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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한국보다 잘살던 이집트 ‘나눠먹기 복지’ 부메랑

중앙일보 2011.02.09 00:25 종합 14면 지면보기






이상언
특파원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자료에 따르면 1961년 이집트의 국민소득(1인당 GDP)은 151달러였다. 당시 한국은 91달러였다. 도토리 키재기지만 이집트 형편이 약간 나았다. 50년 뒤인 현재는 2070달러(1인당 GNI) 대 1만9830달러로 한국이 9.6배다.



 이집트는 하루에 원유 70만 배럴을 생산하는 산유국이다. 천연가스는 해외에 수출한다. 수에즈운하 통행료로 연간 50억 달러(약 5조5000억원)를 번다. 피라미드 등 고대 유적지를 보러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맨주먹밖에 없었던 한국이 경제성장을 이룰 동안 이집트는 도대체 뭘 한 것인가.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요소들이 두루 얽힌 일이라 답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원인을 짐작하게 하는 모습이 있다. 이집트에는 8000개 이상의 국영 빵 가게가 있다. 납작한 빵 하나를 10∼20원에 판다. 정부가 보조금을 투입해 생산원가보다 훨씬 싼값에 제공하는 것이다. 일반 상점 빵의 10분의 1 가격인 이 빵은 아무나 살 수가 없다. 영세민임을 증명하는 카드를 제시해야 한다. 대상자는 전 국민의 40%가량이다.



 카이로 시내 주유소의 휘발유 1L 값은 240원이다. 원유 자급자족 수준의 산유국이기도 하지만 이 정도로 값이 싼 것은 정부 보조금 때문이다. 수도 요금도 4인 가족이 사는 집이 통상 1000원 정도 낸다. 정부가 국영 수도회사에 예산을 투입해 물값을 낮추는 것이다. 대학 등록금도 1년에 10만원 정도다. 교육 기회 확대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정책에는 사회주의적 전통이 깔려 있다. 이집트는 2007년에야 헌법에서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표현을 없앴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사회주의 정책을 대부분 포기했지만 공식적으로는 4년 전에야 자본주의 국가가 된 것이다. 정부의 보조금 정책은 자선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이슬람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부자들이 베풀어온 이웃에 대한 시혜를 국가가 대신한다는 개념이다.



 운하 통행료, 천연가스 판매대금, 관광수입은 이런 식으로 직접 국민의 생계를 지원하는 데 주로 쓰였다. 대신 국가의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적었다. 카이로는 교통 체증으로 악명 높다. 도로가 엉망이고, 대중교통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관광시설도 대부분 낡고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렇다 할 산업시설도 없다. 보름째 지속된 반정부 시위의 발단은 경제 문제였다. 인터넷을 통해 시위를 주도한 청년 그룹들의 초기 요구사항은 일자리를 달라는 것이었다. 대통령 퇴진 투쟁으로 번진 것은 그 뒤의 일이다.



 정부가 당장은 국민의 불만을 사더라도 휘발유 보조금을 줄여 교통망에 투자하고, 대학생 수를 늘리기보다 좋은 대학을 만드는 데 투자했더라면 이집트의 상황은 오늘과 달랐을 것이다. 이번 혼란은 미래가 아닌 현실에 투자한 나라의 자업자득인 측면이 있다.



이상언 특파원 카이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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