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장르포] 다시 태어나면 부디 구제역으로부터 자유롭기를 …

중앙일보 2011.02.11 00:26 1면



막 눈 뜬 새끼돼지 땅에 묻고 자식 잃은 듯 눈물



8일 아산 신창면 구제역이 발생한 한 돼지 농가에서 매몰작업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농가 주인이 씁쓸히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조영회 기자]







지난해 11월 경북 안동에서부터 시작된 구제역이 좀처럼 수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설 연휴기간 아산에서만 7건의 의심신고가 접수됐다. 이 가운데 양성판정을 받은 곳은 모두 5곳. 매몰 가축 수는 3069마리(돼지3066·한우3)에 이른다. 농민들은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운 가축들을 한 순간 땅속에 묻어야 했다. 아산지역 가축매몰현장에서 극심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축산 농민과 공무원 등을 만나봤다.



글=조영민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안타까운 내 새끼들 …



8일 오후 1시. 충남 아산 신창면 궁화리 돼지매몰현장. 연일 지속되던 동장군의 기세는 한풀 꺾인 포근한 날씨였지만, 현장을 지켜보는 축산농가 주인과 공무원, 수의사 등 관계자 10여 명의 마음은 아직도 한겨울 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 새끼들을 땅속에 묻는 이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려옵니다” 아산시 신창면 궁화리에서 돼지 1만2000여 마리를 키우고 있는 남경훈(58)씨는 타들어 가는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남씨는 이번 구제역으로 모두 4500여 마리의 돼지를 잃었다.



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떨어진건 지난달 11일. 충남 보령에서도 돼지 농가를 운영하는 남씨는 일부 돼지가 침을 흘리고 구제역 증상을 보여 신고했지만 처음에는 단순 감기증상인 줄 알았다. 하지만 검사결과에서 양성판정이 떨어졌다. 자식 같은 돼지 3000여 마리를 살처분한 뒤 아산에서 키우고 있는 돼지들만큼은 구제역으로부터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자체 방역초소까지 만들어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생후 2개월 미만의 새끼들을 제외하고 100% 백신접종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구제역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백신을 맞추지 않은 1500여 마리의 새끼들이 바이러스의 희생양이 돼 버리고 말았다. 남씨는 “눈을 뜬지 얼마 되지않은 어린 녀석들이 차가운 땅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부디 다음 생애에서는 구제역으로부터 자유롭길 바란다”고 눈물을 훔쳤다.



구제역 공포 왜 다시 왔나



최근 잠잠했던 구제역이 지난 설 연휴기간 아산 지역에서만 모두 7건의 의심신고가 접수됐다. 이 중 양성판정을 받은 곳은 5곳으로 총 3269마리의 가축이 매몰, 살처분 됐으며 돼지의 비율은 99%에 육박한다. 또한 아산지역은 올해 12건의 구제역중 절반 가량이 설 연휴기간 발생했다. 농식품부와 충남도 등은 지난달 부터 소에 대한 백신을 접종하면서 항체가 형성되는 2주 뒤인 1월 말 또는 2월 초 구제역이 진정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백신접종 초기에 소 보다 감염율이 최대 1000배 가량 높은 돼지를 뒤로 미룬 채 소에 대한 접종만 먼저 고수했던 것이 이번 구제역 재앙의 최대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아산시 관계자는 “설 연휴기간 구제역이 봇물처럼 터진 것은 돼지의 백신접종이 시기상 약간 늦었고, 그만큼 항체의 생성시기 또한 늦어졌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극심한 ‘트라우마’ 호소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축산 농가 농민들과 관련 공무원, 매몰현장에 참여한 수의사 등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이른바 구제역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지난 5일 아산 탕정면 갈산리에서 돼지 1570여 마리를 매몰한 농가주인 박모(55·여)씨는 취재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지금은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며 외부인을 극히 꺼리는 대인기피 현상을 보였다.



 8일 남씨 돼지농가 매몰지에서 만난 공중방역 수의사 정인식(27)씨 역시 “동물을 살리려고 수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했지만, 오히려 잔인하게 동물을 죽이다 보니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린다”며 “매몰 전 가축과 눈이 마주칠 때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산 채로 땅속에 돼지를 묻고 가스를 주입해 질식사 시키는 잔인한 방법을 쓰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농가 주인들의 마음은 오죽하겠나. 하루빨리 구제역의 스트레스로부터 농민들이 해방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28일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충남지역에서만 의심신고가 200건을 넘어서는 등 확산되고 있다.



 충남에서 접수된 구제역 의심신고는 지난달 2일 천안을 시작으로 38일 만에 206건을 기록했다.



 충남 시·군별로는 당진군이 71건으로 가장 많고 천안 54건, 예산 27건, 아산 17건, 홍성 16건, 보령 10건, 공주 6건, 논산 4건, 연기 1건 등이다.



 의심신고 가운데 ‘양성’으로 판명된 것은 총 170건이며, ‘음성’은 17건(항체양성 1건 포함), 나머지 19건은 검사 중이다.



 충남도는 지난 7일까지 살처분 대상 우제류(발굽이 2개로 구제역에 걸릴 수 있는 동물) 37만6000여 마리 중 98.9%에 해당하는 37만2000여 마리를 살처분 했으며,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위해 현재 311개의 구제역 방역초소를 운영 중이다.



 시·군별 방역초소 수는 당진군이 101곳, 천안시 60곳, 예산군 27곳, 아산시 16곳, 보령시 11곳, 홍성군 4곳, 공주시 3곳, 논산시 2곳, 연기군 2곳 등이다.



 충남도 관계자는 “도와 시·군 각 축산농가가 합심해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구제역이 계속 발생해 혼란스럽다”며 “지난 3일 시작된 제2차 구제역 예방백신 접종이 이달 말일까지 마무리되면 상황은 좀더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충남도는 정부와 합동으로 이달 21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도내 구제역 및 조류인플루엔자(AI) 매몰지 226곳의 관리 실태도 특별점검하기로 했으며, 점검 결과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해당 매몰지의 배수로를 정비하고 복토를 하는 등 보강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