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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의 세상읽기] 2011년 2월 타흐리르 광장

중앙일보 2011.02.09 00:27 종합 33면 지면보기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카이로가 서서히 본래 모습을 되찾고 있다. 이집트 역사상 유례가 없는 소요 사태로 일주일 이상 문을 닫았던 은행과 상점들이 며칠 전 다시 문을 열었다.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던 기업과 공장들도 빠르게 업무를 재개하고 있다. 카이로의 상징이 된 극심한 교통 체증도 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전에 비해 카이로의 교통 사정은 훨씬 심각해졌다. 꽉 막힌 도로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기 일쑤다. 도로 하나를 빠져 나가는 데 몇 십 분씩 걸리기도 한다. 카이로 시내 한복판에 있는 타흐리르 광장이 시위대 때문에 봉쇄된 것이 차량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군인들이 설치한 바리케이드도 아직 시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렇지만 일시적 요인으로 설명하기엔 문제가 있다. 카이로의 도로 사정이나 교통 체계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그 사이 자동차는 크게 늘었다. 교통 체증으로 몸살을 앓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처럼 이면도로가 발달한 것도 아니다. 막히면 대책이 없다. 그러려니 하고 마음을 다독이는 수밖에 없다. 카이로는 성미 급한 한국인의 정신 수양에 딱 좋은 곳이란 생각도 든다. 정신 수양도 좋지만 한국 같으면 이미 난리가 났을 것이다. 급한 성격 때문에라도 길을 뚫든, 도시 정비를 하든, 교통 시스템을 바꾸든 무슨 수를 냈을 것이다. 참고 기다리는 것이 꼭 미덕은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빨리 하고, 못 하거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참는 것이 진짜 인내다.



 이집트인들은 정말 오래 참았다.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를 건설하며 살인적 노역을 견딘 것이 기원전 2700년이었다. 이집트에서는 모든 것이 통치권자의 소유였다. 근대적 의미의 소유권 개념이 도입된 것은 1850년대 들어서다. 시민사회라는 것이 있었을 리 없다. 처벌의 공포 속에서 지배계층의 압박과 통제를 견디며 살아 왔다.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는 단순히 호스니 무바라크 30년 독재에 대한 항거가 아니다. 참고 견디는 것을 숙명으로 알고 살아온 자신들의 DNA에 대한 반항이다.









이집트 반정부 시위의 메카가 된 타흐리르 광장은 남녀노소가 어우러진 축제의 장이 됐다. 가족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카이로=배명복 순회특파원]






 이집트의 리버럴 계열 신문인 알람 알 윰지(紙)의 사아드 하그라스 편집국장은 “이번 사태는 이집트 역사상 최초의 시민혁명”이라고 강조한다. 이집트 민중이 지배계층에 대해 이런 저항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집트 역사는 1·25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문자메시지를 보고 타흐리르 광장에 사람들이 처음 모인 2011년 1월 25일이 이집트 역사의 새로운 분기점이라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무바라크가 물러나고, 안 물러나는 차원의 문제를 이미 넘어섰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집트의 사태는 관습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카이로에 있는 호텔 종업원들에게 무슨 부탁을 하면 늘 친절하게 “노 프라블럼(No problem)”이라고 말한다. 그래 놓고는 감감무소식이다. 나중에 따지면 “잘 몰랐다”고 발뺌을 하거나 다른 핑계를 댄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부탁한 것이 인터넷 연결이었는데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 것이 벌써 며칠째다. 처음부터 안 된다고 했으면 차라리 좋았을 것을. 이집트에선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안 되는 것도 일단 된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을 그들 자신도 잘 안다. ‘아랍의 IBM’이란 농담도 그래서 생겼을 것이다. 아랍인들이 즐겨 쓰는 세 가지 표현인 ‘인샬라’(신의 뜻대로)와 ‘부크라’(내일), ‘말리시’(별일 아니다)의 알파벳 첫 글자를 모아 만든 조어다. 일이 잘못되면 아랍 사람들은 ‘인샬라’ 하면서 그냥 넘어간다. 오늘 못해도 내일 하면 되니 ‘부크라’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말리시’를 반복하며 책임을 모면한다.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는 ‘아랍의 IBM’에 대한 도전이다. 아랍인들에게 덧씌워진 오리엔탈리즘의 고정관념을 깨는 시도다.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가 문명사적으로 아랍권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이집트 사태의 여파로 아랍권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타흐리르 광장은 이미 성지(聖地)가 됐다. 광장을 봉쇄한 군인들의 바리케이드를 몇 번씩 통과해야 하는 불편에도 불구하고 매일 수만 명이 광장을 찾고 있다. 가족과 함께 광장에서 인증샷을 찍는 것이 새로운 유행이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설치된 캠핑용 텐트에서 매일 밤 수천 명이 밤을 지새운다. 날이 밝으면 다시 모여든 사람들과 같이 웃고 떠들고 노래하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무바라크 정권의 비상조치법은 내무장관이 사회의 평화와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누구든 영장 없이 체포해 구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무바라크 체제를 지탱해온 전가의 보도다. 공포의 사슬을 끊고 타흐리르 광장의 이집트인들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쏟아내고 있다. 역사상 이런 경험 자체가 처음이다.



 해방구로 변한 광장에는 시민들의 창의가 넘쳐나고 있다. 각종 행위예술과 퍼포먼스가 줄을 잇는다. 자발적 조직을 통해 질서와 청결, 치안을 유지하고 있다. 그 속에서 그들은 종교와 계층, 남녀와 세대, 정파의 차이를 뛰어넘어 하나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그들은 무바라크가 물러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생각이다. 그러나 무바라크의 진퇴는 이미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광장의 경험을 더 오래 공유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타흐리르 광장 사람들은 인고(忍苦)와 관습, 공포의 장벽을 뛰어넘어 이집트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카이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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