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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고전문학사의 이단아, 천재시인 이언진 <하>

중앙일보 2011.02.12 00:09 종합 27면 지면보기






조우석
문화평론가




꼭 한 달 전 한류관광열차를 타고 찾았던 강원도 춘천의 김유정문학촌에서 귀동냥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곳의 촌장인 소설가 전상국씨가 그랬다. “토속작가 김유정은 지금도 읽힙니다. ‘봄봄’ ‘동백꽃’을 보세요. 다른 작가들이 문학연구 차원에서 읽히는 것과는 좀 다르죠.” 김유정을 강조하려는 것이겠지만, 맞는 소리다. 요즘엔 1960년대 이전 문학도 한참 멀게 느껴진다. 빠른 사회변화 탓인데, 사정이 그러하니 조선시대 문학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 번 18세기 혁명시인으로 소개했던 이언진이 빛나는 건 그 지점이다. 동시대 작가인양 느껴진다. 보라. “달구지 소리 덜컹덜컹/여인네들 조잘조잘….”당시 한양 골목길 스케치가 경쾌하다. 그의 아호는 호동, 골목길이란 뜻이다. 이언진은 근엄한 주자학 세계에서 다뤄질 리 없던 골목이나 저잣거리를 문학의 중심무대로 설정했다. 마인드도 그러했다. “위론 옥황상제 모시고/아래론 거지를 모셨지/거리낌 없는 이런 마음/소동파 이후 누가 지녔나?”라고 자부했다. 간결하면서 힘이 넘친다.



 현대문학 특유의 자의식 과잉도 없으니 뒷맛도 개운하다. 그런 그가 왜 혁명시인일까? 이언진은 ‘주자학의 철옹성’ 조선의 전면해체를 겨냥했다. “이따거의 쌍도끼를/빌려와 확 부숴 버렸으면….” 놀랍다. 체제변혁의 이런 목소리란 고전문학에선 드물다. 아니 아예 없다. 그는 수호지의 주인공 이규(이따꺼)처럼 세상을 뒤엎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한 사회적 연대란 불가능했다. “세계는 거대한 감옥/빠져나올 어떤 방법도 없네”라는 고백은 처절하다.



 조선 500년이 배출해낸 반항아 이언진은 그만큼 외로웠고 고립됐던 인물이다. 그러던 그가 일본에서 아연 스타로 떴다. 조선통신사 일행으로 묻어갔을 1763년 상황이다. 당시 일본 지식인과 필담(筆談)과 시 짓기를 했는데, 출중했던 이언진의 출현에 일본이 뒤집혔다. “일본인 가운데 그의 시문을 구하려는 자가 산처럼 많았다.”(박희병 지음 『나는 골목길 부처다』 30쪽) 그의 삶을 그린 작품 ‘우상전’을 썼던 연암 박지원의 증언도 그렇다.



 귀국할 때쯤엔 현지에서 시집이 출판됐다는 게 연암이 들려주는 소식이다. 에도시대 일본은 조선의 풍토와 완전 달랐다. 조선이 ‘주자학 유일사상’의 동토(凍土)였다면, 일본은 주자학을 버린 채 독자 노선을 걷고 있었고, 그래서 열린 사회였다. 불세출의 천재 이언진을 버렸던 조선이 19세기 최악의 역사 실패를 낳았다. 일본은 독자적 근대화에 성공했는데, 그건 18세기 지식사회 풍토 차이라고 본다.



 어쨌거나 ‘조선의 셰익스피어’를 증거하는 이언진의 현존 시는 170수.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이 원고야말로 기적의 산물이라는 점도 함께 기억해두시길 바란다. 병사(病死) 직전 이언진은 생전의 자기 원고뭉치를 아궁이에 넣었다. 그건 아마도 ‘감옥 조선’에 대한 절망의 몸짓이 아니었을까? 마침 부인이 잿더미 속에서 부리나케 건져냈던 게 170수인데, 이게 우리문학사의 보석이 될 줄이야. 이 기적의 원고를 읽어야 할 사람은 21세기 우리다. 18세기 조선이 몰라봤던 그를 다시금 노바디(nobody), 즉 사회적 익명상태로 남겨둘 수야 없지 않을까?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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