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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의 경제세상] 오락가락 너무 심한 과학벨트

중앙선데이 2011.02.06 02:22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호박이라도 찔러야지.” 한때는 이게 ‘정답’이었지만 요즘은 바뀌었단다. “도로 꽂을 줄도 알아야지”라고.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꽂을 줄 아는 아량이, 애꿎은 호박 찌르기보다 한결 의젓할 것 같아서다. 그 때문일까. 이명박 대통령이 칼을 뽑았다가 은근슬쩍 집어넣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얘기다.



충청도에 조성하기로 했던 과학벨트 계획을 이 대통령이 며칠 전 사실상 백지화했다. 청와대는 백지화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글쎄다. 발언록을 아무리 훑어봐도 백지화로 보이는데 말이다. 이 대통령은 “4월 이후 발족될 과학벨트추진위원회에서 검토하고 토론하고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충청도를 과학벨트로 하겠다는 자신의 대선 공약 역시 표 때문이라고 했다.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답변했다. 입지 선정을 과학인에게 맡기고, 충청권은 물론 다른 지역도 후보지로 검토하겠다는 얘기였다. 이게 백지화가 아니고 대체 뭔지. 혹여 오해가 있을 것 같아 미리 밝혀둔다. 설령 백지화라고 해도 그게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대통령 말은 옳다. 위원회에 일임하고, 과학자가 입지를 선정하도록 한다는 것 말이다. 정치적 요소는 배제하고 과학적·경제적 가치만 따지겠다는 의미라서다. 과학벨트는 최소 3조5000억원이 들어가는 거대 프로젝트다. 선진국에 한참 뒤처진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을 키우고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한 야심작이다. 투입 대비 효과가 가장 높은 지역을 선정하겠다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문제는 말 바꾸기와 말 뒤집기다. 그중 하나가 대선 공약을 뒤집은 거다. 일각에선 큰 문제라고 한다. 신뢰 문제가 있겠지만 공약 뒤집은 게 큰 허물일 순 없다고 본다. 정치인 공약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지 싶어서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판에 정치인이 무슨 공약인들 못할까. 오히려 당선된 후 정치인이 공약을 잊어버렸으면 할 때가 많다. 그게 나라 경제의 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도저히 감당 못할 공약을 남발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정말 문제는 대통령이 정부 정책을 한순간에 뒤집은 거다. 정책은 공약과 다른 것이라서다. 지난해 1월 11일 정부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종합계획안’을 발표했다. 다각도로 검토했지만 세종시가 “과학벨트의 거점지구로 매우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심지어 “세종시 과학벨트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여건을 갖고 있다”고까지 했다. 대덕이나 오성·오창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대구와 광주 등으로 경제발전이 확산될 수 있는 최적지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만 한 발표가 나오기까지 정부는 준비를 참 많이 했을 거다. 수많은 후보지에 대한 비용·편익 분석을 철저히 했을 거다. 그런 후 효과가 가장 큰 세종시를 선정했을 거다. 그게 통상적인 정부가 통상적으로 밟는 프로세스 아닌가. 하지만 대통령은 이런 분석을 아무런 설명 없이 내동댕이쳤다. 조만간 발족할 위원회에 그 일을 다시 맡기겠다고 했다. 이래 놓고 어떻게 정부를 믿으라는 건지.



말 바꾸기와 말 뒤집기를 할 땐 왜 그러는지 설명해야 한다. 1년 전엔 ‘최적지’라고 그토록 강조했던 세종시가 왜 지금은 그저 그런 땅으로 변했는지 말이다. 정부가 엉터리로 분석했기 때문에 대통령이 그걸 믿지 못할 수도 있다. 행정수도를 세종시로 옮기고 싶지 않은 욕심 때문에 분석하지 않았음에도 분석했다고 거짓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대통령은 백지화를 하게 된 설명을 먼저 했어야 했다. 그런 후 국민의 양해를 구하고, 사과했어야 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설명하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과학벨트 논쟁은 대통령이 바라는 과학과 경제의 영역으로 옮겨오지 못하는 거다. 정치 영역에서 맴돌면서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다. 독설가로 유명한 버나드 쇼는 “멍청한 사람은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자신의 임무였다고 우긴다”고 했다. 이 정부가 이 길로 가고 있으니, 이 일을 어쩌랴.



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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