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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고분벽화 사신도가 사라졌다

중앙일보 2011.02.11 03:00 종합 22면 지면보기
“현재의 상태로는 벽화(壁畵)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70여년 만에 첫 정밀분석
일제강점기 때 사진엔 형태 또렷
항온·항습 보존설비 미흡해
지금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 훼손

 건국대 한경순(회화과) 교수의 입에서 탄식이 흘렀다. 소중한 문화유산의 상실감 때문이다. 충남 공주시 ‘백제 송산리 6호 벽화고분’(사적 제13호)에 있는 ‘사신도(四神圖)’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진 것이다.



 ‘사신도’는 네 방위를 맡은 신을 그린 그림이다. 동쪽의 청룡(靑龍), 서쪽의 백호(白虎), 남쪽의 주작(朱雀), 북쪽의 현무(玄武·거북과 뱀) 등 방위신을 표현했다. 우주의 질서를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강서대묘·호남리 사신총 등 고구려 벽화에 즐겨 사용됐으나 백제의 것으로는 송산리 6호분과 부여 능산리 동하총 두 곳에만 남아있다. 백제의 사신도는 그만큼 희귀한 문화재다.









활기차던 백호(白虎)의 몸짓은 어디로 갔는가. 백제의 귀중한 문화유산인 공주시 송산리 6호분 ‘사신도(四神圖)’ 중 서쪽 벽에 그려진 백호 그림. 1930년대 사진(왼쪽)에는 그나마 형태가 살아 있었으나 지금은 겨우 그림 흔적만 남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진작가 김광섭]





-얼마나 심각한가.



 “최악의 상황이다. 일제강점기 사진을 보면 그나마 벽화의 모양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윤곽조차 쉽게 분간하기 힘든 형편이다. 완벽한 훼손이다.”



-왜 이렇게 됐나.



 “벽화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적절한 보존장치와 제도적 지원이 없었다. 벽화는 밀폐된 상태에서 적당한 온·습도를 유지시켜줘야 하는데 그런 작업이 미진했던 것이다.”











-동하총 사정은 어떤가.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1500여 년 된 백제 사신도가 완전히 사라질 위기다. ‘송산리 6호분’은 백제에서 확인되는 최초의 벽화고분이다. 6세기 초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송산리 6호분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 처음 발견됐다. 발견 당시 도굴된 상태였지만 30년대 찍은 사진을 보면 사신도의 형태가 비교적 또렷하게 남아 있다. 90년대부터 학계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연구가 진행됐으나 체계적인 보존작업이 뒤따르지 않았다.



 문화재 보존전문가 5명이 송산리 6호분 발견 70여 년 만에 최초의 과학적 분석에 나섰다. 지난해 3~11월 고분의 구조적 특성, 회화의 보존상태, 미생물·세균 오염상태, 안료 분석 등을 종합적으로 따졌다. 늦게나마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자는 뜻에서다.



 조사 결과 고분 네 벽에 그려진 사신도 훼손이 심각했다. 네 면 모두 바탕층 및 채색층에 균열과 박락(剝落) 현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예컨대 동벽 청룡 그림의 경우 30년대 사진에는 얼굴이 비교적 선명했으나 현재에는 그림이 있던 곳만 알아볼 정도다. 서벽 백호 그림도 예전에는 백색 안료 흔적이 뚜렷하게 보였지만 지금에는 필선(筆線) 흔적만 남아 있는 상태다. 다른 두 그림의 상태도 마찬가지다.



 보존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것은 72년 고분을 개방하면서 무덤 내 환경이 평형상태를 잃었기 때문이다. 공기 중의 각종 유해인자가 고분 내부로 들어가면서 재질이 약화되고, 안료 또한 퇴색한 것으로 보고됐다. 고분은 90년대부터 봉쇄됐고, 현재 항온·항습장치가 가동 중으나 훼손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한경순 교수는 “고분 내부의 미생물 번식 방지를 위해 습도를 건조하게 유지했는데 이것이 벽화 점토 바탕층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킨 것 같다”고 말했다. 벽돌들의 균열도 가속화돼 고분 자체의 안정성도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응급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연구를 총괄한 한국전통문화학교 정용재(보존과학과) 교수를 만났다. 조사진은 11일 오후 1시 국립공주박물관 대강당에서 ‘공주 송산리 6호 벽화고분 보존방안’ 심포지엄을 연다.



-앞으로 뭘 해야 하나.



 “최소 지금 상태라도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고분에 대한 정기적 모니터링이 절실하다.”



-구체적 방안은.



 “친환경적 공기조절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고분 환경이 벽화손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도 더 정교해야 한다.”



-훼손부위 보강이 필요하다.



 “석회·모래·점토 등 벽화 바탕재질부터 알아내야 한다. 그래야 원상에 근접할 수 있다. 미생물·침전물 제거법 연구도 시급하다.”



박정호 문화데스크



◆송산리 6호분=충남 공주시 금성동 소재. 벽돌을 쌓아 올린 전축분(塼築墳)으로, 인근의 무령왕릉과 함께 중국 양(梁)나라 양식으로 축조됐다. 당시 최고 신분층인 왕과 귀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고분벽화=무덤 내부 벽면에 그린 그림을 가리킨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구려 고분벽화가 대표적이다. 고대인의 생활상·종교관 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현재 남한에선 모두 9기의 벽화 무덤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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