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로벌 아이] “사람들이 당신을 증오하는데 …”

중앙일보 2011.02.12 00:27 종합 34면 지면보기






정경민
뉴욕 특파원




“많은 사람이 당신을 증오한다는 사실이 화나지 않습니까?”(빌 오라일리)



 “당신을 ‘싫어하는(dislike)’ 사람은 당신을 잘 몰라서 그런 겁니다.”(버락 오마마 대통령)



 “싫어하는 게 아니라 ‘증오(hate)’한다니까요!”(오라일리)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결정전 수퍼보울이 열린 6일(현지시간) 저녁 미국 시청자는 조마조마했다. 경기 전 폭스TV를 통해 방영된 독설가 빌 오라일리(Bill O’Reily)의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 인터뷰 때문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수퍼보울을 중계하는 방송사와 경기 전 짤막한 인터뷰를 하는 건 관례다. 한데 올해는 하필 오바마와 상극(相剋)인 폭스TV가 중계를 맡았다. 게다가 마이크를 잡은 건 오라일리였다. 그는 오바마를 ‘로빈후드’라고 조롱해 온 우파 독설가의 대표선수다.



 벼랑 끝을 걷는 듯 아슬아슬한 장면이 몇 차례 연출됐지만 시청자 반응은 좋았다. 무엇보다 오바마가 폭스TV와 오라일리까지 포용한 모습이 신선했다. 이튿날 오바마는 미국 상공회의소도 찾아갔다. 상의는 지난해 오바마에게 치욕적 참패를 안긴 중간선거에서 대놓고 공화당 편을 든 ‘호랑이 소굴’이었다. 톰 도노휴 회장은 오바마의 건강보험·금융개혁법에 대해 “미국 대기업을 악마(demon)로 모는 법”이란 악담도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바마는 도노휴 회장의 손을 선뜻 잡았다.



 오바마는 9일에도 존 베이너(John Boehner) 하원의장을 비롯한 공화당 하원 지도부를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여야 영수회담을 위해서였다. 베이너는 지난달 19일 오바마의 등에 비수를 꽂은 장본인이다. 오바마가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와 역사적 정상회담을 하고 있었던 바로 그때 그는 하원에서 건강보험개혁법 폐지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앞장섰다. 건강보험개혁법은 오바마의 최대 치적이다. 그런데 오바마를 만나고 나온 베이너는 만족한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오바마가 예수님 사촌뻘 되는 성인군자는 아닐 게다. 그 역시 속으론 부글부글 끓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대기업과 야당은 물론 밉상 독설가도 끌어안았다. 그게 다 표 계산에서 나온 제스처란 건 미국 유권자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속이 후련하다. 진보진영에서조차 오바마가 이념이란 순결을 표와 엿 바꿔먹었다는 비난은 들리지 않는다. 그건 ‘소통’이 됐기 때문 아닐까.



 소통은 요사이 이명박 대통령의 화두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1일 TV로 생중계된 ‘대통령과의 대화’는 오라일리의 오바마 인터뷰와는 영 딴판이었다. 청와대가 각본은 물론 연출까지 도맡았으니 오죽했으랴. 여야 원내대표가 가까스로 합의한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회동도 하염없이 표류 중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국민은 답답하다. 진정 소통을 원한다면 가진 쪽부터 몸을 낮추는 게 순서가 아닐까. 그렇다고 대통령 위신이 깎이는 건 아니다. 오바마 인기가 요즘 부쩍 오르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정경민 뉴욕 특파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