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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 아랍사태는 문명사적 M 혁명이다

중앙일보 2011.02.09 00:19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프랑스 현대철학자 질 들뢰즈(1925~95)는 중심부와 주변부(periphery)로 나뉜 사회에서 혁명은 주변부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23년간 장기 집권한 독재자 벤 알리를 축출해 아랍세계에 혁명의 쓰나미를 일으킨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도 시디부지드라는, 수도 튀니스에서 남쪽으로 28㎞ 떨어진 이름 없는 한촌(閑村)에서 아주 하찮게 보이는 사건으로 시작됐다. 여자 경찰관이 고졸의 청과물 노점상 무함마드 부하지지의 청과물에 침을 뱉었다. 모욕을 참지 못한 부하지지는 분신 자살하고, 그의 가족이 주 청사로 몰려가 격렬한 항의시위를 했다. 시위하는 모습이 휴대전화에서 페이스북으로 전파되고, 순식간에 200만 명의 페이스북 사용자가 시위에 가담했다. 로마에 멸망한 카르타고 이래 그런 일에 깨어진 적이 없는 대중의 침묵의 벽이 무너지자 독재자는 황망하게 국외로 탈출했다.



 재스민이라는 향기로운 이름의 혁명은 이제 M(모바일)이라는 가치 중립적이고 쿨한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기 시작했다. 블로그로 반체제 활동을 하다 구속되었던 33세 청년이 튀니지 과도정부의 청년체육부 장관에 임명된 것은 모바일의 힘과 M혁명의 문명사적인 의미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분신 자살로 민주주의의 순교자가 된 부하지지의 누이가 IHT 칼럼니스트 로저 코언에게 “모든 아랍 국가가 부하지지의 등장을 고대한다”고 말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이집트는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2011년 1월 25일 이집트의 페이스북 가입자들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축출 시위를 벌이자는 호소문을 받았다. 처음에는 반응이 냉랭했다. 그러나 계속된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호소에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의 젊은 층이 호응하고, 일반 시민과 지식인들이 가세했다. 이집트의 휴대전화 소지자는 500만 명이라는 통계가 나왔다. 아이로니컬하게도 1월 25일은 이집트의 ‘경찰의 날’이었다. 시위대는 이날을 ‘분노의 날’로 선포하고 카이로 시내 곳곳에서 수만 명 단위로 무바라크 물러가라!를 외치는 데모를 했다. 30년 장기 집권으로 심각한 정치적 자폐증에 걸린 무바라크는 모바일 시대의 도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는 경찰을 동원해 시위대에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았다. 가장 포스트모던한 모바일로 무장한 반정부 시위대에 전통적인 최루탄과 물대포는 위협이 될 수 없다. 무바라크는 집권 연장과 아들에게로의 권력 세습 포기와 자유선거를 포함한 정치개혁을 약속하여 9월까지의 남은 임기를 채우는 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가 즉각 퇴진의 위기를 모면한다고 해도 M혁명의 불길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M혁명의 쓰나미는 이미 요르단·예멘·시리아·알제리·바레인을 휩쓸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집권세력의 간담을 흔들어놓고 있다. 아마도 평양의 북한 지도자들도 가슴 졸이면서 M의 위력에 몸을 떨고 있을 것이다.



 요르단 왕은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내각을 새로 임명하고 각종 개혁을 약속했다. 32년째 집권 중인 예멘의 살레 대통령도 임기가 끝나면 권좌에서 물러나겠다는 말로 높은 실업률과 물가고에 분노한 국민들을 회유하고 있다. 아랍권의 다른 나라 지도자들도 나름대로의 비상구를 찾고 있다. 미국에 이집트는 중동정책 수행에 필요한 특별한 우방이다. 그래서 무바라크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던 미국은 술레이만 부통령 체제를 중심으로 정치개혁을 하면서 9월 임기가 끝날 때까지 무바라크의 유임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미국은 무엇보다도 무바라크 퇴진으로 생길 권력의 공백을 무슬림 형제단이 메우는 사태를 걱정해 한발 물러섰다.



 미국의 대표적 지식인 로버트 캐플런은 튀니지가 아랍권에서는 가장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된 나라라는 특성을 지적하면서 튀니지 혁명이 아랍권 전체의 혁명으로 확산될 보편성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포스트모던한 혁명의 성격에 무지하고 주변부 유목민들을 정치적인 요소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유럽과 미국 계몽주의적 합리주의자들의 편견의 전형이다. 미국은 전략적인 이익과 지도자가 없는 M혁명의 특성을 악용해 혁명을 절반의 성공에 눌러두는 데 일시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모바일로 무장한 유목민들은 횡단적으로 끊임없이 연결·접속하면서 아랍의 오랜 전제체제와 구악을 하나씩 청산할 것이다. M혁명은 미국과 유럽의 이익 때문에 멈출 수 없는 문명사적인 사건이다. 2009년 이란의 M혁명은 실패했지만 그것은 튀니지 혁명이 아랍인들을 혼곤한 잠에서 흔들어 깨우기 전의 실험이었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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