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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소 묻으러 갑니다” 어느 지역 공무원의 한 마디

중앙일보 2011.02.11 03:37 Week& 4면 지면보기
손민호 기자
지난 4일이 입춘이었으니 절기로 따지면 봄에 접어든 지 여드레째다. 고맙다. 어느 해보다 봄소식이 고맙고 반갑다. 바깥 공기는 아직 쌀쌀하지만 봄이 온다는 소식에 마음은 벌써 훈훈하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징글징글했기 때문이다. 얼른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은 정말 힘들었다. 여행기자로 여섯 번 겨울을 났는데 이번이 가장 힘들었다. 우선 너무 추웠다. 강원도 대관령 아래에서 맞은 1월의 아침. 수은주가 영하 23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체감온도는 영하 40도 아래였다. 이 모진 삭풍 무릅쓰고 나가서 놀라고 기사를 쓰는 게 과연 옳은 짓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 겨울 가장 부대꼈던 건 그깟 추위 따위가 아니었다. 이번 겨울은 끔찍했고 혹독했다. 그래서 슬펐다. 전국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맞닥뜨렸던 전염병의 참상은 홀로코스트 그 자체였다. 제 소를 묻어야 했던 늙은 농부의 이야기는 여기서 삼간다. 그 눈물은 여행기자의 칼럼에서 감히 언급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만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건 이번 겨울이 남긴 깊은 흉터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자랑하는 경북 안동시. 이번 구제역 파동의 진원지로 찍힌 곳이다. 지금 안동은 도시 전체가 마비 상태다. 값싸고 맛있어 안동에 내려갈 때마다 들렀던 안동 한우골목은 차라리 황량하기까지 하다. 권두현 안동 탈춤페스티벌 사무국장은 “안동은 지금 거대한 패닉에 빠져 있다”고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단 안동만의 일이 아니다. 해마다 수백만 명이 몰렸던 새해 해맞이 행사도 큰 타격을 입었고, 화천 산천어축제나 인제 빙어축제 등 수십만 명씩 불러모았던 겨울 지방축제도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최고의 설경을 자랑하는 대관령 목장도 겨우내 폐쇄됐고, 국내 여행사들은 일주일에 버스 한 대 채우는 것도 버거워했다.



 1월 중순 경남 창녕 우포늪에 갔을 때 일이다. 환경부 도움을 받아 취재를 갔는데도 우포늪의 자랑 따오기는 볼 수 없었다. 아예 따오기 복원센터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중국 총리가 선물했다는 따오기가 혹여 어떻게 될까 복원센터는 불안에 떨고 있었다. AI(조류인플루엔자)가 인근 경남 사천까지 진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우포늪은 초비상 상태였다. 반도의 동북쪽을 구제역이 휩쓸었다면 반도의 서남쪽은 AI가 강타했다. 이번 겨울엔 철새마저 설움이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정초 경기도 포천시 공무원과의 전화 통화다. 취재 협조를 구했는데 뜻밖에 거절당했다. 기사 의도를 충분히 설득했는데도 그는 “바쁘다”고만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소 묻으러 가야 합니다.”



 봄아, 얼른 와라. 어슬렁어슬렁 오지 말고 잰걸음으로 바삐 와라. 봄아, 올해는 제발 서둘러 와라. 부탁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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