슴에는 ‘마사다는 절대 다시 함락되지 않을 것(Never again, Masada will fall)’이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j 칵테일 >> “인생은 우연이다”



투비아 이스라엘리 주한 이스라엘 대사는 솔직하면서도 여유로웠다. 외교 문제가 아닌 개인에 대한 질문에 ‘교과서’ 답변은 없었다.



●가족은 이스라엘에 있고, 혼자만 오셨죠?



 “같이 오려 했는데, 가족의 건강 문제로 계획을 바꿨죠.”



●외롭지 않으세요.



 “많이 외롭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은 처음이에요.”



●한국에 오기 전에 TV에서 한국 드라마 보신 적 있나요?



 “딸아이가 10대라 집에 TV를 놓지 않았어요.”



●소주 좋아하세요?



 “조금…. 많이는 못 마시고….”



●사모님은 전업주부신가요?



 “영어교사인데 과외교사 하고 있어요.”



●사모님이 버시는데, 쉬셔도 되지 않나요?



 ‘이스라엘은 한국이랑 달라서….”



●원래 외교관이 꿈이셨어요?



 “처음엔 학교 소개로 어떤 연구소에 갔는데, 이공계 전공자가 아니라고 싫어하더라고요. 학교에 다시 갔더니, ‘외무부에 일자리 하나 있는데 해보겠느냐’고 해서… 인생은 우연이더라고요.”





내년은 한국 - 이스라엘 수교 50주년

“이스라엘 알리려 한국 곳곳 누빕니다”




지난해 11월 한국 재즈가수 ‘말로’와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씨가 이스라엘 4개 도시에서 콘서트를 했다. 이들이 이스라엘에 간 배경에는 투비아 이스라엘리 주한 이스라엘 대사가 있었다. 이스라엘리 대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잘 모른다”며 “한국을 찾는 이스라엘 관광객이 거의 없다는 게 그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부임 이후 전남 순천만, 지난해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된 경북 경주 양동마을 등 한국의 곳곳을 부지런히 여행하고 있다. 그는 국내에 있는 내외국인 중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국 관광 서포터즈’의 회원이기도 하다. 한국관광공사가 후원하는 이 모임은 외국인 대사들을 초청해 한국 관광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재즈가수 말로의 공연은 어떻게 주선하게 됐나.



“한국에 와서 어떤 행사에 초대를 받았다. 말로가 거기서 공연을 했는데,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공연 뒤에 그녀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당신의 재즈 스타일을 좋아할 것 같다’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그녀가 흔쾌히 ‘가고 싶다’며 호응을 했다. 마영삼 주이스라엘 한국대사에게 알려드렸더니 그분이 적극 나서 콘서트 성사를 도와줬다.”



●문화교류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이스라엘은 인구 700만 명의 작은 나라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많이 한다. 인도·필리핀·베트남·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에도 간다. 그런데 한국에는 안 온다. 왜냐? 한국에는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문화교류는 서로에 대한 지식을 높일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한국 관광이 매력적인가.



 “한국은 중국인, 일본인 관광객 유치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스라엘 관광객도 늘어나길 바란다. 한국의 자연과 문화는 관광대국인 이스라엘 국민에게도 매력적이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영어 안내와 중저가 호텔이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장들과도 적극적으로 만난다고 들었는데.



 “부산·대구·구미·남해·수원 등을 가봤다. 보통 한번 가면 도지사·시장·상공회의소 의장·대학총장들을 다 만난다. 기업과 대학 간의 교류가 양국 사이에서 더 확대돼야 한다. 수원에 갔을 때는 초등학교도 한 곳 가봤다. 교육시설을 보고 싶어 경기도지사에게 요청했다. 어린이들이 얼마나 반기지, 그들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했다.”



●대사가 지방까지 돌아다닌다는 게 인상적이다.



 “글쎄, 기회가 있다면 더 돌아다니고 싶다. 이스라엘을, 그리고 이스라엘의 잠재력을 알리고 싶다. 쉽게 성과가 나진 않는다. 다섯 번 가면 한 번만 성공적이라고 할까.”



●올해 특별히 계획하고 있는 행사가 있나.



 “독특한 문화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스라엘에는 시청각장애인 연기자로 구성된 극단이 있다. 배우들이 앞을 못 보고 듣지 못한다. 세계에 이런 극단은 유일할 것이다. 이 극단이 5월에 한국에 와 두어 차례 공연을 한다. 이것과 별도로 내년은 한국-이스라엘 수교 50주년을 맞는다. 올해는 이래저래 바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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