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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돌린 군부, 무바라크 퇴진 결정타 날렸다 … 군 장악 술레이만, 통치력 시험대 올랐다

중앙일보 2011.02.12 00:18 종합 4면 지면보기



이집트 ‘키파야 혁명’ … 무바라크 퇴진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퇴진을 발표한 11일(현지시간) 카이로의 대통령궁 앞에서 한 시위대가 승리를 뜻하는 ‘V’자를 표시하고 있다. 시위대의 대통령궁 진입을 막던 철조망과 탱크가 뒤로 보인다. [카이로 로이터=뉴시스]





30년 독재 무너진 무바라크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사진) 이집트 대통령은 국내외로부터의 강력한 사퇴 요구를 무시하고 막판까지 버텼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물러나기 하루 전인 10일 밤(현지시간) 국영TV로 생중계된 17분간의 대국민 연설에서 “나는 외부의 강권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대선이 치러지는 9월까지 평화적인 개혁 과정을 밟을 것”이라며 사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기까지 했다.



 그는 격렬한 반정부 시위에도 불구하고 버티다 18일째가 되어서야 물러났다. 무바라크가 성난 민심과 국제적 압력을 외면하고 버텨온 이유는 무엇일까. AP통신 등 외신들은 그가 버티는 이유를 우선 ‘퇴임 후 안전 보장’에서 찾고 있다. 23년간 철권통치를 하다 해외로 도피한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고 최소한의 명예라도 지키기 위해서는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정권 교체를 이룩한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필요하다. 이를 뒷받침하듯 무바라크는 10일 대국민 연설에서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이익을 지켜야 하는 책임을 결연하게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1일에는 “9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도 이집트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바라크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자신의 불출마를 재확인하면서도 30년째 지속돼온 비상사태법을 즉각 해제하지 않았던 명분 중 하나도 불안정한 이집트 정세가 평화로운 정권교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확실한 군심(軍心)도 무바라크가 한참을 버틴 이유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집트 군부는 10일 무바라크의 연설 직전 ‘코뮈니케1’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무함마드 탄타위 국방장관을 비롯해 20여 명의 군 장성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회의 결과를 반영한 것이다. 군은 성명에서 “이집트의 국익과 시민의 열망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향후 이 같은 회의를 지속적으로 열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 날 발표된 ‘코뮈니케2’도 그 연장선에서 나왔다.



 하지만 군부는 이날 무바라크의 사퇴를 정면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이집트 권력 메커니즘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군부의 이런 자세가 무바라크에게 여유를 주었던 것이다. 이집트에서 군부는 최고 엘리트 집단이며, 국민의 신망도 두텁다.



 외신들은 무바라크가 마지막까지 미국 등 외국의 사퇴 압력을 거론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공공연한 압력이 자칫 주권국가에 대한 내정간섭으로 비쳐 앞으로 이집트 정국에 반미 무드가 조성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익재 기자



세계의 눈 쏠린 술레이만











이제 이집트 정국은 오마르 술레이만(Omar Suleiman·사진) 부통령의 행보에 달렸다.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이집트 대통령이 10일(이하 현지시간) 부통령에게 권력을 이양한 데 이어 11일 전격 사퇴하면서 술레이만이 현 상황을 진정시킬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술레이만은 10일 무바라크로부터 군통수권을 비롯한 대부분의 권한을 넘겨받았다. 사메 슈크리 주미 이집트 대사는 10일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술레이만이 현재 군부 통제를 비롯한 모든 권한을 물려받은 실질적(defacto)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술레이만은 무바라크와 미국 정부 공동의 대안이다. 무바라크는 퇴진 뒤 안전을 위해 그를 선택했다. 1993년부터 국가정보국장으로 활동해온 술레이만은 무바라크 권력의 핵심이었다. 95년 무바라크의 에티오피아 방문 때는 방탄 승용차를 공수한 뒤 그의 옆에 앉아 무장괴한들의 암살 시도를 막아낼 정도로 충성심을 보였다.



 군 출신으로 군부의 지지도 얻을 수 있다. 미국 역시 술레이만이 확고한 친미성향을 가지고 있고 팔레스타인 정책과 대테러전에서 미국을 적극 지원했던 점을 들어 술레이만 체제를 원칙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술레이만이 큰 혼란 없이 이집트 국민들이 바라는 민주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술레이만은 10일 무바라크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 직후 국영TV에 출연해 “(국민들의) 요구를 성취하기 위한 로드맵을 가지고 있으며 더 많은 대화를 위해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이집트 국민들은 시위로 인해 국가가 혼돈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는 것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반정부 시위사태에 대한 기존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지난 8일엔 “시위사태를 더 참을 수 없다”며 무력진압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여기에 친(親)무바라크 인사란 꼬리표를 가진 술레이만에게 시위대가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향후 전망을 불투명하게 하는 요인이다. 시위대 사이에선 “무바라크도 싫고, 술레이만도 싫다”며 현 정권 인사들의 완전 퇴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승호 기자



◆오마르 술레이만(75)=1954년 이집트 육군 장교로 임관해 62년 예멘 내전, 67년과 73년 이스라엘과의 중동전쟁에 참전했다. 93년부터 최근까지 국가정보국장을 맡았다. 반정부 시위 발생 직후인 지난달 29일 부통령에 임명됐다. 친미·친이스라엘 성향이다.



무기력 했던 오바마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밀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퇴진을 발표하기까지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사진) 미국 행정부는 힘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그동안 오바마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엔 정보기관의 판단을 포함한 미국의 총체적인 역량, 그리고 여전히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선택의 고민이 그대로 드러났다.



 오바마는 사태 발생 이후 무바라크의 막판 ‘버티기’ 앞에 계속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그는 사태 초반 무바라크와 직접 전화통화를 하며 의견 조율에 나섰지만 상대가 버티기로 일관하자 곧 이런 시도를 중단했다. 곤혹스러워하던 오바마는 이집트 민주화 개혁작업의 파트너를 무바라크에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으로 바꿨다. 지난 3일엔 조 바이든(Joe Biden) 부통령이 술레이만 부통령 간 핫 라인을 개설했다. 그 이후 미국은 요구 사항을 술레이만에게 바로 전해 왔다. 또 로버트 게이츠(Robert Gates) 국방장관은 무함마드 탄타위 이집트 국방장관과 핫라인을 개설해 사태 이후 다섯 차례 이상 통화했다. 미 정부는 무바라크의 퇴임으로 탄타위가 새 정권의 핵심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바마는 부통령과 국방장관급의 두 가지 핫라인을 통해 무바라크의 퇴진을 압박하고 향후 청사진을 설계해 왔다.



 그러던 와중에 10일 무바라크의 퇴진을 둘러싸고 혼란이 극에 달했다. 10일 오전 10시30분 리언 패네타(Leon Panetta)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하원 정보위원회에 출석, “무바라크 대통령이 오늘 밤 안에 사임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고 말했다. 비중 있는 그의 발언은 곧바로 전 세계에 퍼졌다.



 오후 1시35분 미시간주 한 대학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가 이집트에서 펼쳐지는 역사, 변화의 순간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집트의 질서정연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이행을 위해 모든 것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바라크의 사임을 염두에 둔 내용이었다. 백악관은 오바마가 미시간으로 향하는 에어포스 원(미국 대통령 전용비행기) 안에서 이집트와 관련한 상황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백악관으로 되돌아오는 에어포스 원에서 오바마가 시청한 건 “외국의 강권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사임을 거부한 무바라크의 회견이었다.



 오후 4시44분 백악관에 도착한 오바마는 기자들의 질문에 침묵으로 당혹스러움을 감추고 곧바로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했다. 대세가 넘어갔음에도 오바마 정부는 무바라크의 퇴진을 성사시키지 못하는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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