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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준, 젊어선 욘사마보다 미남 … 매일 꿈에서 만나요”

중앙일보 2011.02.11 00:00 종합 27면 지면보기



뉴욕 이은주 사진전서 만난
고 백남준 부인 시게코 여사



9일 사진전에 참석해 백남준 선생 사진 앞에 선 시게코 여사(왼쪽)와 이은주 작가.



“지난 설에도 남준의 꿈을 꿨어요. 대리석이 깔린 현관을 지나 녹색 벽이 있는 방에 들어서니 그가 서 있었어요. 마치 살아있는 듯 그는 부드럽게 말했어요. ‘여기가 우리 아파트야’라고. 그런데 생전에 우린 그런 아파트에서 산 적이 없었죠. 잠에서 깬 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남준이 저 세상에서 사는 집은 아파트인 걸까.”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아내 구보타 시게코(久保田成子·74) 여사는 꿈을 꾸듯 말했다. 그는 요즘도 매일 남편과 꿈속에서 만난다고 했다. “남준의 몸은 저 세상으로 갔지만 그의 영혼은 비디오아트라는 예술 속에 남아 아직도 늘 내 곁에 있다”는 것이다. “그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면 그가 남긴 비디오를 본다. 그 속에서 남준은 피아노도 쳐 주고 ‘시게코’라며 내 이름도 불러준다. 그가 내게 남겨준 비디오아트는 저승의 남준과 이승의 나를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시게코 여사는 9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한국문화원에서 개막한 ‘백남준 추모 5주기 특별 사진전’에 참석했다. 그는 거동이 불편해 거의 바깥 나들이를 하지 못하는 상태다. 그렇지만 이날만은 꼭 참석해야겠다며 휠체어를 타고 나왔다. 그는 “40년 전 백남준은 ‘욘사마(한류스타 배용준의 일본 애칭)’보다 훨씬 미남이었다”며 “다시 태어나더라도 그를 쫓아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백남준과 어깨를 겨룰 세계적 예술가이기도 했던 그는 1996년 백남준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10년 동안 작품 활동을 포기하고 남편의 병 수발을 했다. 그렇지만 그는 “삶 자체가 예술”이라며 “남준과 보낸 시간이 결코 후회스럽지 않다”고 회고했다.



 사진전에는 공연예술 사진작가 이은주씨가 15년 동안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찍은 백 선생의 사진 30여 편이 전시됐다. 이 작가는 백 선생에게서 초상권 판권을 인정받은 유일한 사진가이기도 하다. 그는 “백 선생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인 98년 그를 뉴욕에서 만났을 때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몸 왼쪽 전체가 마비된 그는 이 작가를 보자 대뜸 오르간 앞에 앉았다. 백 선생은 젊은 시절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뇌졸중을 앓고 난 뒤론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날 그는 오른손만으로 오르간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울밑에선 봉선화야’를 구슬프게 연주하고 나선 ‘신라의 달밤’을 멋지게 뽑았다. 이 작가는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병이 든 후 선생님은 고향을 무척 그리워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2006년 백 선생의 장례식도 사진에 담아뒀다. 그는 “서양식 장례식이었기 때문에 관 속에 누워 있는 선생님의 상반신을 볼 수 있었다”며 “편안해 보였던 그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번 사진전에선 장례식 사진은 전시하지 않았다. 그는 “10년쯤 더 뒤에 가까웠던 사람들의 마음이 정리되고 나면 장례식 사진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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