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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인터뷰] 『Mr. 버돗의 선물』 저자 테드 겁

중앙일보 2011.02.12 03:05 주말섹션 6면 지면보기
대공황이 절정이던 1933년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12월 18일. 미국 오하이오주 캔턴의 지역 신문에 작은 광고가 실렸다. ‘B. 버돗’이라는 기부자가 낸 광고는 “도움이 필요한 사정을 편지로 알려주면 재정적 도움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모두가 힘들던 시기였다.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왼쪽 사진)가 밀려들었다. 버돗은 그중 150가정에 5달러씩을 수표로 보냈다. 요즘 가치로 약 100달러 정도의 액수였다. 이 이야기는 지난해 『Mr. 버돗의 선물(원제:A Secret Gift)』이라는 책으로 미국에서 출간됐다. 한국·중국·이탈리아에서도 번역돼 나왔다. 때마침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뉴욕 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 등 언론이 책에 주목했다. 책의 저자는 버돗의 외손자인 테드 겁(Ted Gup·60). 워싱턴 포스트와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탐사보도 전문기자로 이름을 날린 그는 지금은 보스턴의 에머슨칼리지 저널리즘스쿨 교수다. 그는 2년 전 어머니 집 다락에서 외할아버지의 유품이 담긴 가방을 발견했다. 버돗이라고 서명해 지급이 완료된 수표 150장을 보고 궁금증을 품게 됐다. 그의 외할아버지 이름은 샘 스톤이었기 때문. 자신의 전공인 탐사 취재 기법을 활용해 이야기를 파헤쳐 나갔고, 그 결실이 『Mr. 버돗의 선물』이다. 지난달 말 보스턴에 있는 그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외할아버지 5달러, 사람 살렸죠”

박현영 기자









테드 겁















●책을 쓰기로 결심한 계기는.



 “시작은 몇 뭉치의 편지였다. 어떤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조각을 맞추고 나니 이야기가 완성됐다. 2년 전 미국을 비롯한 지구촌은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접어들었다. 1930년대 사람들의 경험이 지금 사람들에게 지침이 되고 용기와 영감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쓴 사람들은 용기와 강건함, 자부심과 인간의 존엄성 등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치를 보여줬다.”



●1930년대와 지금은 또 다르지 않나.



 “적은 돈으로 견디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게 뭔지를 깨닫게 되는점은 같다. 다른 점은 30년대 대공황 덕분에 지금은 사회안전망이 많이 구축됐다는 것이다. 기아 해결책, 노인 정책, 의료 보장, 예금보험 등 감독 기능이 생겨났다. 지금도 경제적으로 많은 사람이 힘들지만 대공황 때만큼 혹독하지는 않다.”



●미국의 대공황 시절은 한국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



 “나는 아일랜드·이탈리아·중국에서 살아봤다. 그런데 어디에 살건 사람의 경험이란 건 비슷하더라. 서로 다른 문화, 신앙, 전통을 가졌지만, 바탕에는 공통점이 더 많다. 한국인 역시 큰 위기를 견뎌내지 않았나.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는 궁핍과 기아, 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그 후손들은 과거보다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고, 그사이 가치와 문화가 많이 변화했다. 이 책은 변치 않는 가치를 이야기한다.”



●전하려는 메시지는 뭔가.



 “진정으로 중요한 건, 우리는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하나의 공동체로서, 도움이 절실한 사람을 버려두고 가서는 안 되고, 혼자서만 번영할 수 없고, 우리는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 그게 이책의 메시지다.”



●당신이 탐사보도 전문가가 아니었다면 70여년 전 편지를 단서로 이야기를 밝혀내기 어려

웠을 것 같다.



 “탐사보도 기법이 많은 도움이 됐다. 내가 탐사 추적의 대가여서 가능했다고 말하고 싶지만(웃음), 사실 인터넷이 업무를 많이 줄여줬다. 디지털 형식으로 저장된 인구 센서스 보고서, 사망신고서, 전화번호부 등 자료를 검색해 이를 바탕으로 편지의 주인공들의 인생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그런 뒤 생존자와 유족을 인터뷰했다.”



●편지를 쓴 당사자 또는 후손을 몇 명 찾았나.



 “500명 넘게 인터뷰했다. 총 150통의 편지 중에서 130통의 후손을 찾아냈다. 후손이 없었던 15~20명을 제외하고는 한 가족에서 1명 이상을 찾아낸 것 같다.”



●편지를 쓴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나.



 “좋은 질문이다. 그 답은 ‘예스’다. 편지의 공통점 중 하나는 도움을 청하는 것을 무척 꺼렸다는 점을 굳이 표현했다는 점이다. 또 대부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이웃, 가족을 위해 도움을 요청했다. 빚을 갚아야 한다거나, 구호의 손길이 아닌 일자리를 원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사람들의 공통점은 매우 가난했지만, 자부심이 있었고, 가족에 대한 책임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 인생에서도 성공했나.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만 답은 ‘노’다.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도 있다.”



●5달러씩 받은 사람들의 삶이 달라졌나.



 “ 그 돈은 적은 돈이었지만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가 광고를 보고 ‘내가 모든 걸 잃은 게 아니구나’라고 깨달았다고 편지에 썼다. 사람을 변화하게 한 것은 돈이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제안 그 자체였다. 누군가가 관심을 갖는다는 것, 완전히 버려지고 잊히지 않았다는 것, 그게 영향을 미쳤다.”



●누군가 걱정해준다는 마음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뜻인가.



 “지난해 말 캔턴에서 70년 전 일이 그대로 재현됐다.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은 현지 기업인 3명이 익명으로 같은 신문에 광고를 냈다. 150가정을 돕겠다고 나섰다. 물가 상승을 감안해 5달러 대신 100달러씩을 150가정에 보냈다. 총 1만5000달러의 선물이었다. 그들로부터 지역사회도 영감을 받았다. 200명 이상이 추가로 기부했고, 그 펀드가 5만2000달러를 넘었다. 크리스마스 때 500가정에 추가로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자선 기부의 전통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겠다.



 “그러길 희망한다. 유타주에서도 한 여성이 익명으로 1만5000달러를 지역의 150가정에 나눠줬다는 소식도 있었다.”









테드 겁의 외할아버지인 ‘버돗’(오른쪽 첫째)과 가족.





●버돗은 왜 이런 선행을 했을까.



 “가난을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할아버지는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유대계였는데,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해 힘든 시절을 보냈다. 탄광에서 일하고, 산으로 음료병을 씻는 일을 해 손가락이 다 망가졌다. 그는 고난이 뭔지 알았다. 히틀러가 집권한 1933년에 유대인으로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데 대해 미국에 깊이 감사하고 있었고 그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 짐작한다. 할아버지는 자기가 누구인지 알면 도움 요청을 주저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명 샘 스톤이 아닌 버돗이라는 익명을 사용했다. B. 버돗(Virdot)은 할아버지의 세 딸 이름인 바버라, 버지니아, 돗시에서 따왔다.”



 테드 겁은 35년 경력의 기자 출신이다. 대학(미국 브랜다이스대와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 졸업 후 고향에 있는 지역 신문에서 1년간 일했고, 이후 워싱턴 포스트로 옮겼다.



 그를 영입한 이는 워싱턴 포스트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했을 당시 편집국장인 벤 브래들리였다. 겁 교수는 탐사취재, 그중에서도 정부의 비밀을 파헤치는 보도를 주로 했다. 92년 ‘궁극의 의회 피난처’ 기사는 워싱턴이 핵 공격을 받을 경우 의회가 피난하기 위한 대규모 지하 벙커를 웨스트버지니아주의 한 고급 리조트 지하에 건설한 것을 폭로한 특종 보도였다. 81년에는 정부 계약에 관한 기사로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했다. 95년에는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비밀 작전을 수행하다 죽은 요원들에 관한 책 『The Book of Honor』 를 썼다. 3~4년간 1000명이 넘는 사람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탐사보도를 전공으로 택한 이유는.



 “정부나 기업은 선천적으로 비밀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게 때로는 대중에게 불리하다. 자신의 안전, 건강, 경제, 국가 안전 등에 영향을 주는 것들을 올바로 이해하고 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고 싶었다. 모든 ‘닫힌 문’은 내게 유혹이 된다. 기업과 정부는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지 그 반대가 돼서는 안 된다.”



●비밀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 않나.



 “그 필요성은 인정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광범위해서는 안 된다. 제한적이어야 한다. 위키리크스 식의 폭로 또한 옳지 않다. 비밀이 무차별적이면 안 되듯이, 비밀의 폭로도 무차별적이어서는 안 된다. ”



●무엇이 취재원의 입을 열게 하는가.



 “솔직함, 신뢰, 믿음직스러움, 평판 등이다.”



●미디어 환경이 바뀌고 있는데.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흥미롭지만, 정작 큰 사건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트위터를 찾지 않는다. 그럴 땐 역사와 전통이 있는 미디어로 간다. 미국에선 위기가 닥치면 뉴욕타임스닷컴의 클릭 수가 수직 상승한다. ‘의견’ 빼고, 진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팩트가 언론과 소셜 미디어를 구별한다는 건가.



 “팩트의 신성함·존엄성이 있어야 한다. 슬프게도 요즘 사람들은 팩트보다는 오피니언에 무게를 더 두는 경향이 있다. 팩트의 경계도 모호해졌고. 누구에게 투표할까부터 어떤 영화를 볼 지까지 뭔가를 결정할 때 필요한건 팩트, 정보다. 신문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뉴스가 표현되는 형식과 재질은 달라질 수 있다.”



 겁 교수는 인터뷰 서두에서 “대학생인 아들 둘을 모두 한국에서 입양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아들들이 언젠가 친부모를 찾고 싶다고 하면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탐사보도 전문가이니 잘 알아서 하겠지만, 혹시 한국에서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말하고 통화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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