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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시시각각] ‘정치논리’ 다시 생각하기

중앙일보 2011.02.09 00:22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정치란 무엇인가. 미국 정치학자 해럴드 드와이트 라스웰(1902~78)에 따르면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얻느냐가 정치다(Politics is who gets what, when, and how).” 미국정치학회(APSA) 회장을 지낸 라스웰은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20세기 사회과학자다.



 라스웰 교수가 한국 사회를 들여다 본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만한 게 있다. 이곳 저곳에서 “정치논리는 빠지라”는 아우성이 그것이다. 정치논리가 빠져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동남권 신공항, 무상급식과 같은 굵직굵직한 정책 현안들이 바르게 해결된다는 것이다.



 천덕꾸러기가 된 정치논리에 대해 대략 다섯 가지 인식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 첫째, 정치논리는 배제가 가능하다. 둘째, 경제논리와 같은 다른 논리가 정치논리보다 우월하다. 셋째, 정치논리를 제외한 다른 논리는 ‘우리 편’이다. 넷째, 정치논리는 나쁘다. 다섯째, 정치논리는 개선될 수 없다.



 정치논리를 배제하면 정치논리가 배제 가능한 것이라야 한다. 결론적으로 불가능하다. 정치논리는 약방의 감초다. 어떤 형태로든 정치논리가 개입된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문제를 보자. 입지 선정을 전적으로 과학자들에게 맡겨도 과학자들 사이에 정치논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물리학·화학·생물학과 같은 학문 분과에 따라 과학자들의 입장과 이익이 다르다. 기초과학자와 응용과학자의 입장과 이익도 다르다. 입장과 이익이 다르면 정치논리가 발생한다. 같은 정당, 같은 종교 내에도 여러 파벌이 있고 다양한 정치논리가 있다. 피할 수 없는 게 정치논리라면 본질적으로 나쁜 게 정치논리라고 해도 ‘우리 편’으로 삼고 개선하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정치논리 배제론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시장 논리, 경제 논리, 전문가 논리와 같은 다른 논리에 맡기면 ‘우리 편’에 유리하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 정치논리를 배제하면 바라지 않는 결과 나올 수 있다. 예컨대 정치논리를 배제한다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우리 고장에 오는 게 아니다. 세계적인 학자들을 영입하자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취지를 생각하면 입지 조건이 유리한 곳은 서울과 그 인근이다. 수퍼스타급 연구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가장 맞는 곳은 서울이기 때문이다. 정치논리를 배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주장해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우리 고장에 올 가능성이 열린다.



 대형 국책 사업은 국가 백년대계이기 때문에 정치논리 접근은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국가 백년대계이기 때문에 더욱 정치논리가 필요하다. 국가는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최고의 정치적인 실체다.



 정치논리가 두들겨 맞는 이유 중 하나는 정치논리가 차기 대선과 총선, 그리고 지역이기주의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정치는 곧 선거정치이며 선거정치는 곧 지역이기주의 정치일 수밖에 없다. 지역이기주의는 당연한 것이다. 내 고향, 내 지역구에 국책사업을 유치하겠다는 정치인·관료·유권자를 나무랄 수 없다. 지역이기주의라는 말이 지니는 부정적인 느낌을 털어야 한다면 ‘지역이익주의’라는 신조어를 만들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국익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국익만 생각할 수는 없다. 엄연히 지역이익, 사회계층적 이익, 개인적 이익이 존재한다.



 우리 사회에서 부쩍 정치논리 배제론이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 정치가 이념의 정치에서 ‘이익의 정치(interest politics)’로 전환 중이기 때문이다. 이념의 정치에선 좌파·우파·중도의 구분이 중요하다. 이익의 정치에선 이러한 정치 스펙트럼은 무의미하다.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얻느냐”가 중요하며 이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와 정치를 뒷받침하는 정치논리다. 물론 정치논리와 다른 논리 사이의 균형과 상호 견제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정치논리에만 맡길 수는 없다. 사안에 따라 경제논리·과학논리·문화논리의 목소리를 키울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치논리 배제론은 어불성설이다.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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