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발모제 개발한다고 8년간 미쳤었죠

중앙일보 2011.02.09 00:10 경제 9면 지면보기



장재진 오리엔트바이오 회장





지난해 12월 22일, 한 중년 남자가 사무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눈물을 훔쳤다. 지식경제부 산하 산업기술평가원 직원과 한참 동안 입씨름을 벌인 뒤였다. 신약 개발에 필요한 정부 지원금을 끊겠다는 통보에 “기회를 달라”고 사정했지만 소용없었다. 기간 내에 신약 개발을 마치지 못했다는 이유다. 쓴 눈물을 삼킨 지 한 달 반 뒤인 8일, 그 신약 물질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임상시험 승인을 받았다. “수십만 번의 실패보다 정부의 꽉 막힌 지원책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는 그는 오리엔트바이오 장재진(50·사진) 회장이다.



 오리엔트바이오가 개발한 신약 물질 ‘OND-1’은 역발상에서 탄생했다. 면역억제제인 ‘사이클로스포린A’를 투여한 환자에게서 몸에 털이 나는 부작용이 생겼다. ‘대머리에겐 약이 될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면역억제 기능과 강한 독성이 문제였다. 이 회사 신약개발팀 연구진 10여 명은 분자 구조를 바꿔 발모 효과는 그대로 두고 독성만 없애는 연구를 거듭했다. 사람처럼 유전적으로 털이 빠지는 붉은얼굴원숭이가 실험 대상이었다. 먹어도 문제 없을 만큼 독성을 없애는 데 걸린 시간은 7년이었다.



 예상치 못한 장애는 또 있었다. FDA를 대리해 신약 물질을 인증하는 기관에서 ‘OND-1’ 10㎏을 요구해 온 것이다. 적은 양으로도 효능 실험이 가능해 1.5㎏ 정도면 될 거라고 예상했던 터였다. 당시 오리엔트바이오는 지식경제부 연구과제로 선정돼 40억원을 지원받기로 돼 있었으나 정부는 20억원만 지원한 뒤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개발비는 80억원. 장 회장은 “새로운 걸 개발하려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게 정상이다. 이렇게 꽉 막혀서야 누가 도전을 하겠나”라며 “한국에서 신약개발에 나선 내가 ‘미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오리엔트바이오가 이렇게 개발한 물질을 특허 등록한 나라는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 19개 국가에 이른다. 올해 임상시험에 착수해 이르면 2016년 신약 승인을 받을 계획이다. 장 회장은 “우리의 목표는 40억 달러(약 4조4000억원) 규모의 전 세계 발모제 시장이다. 그때까지 이 ‘미친 짓’을 계속할 것”이라며 웃었다.



김진경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