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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의 경지 찬탄하며 왜 그 길을 따라나서지 않나”

중앙선데이 2011.02.06 01:26 204호 8면 지면보기
아직 수기(修己)편은 끝나지 않았다. 대체 이 남다른 수련의 진행 ‘과정’과 그를 통해 얻어질 ‘효과’는 무엇일까. ‘수기공효(修己功效)’는 이 궁금증에 대한 응답이다. 유학은 그런 점에서 ‘실용주의적’ 전망 위에 서 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거기에 이르도록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삶의 기술, 즉 지혜라 할 수 없다.

한형조 교수의 교과서 밖 조선 유학 : 성학집요<24> - 수기공효(修己功效)

지식이 행동을 부르고, 행동이 지식을 심화시킨다
“어디로 가야 하나?” 만해의 말대로 우리는 해 진 저녁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들인지 모른다. 유학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묻기 전에 “우리는 누구인가”부터 묻는다. 『대학』은 이렇게 읊고 있다. “갈 곳을 안 이후에 정향이 있다. 정향이 있은 이후에 정신의 고요가 있고, 외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아야 정신이 안정을 얻는다. 정신의 안정이 있어야 비로소 건전한 ‘생각’이 가능하고, 이윽고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율곡이 금강산을 내려와 퇴계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이 이것이었다. 그는 길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방향이 서야 걸음을 떼놓을 수 있지만, 이 ‘지식’은 내딛는 걸음으로 하여 뚜렷해지고 강화된다. 맹자는 말했다. “스스로 돌이켜보아 부끄러움이 없을 때, 그보다 큰 즐거움은 없다.”
이 즐거움은 다양한 관계와 일에 표출된다. 그 도정의 어느 순간, 이 삶이 궁극적으로 하나의 이(理)를 구현하고 있다는 자각에 이른다. 공자는 그 확신을 이렇게 읊었다. “증삼아, 내 도(道)는 하나로 꿰어 있다.” 이쯤에서 주자학은 불교에 대한 일침도 잊지 않는다. “일상적 구슬들을 하나하나 준비해 축적하지 않고, 실 한 줄만 들고 꿰겠다고 나서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내면의 정신은 밖으로 표출된다
내면의 빛과 힘은 곧 밖으로 표출된다. 그의 몸피는 편안해 보이고, 마음은 여유 있고 관대하다. 『대학』은 말한다. “부(富)는 집을 빛내고 덕(德)은 몸을 빛낸다. 그래서 군자는 반드시 자신의 내적 의지를 가다듬는다.” 맹자 또한 그 효과를 이렇게 찬탄했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내면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이 밖으로 드러남에, 얼굴에는 광채를, 등줄기를 넉넉하게 하며, 나아가 온몸에 퍼진다. 몸은 말을 안 해도 모든 것을 알려준다.”
유학의 프로그램에서 안의 충실을 기하는 것을 악(樂), 밖의 충실을 기하는 범절을 예(禮)라고 부른다. 이 둘은 서로 연동돼 있고 상호 협력한다. 내면의 이상은 화해(和)이고, 외면의 이상은 튜닝(順)이다.

선한 사람은 안팎의 삶에서 모범
이처럼 ‘지식(知識)’은 삶과 더불어 있다. 평면적 지식은 없다. 정보로서의 지식을 어디 쓸 것인가. ‘지식’은 삶을 이해하는 깨달음이자 그 변화를 이끄는 가이드다. 이 용어의 저작권을 갖고 있는 주자학의 기본 의미와 용법이 그러했다.지식’이 어떻게 ‘체화’되고 깊이를 더해가는지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은 보고를 하고 있다.

1) ‘선한 사람(善人)’은 안팎의 삶에서 모범을 보인다. 2) 그러나 아직 멀었다. “혹 그 타고난 자질이 아름답거나, 혹은 그것을 연모하는 마음이 일더라도 아직 진정한 지식과 실천은 아니다. 실제 ‘점유’는 오랜 노력을 통해 비로소 얻어진다. 한 치의 허위도 없어야 비로소 ‘진정 그렇다(信)’는 경지에 이를 것이다.” 3) 이 ‘책임(信)’의 노력이 “더 깊고 단단히 유지될 때” 그는 ‘아름다운 사람(美人)’이 된다. 그의 ‘체화’는 깊이와 충실을 얻는다. “마음의 은미한 곡절, 섬세한 사이에도 맑고 순수함이 흘러 불선의 잡티가 섞이지 않는다.” 4) 이 아름다움은 온몸에 아우라를, 그리하여 사업과 일에 전방위로 발휘된다. 이로써 그는 ‘위대한 사람(大人)’이 된다. 5) 그의 덕업은 성대해지고 인(仁)은 더욱 성숙해진다.

이 자기 성숙은 급기야 타인을 감화시키고, ‘문명(文明)’을 일으키기에 이른다. 여기가 성스러움(聖)의 경지이고, 그 경지는 누구도 엿볼 수 없다는 뜻에서 ‘신비(神)’라고 부른다. ‘위대한 사람’까지는 인위적 노력이 남아 있으나 여기 ‘성스러운 신비(聖神)’의 경지에서는 “아무런 흔적도, 의도적 자의식도 남아 있지 않다.”

“공자는 위엄 있으되 사납지 않으셨다”
거기 자아는 소멸한다. 『논어』는 공자의 삶을 증거하고 있다. 즉 “공자께서는 네 가지가 끊겼다(子絶四). 의지(意)가 끊겼고, 고집(必)이 끊겼으며, 고착(固)이 끊겼고, 그리고 사적 자아(我)가 소멸했다.” 여기가 이르러야 할 곳이다. 이 점에서 유교의 성자는 다른 종교에서의 성자와 닮았다.

다르다면 그는 일상으로는 너무 평범하고, 무엇보다 사회적 공간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삶은 하등 특별한 것이 없다. 율곡은 다음과 같은 공자의 덤덤한 모습을 적어놓았다.
“공자께서는 따뜻하되 엄숙하셨고, 위엄이 있으되 사납지는 않으셨다. 공손한 태도를 지녔으되 너무나 편안하셨다.” 이로써 그는 자연이 예비해 준 “음양(陰陽)의 덕을, 중화(中和)의 기운”을 최적으로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유학은 이처럼 ‘학문’을 통해 자연과 자유에 이르는 도정이다. 율곡은 이 순례의 실제 ‘답사’를 간곡히 종용했다. “사람들이 정명도의 자유(渾然天成)와 주자의 경지(海闊天高)를 찬탄하면서도,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길을 나서고 걸음을 디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울타리를 거쳐 그 깊이에 닿지 못하고, 그가 남긴 언사나 취해 구이(口耳)에 올리는 거리로 삼고 있을 뿐. 길이 목전에 있는데도 종내 ‘훌륭한 학자(善學者)’가 나지 않는 까닭이 여기 있다.”



한형조씨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고전한학과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주희에서 정약용으로』『조선유학의 거장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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