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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즈펠드 “북 압박해 김정일 체제 전복 노렸다”

중앙일보 2011.02.09 19:43 종합 15면 지면보기



회고록서 남북한 비화 언급





“2006년 7월 4일 독립기념일. 나는 불꽃놀이를 기대했다. 그러나 오후 2시30분 북한의 폭군에 의해 (불꽃놀이가) 이뤄질 줄은 몰랐다. 휴일 파티를 위해 아내와 메릴랜드주 체사피크만 다리를 향하던 중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를 발사했다는 전화 보고를 받았다….”



 미국의 도널드 럼즈펠드(Donald Rums­feld·79·사진) 전 국방장관이 8일(현지시간) 발매된 회고록에 적은 2006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 발사 상황이다. 회고록 제목은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Known and Unknown)』. 회고록 중 남북한 관련 비화를 요약했다.



◆“부시와 북 미사일 요격 과정 논의”=2006년 7월 군과 정보당국은 알래스카와 하와이가 북한 미사일의 사정거리 내에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미국은 즉각 발사할 수 있는 10개 이상의 요격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었다. 문제는 누가 요격 명령을 내리느냐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나는 어떤 과정을 거쳐 요격 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 논의했다.



요격 명령이 너무 늦으면 요격 자체는 성공하더라도 치명적인 잔해들이 미국 내 광범위한 지역에 떨어질 수 있다. 결국 부시와 나는 국방장관에게 요격 명령을 위임하는 게 타당하다고 결론지었다. 미사일 요격을 관장하는 사령관들은 내게 판단과 명령을 요구했다.



북한의 미사일이 미국을 향하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나는 요격 명령을 내리리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 미사일이 발사 후 42초 만에 북한 영역에 떨어져 명령을 내릴 필요가 없었다.



◆“북한문제 주도권, 국무부에 빼앗겨”=2002년 북한의 비밀 핵 개발 야욕을 알고 있던 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책임자들에게 “협상 테이블에 앉는 건 북한이 추구하는 ‘트로피(trophy)’이자 나쁜 행동에 보상하는 것”이라는 서한을 보냈다. 중국이 포함된 6자회담의 협상 성과에 대해서도 낙관할 수 없었다. 나는 북한에 경제적 지원 등 유인책을 제공하기보다 외교적·경제적 압박을 취하면 북한 군부의 고위장성 일부가 김정일 체제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006년 들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대표는 “북한은 오로지 국무부의 이슈”란 점을 분명히 했다. 그들은 북한과의 대량살상무기(WMD) 종식 합의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중앙정보국(CIA)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리처드 롤리스 국방부 부차관보는 논의과정에서 배제됐다.



◆“한국 젊은이가 왜 이라크 가냐고?”=내 국방부 집무실 책상에는 야간의 한반도 위성사진이 있었다. 환한 불빛의 한국과 캄캄한 북한으로 대조되는 사진 한 장이 자유의 힘을 웅변했다.



2003년 11월 방한 당시 서울의 고층빌딩 꼭대기층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 한국의 젊은 여기자가 이라크 파병 논란을 언급하며 “왜 한국의 젊은이들이 지구 반대편 이라크로 가서 죽고 다쳐야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한국의 ‘역사적 기억상실증(histori­­­­­­­­­­­­­­­­­­­­­­­­­­­­­­cal amnesia)’을 느꼈다. 나는 한국전에서 숨진 고교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며 “왜냐고요? 50여 년 전 미국이 젊은이들을 지구 반대편 한국으로 보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라고 되물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럼즈펠드=2001~2006년 조지 부시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내며 9·11 이후 이라크 전쟁 등을 주도했다. 1970년대 중반 제럴드 포드 정부에서 국방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프린스턴대 레슬링팀 출신의 강골이다. 신변의 위협을 고려해 늘 경호원을 대동하고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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