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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우리 역사교육과 ‘지적 선진화’

중앙일보 2011.02.09 00:29 종합 33면 지면보기






김영호
대한지적공사 사장




중앙일보가 새해 들어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하자’는 어젠다를 내놓았다. 시의 적절한 기획이라고 판단한다. 그동안 한국사 교육은 사실상 ‘빙하기’나 다름없었다. 한국사 과목이 사법시험에서 제외된 것을 시작으로 각종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빠졌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한지적공사에서도 한국사가 채용시험에서 없어진 지 오래다.



 우리가 역사교육을 소홀히 하면 과거, 뿌리를 모르게 된다. 과거를 모르고서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올바른 안목을 가질 수 없다. 특히 국가 토지행정의 기초자료로, 국민의 재산관리 용도로 쓰이는 지적(地籍) 제도는 역사를 모르고서는 진일보하기 어렵다. 언제 누가 어떤 목적으로 지적도·임야도를 만들었고, 그동안 어떻게 사용되어 왔으며,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역사의 거울에 비춰봐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적공사는 올해 신규채용 때부터 한국사 능력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에게 가산점을 주려고 한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지적도·임야도는 뜻밖에도 100년 전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세금 징수와 토지 수탈이 목적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토지대장이 지금도 쓰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정부가 수립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지적 제도만큼은 일제 잔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당시 일제가 1910년 한일병탄 당시 도쿄(東京)를 원점으로 아날로그 측량장비로 서둘러 우리 땅을 측량하다 보니 오류가 많았다. 세계 표준인 세계측지계를 기준으로 국토의 위치가 동쪽으로 494m나 어긋나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도쿄 원점을 측량기준점으로 사용한 결과다. 일본은 2002년 세계측지계로 전환했다.



 또 광복과 한국전쟁, 국토개발 등 사회격변기를 거치며 그나마 있던 지적도마저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마모, 훼손, 변형, 멸실, 측량기준점 망실, 건물의 무단 신증축, 국토의 변형 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이로 인해 현실 경계와 도면상 경계가 맞지 않아 측량을 하지 못하는 이른바 ‘지적 불합지’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웃 간의 토지 분쟁에 따른 사회적 비용만도 연간 수천억원이 넘는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적 제도 마비와 함께 사회적 대혼란마저 우려된다.



 물론 그동안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4년부터 전면적인 토지조사 사업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정책 우선순위에 밀려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적 선진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역사적 과제다. 마지막 남은 일제 잔재 청산과 지적 주권 회복에 그치지 않는다. 100년 만의 지적 제도 구축과 해외 수출, 공간정보산업 진흥,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다. 지적 선진화 관련법의 조속한 제정으로 사업 기반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김영호 대한지적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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