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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덕유산은 지금 눈꽃 산

중앙일보 2011.02.11 03:40 Week& 1면 지면보기
올겨울엔 유난히 눈이 많았다. 온 강산이 겨우내 은빛으로 빛났다. 그 은빛 세상에 빠져보고 싶었다.



 애당초 꿈꿨던 은세계는 울릉도였다. 성인봉에 2m가 넘게 눈이 쌓였다는 소식이 바다를 건너 전해졌다. 그 눈을 헤치고 성인봉 정상에 서고 싶었다. 지난달 중순부터 울릉도 진입을 벼르고 별렀다. 그러나 울릉도 뱃길은 좀처럼 뚫리지 않았다. 지난달 말엔 잠깐 뱃길이 뚫렸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부랴부랴 포항까지 달려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뱃길은 황급히 닫혔다. 포항에서 돌아서는 마음은 무거웠다.



 





전북 무주 덕유산 향적봉(1614m)에서 동업령으로 내려가는 능선의 설원. 탐방로를 한 발짝만 벗어나도 눈이 허벅지까지 차오른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성인봉 대신 떠오른 곳이 덕유산이었다. 덕유산 일대는 내륙에서 적설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알아보니 지난 연말엔 60㎝가 쏟아졌고, 지난달 말 향적봉(1614m) 정상 일대 적설량은 1.5m였다. 이 정도면 울릉도에서 풀지 못한 갈증을 어느 정도 풀 수 있겠다 싶었다.



  무주리조트에서 올려다본 덕유산 북서면은 온통 새하얗다. 내친김에 덕유산 주능선 15㎞를 내달려볼까. 아서라, 저 정도 적설량이면 하루 만에 돌파는 무리다. 게다가 남덕유산(1507m) 아래 경남 거창 방향은 구제역 때문에 출입이 막혀 있다. 내려갈 수 없으니 종주는 불가능한 셈이다.



 덕유산 능선 위에 섰다. 능선 위 바람이 아직 매웠다. 그런데도 사람이 계속 올라왔다. 휴가를 내고 내려왔다는 구병원(38)씨는 “어제는 지리산, 오늘은 덕유산”이라며 “눈꽃 트레킹은 덕유산이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서울에서 경남 진주로 제사 지내러 내려온 참에 덕유산 능선 종주를 감행한 황병재(50)씨는 “며칠 전 설악산 서북능선을 탔지만 덕유산만큼 눈은 없었다”고 말했다.



 설산엔 낭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체온증이라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해발 1500m 이상에서 초속 10m 바람은 흔한 일이다. 올해 덕유산 1월 평균기온을 감안하면, 체감 온도는 영하 20도로 급격히 떨어진다. 이번 겨울 덕유산에서는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고가 잦았다. 덕유산 산악구조대 이종배(47)씨는 “1월 한 달에만 열 번 넘게 헬기를 부르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증언했다.



 2월은 눈꽃 산행의 달이다. 1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달은 의외로 2월이다. 한겨울만큼 바람도 매섭지 않아 2월은 눈꽃 산행에 가장 적합한 달이다. 2월에 내리는 눈은 한겨울에 내리는 눈과 다르다. 눈을 밟으면 발에 닿는 질감이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봄 눈에 나뭇가지 부러진다는 옛말을 아시는지. 봄 눈은 습기가 많다. 습기를 많이 머금은 눈은, 건조한 눈보다 무겁다. 그래서 봄 눈이 쌓이면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봄 눈을 밟으면 푹푹 빠지는 느낌이 강하다.



 그 눈을, 덕유산에서 물리도록 밟고 다녔다. 덕유산 능선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말 그대로 은세계였다.



글·사진=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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