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슴을 긁어대는 중독성 굉음과 완전 연소의 카타르시스

중앙선데이 2011.02.06 01:08 204호 4면 지면보기
레드 제플린 팬이라면 누구나 즐겨듣는 노래 중‘Rock and Roll’(4집 수록)이 있다. 이건 사실 리틀 리처드 히트곡 ‘Good Golly Miss Molly’에서 영감을 얻은 넘버다.숫제 1, 2집 앨범에선 오티스 러시, 머디 워터스 같은 블루스 명인들을 영리하게 따라하기도 했다. 제임스 브라운의 열혈 펑크 (funk)를 흉내낸 ‘The Crunge’(5집 ‘Houses Of The Holy’ 수록곡)까지.이렇듯 레드제플린 음악 마디마디엔 미국 흑인 대가들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다.단순한 하드록 밴드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왼쪽 큰 사진은 지미페이지(기타), 작은 사진 위부터 로버트 플랜트(보컬),존 폴 존스(베이스·키보드), 존 보냄(드럼).
영국 록 밴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1968~80)을 생각하면 섬광처럼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위엄·장엄·장쾌…랄까 고급스러운, 혹은 고집스러운 기품의 강렬함 말이다. 그건 범속한 대중 음악의 외피를 입었으되 여느 팀과는 격이 다른 탈속(脫俗)한 고고함이다. 레드 제플린은 곧잘 섬뜩하게 차가운 중금속성 굉음(헤비 메틀)으로 밀어붙인다(그렇다고 귀청을 마구 찢기만 하는 지저분한 광기는 물론 아니다). 단단하게 뭉쳐진 그 소리덩이는 이내 버얼건 쇳물이 된다. 그러니 이들은 ‘얼음의 도가니’다. 적도의 태양보다 뜨거우니까 레드 제플린이다.

박진열 기자의 음악과음락사이: 레드 제플린 - 6집 더블 앨범 ‘Physical Graffiti’(1975년)

레드 제플린은 블루스가 잔뜩 배어든 하드 록을 들고 출발했다(불을 뿜고 추락하는 제플린 비행선이 있다. 왠지 불온한 느낌의 비주얼이다. 1969년 데뷔 앨범 ‘Led Zeppelin’ 재킷이 이렇다. 시작부터 뭔가 남다르지 않은가). 한데 엄밀히 말해 레드 제플린은 야드버즈(Yardbirds)의 마지막 기타맨, 지미 페이지(Jimmy Page·67)가 신장개업한 팀이다. 밴드 크림(Cream)보다 좀 더 묵직한 사운드를 주 메뉴로 말이다. 이후 이들은 쉼 없이 진화했다. 길다면 긴 세월 12년을 제플린 비행선은 4인의 승선 멤버 교체 없이(!) 높이 멀리 날았다.

사실 이 팀처럼 거의 모든 록 음악의 양식미를 아울렀던 밴드, 참 귀하다. 음식으로 치면 이들이 들려주는 블루스와 사이키델릭 포크(folk)는 나한텐 밥과 국쯤 되려나. 여기에 컨트리·로커빌리·펑크(funk) 등등 솜씨 좋은 숙수(熟手)의 갖가지 별미가 올라온다. 그것도 모자라 레게(5집 수록곡 ‘D’Yer Mak’er’), 삼바(9집에 실린 ‘Fool In The Rain’), 심지어 인도나 중동풍(6집에 담긴 ‘Kashmir’) 신비주의 내음까지. 물리지 않는 그 밥상, 물리칠 재간이 없다. 나는 그랬다.

중독성 굉음과 완전연소의 카타르시스, 그 원동력은 깊고도 넓은 레드 제플린의 음악 뿌리에서 비롯됐으리라. 먼저 지미 페이지와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베이스, 키보드·65)가 세션맨 시절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몸으로 다진 내공 덕이지 싶다. 아닌 게 아니라 지미 페이지는 영국 포크록의 큰 봉우리인 페어포트 컨벤션(Fairport Convention), 펜탱글(Pentangle·특히 리더인 버트 잰시)을 두고두고 오마주했다.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보컬, 하모니카·63)의 경우엔 젊은 날의 닐 영이 머물던 버팔로 스프링필드(Buffalo Springfield) 같은 미국 웨스트코스트 록 밴드 쪽을 꽤나 좋아했다(나랑 취향이 통한다는 건 레드 제플린을 좋아하는 스무 번째 이유쯤 되리라).

그런데 레드 제플린 음반에 마음이 송두리째 몰입하기 어려울 때가 아주 가끔 있다. 웬 조화일까. 그건 아마도 레드 제플린 음악에는 나약함, 주저함이랄까 구멍 숭숭 뚫리고 느슨한, 인간적 매력이 덜해서이지 싶다. 허투루 하는 연주를 좀체 찾기 어려워서다. 굳이 비유하면 이렇겠다. 60년대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 음악에 귀 기울이다 보면 온몸으로 뭔가 와락 달려드는 짜릿한 순간이 있다. 그건 바로 무질서하고도 어눌한 그 무엇의 마력이다. 마치 여기저기 휴지가 나뒹구는 자유분방한 집에서 되레 편안함을 느끼는 기분 같은 거다(잘 정돈된 공간이란 게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할 때가 왕왕 있잖은가). 레드 제플린이라면 덜 다듬어진 듯한 투박함과는 거리가 조금 멀다. 관능적 세련미 쪽이라면 또 모를까(이 대목에서 블루스 필 가득한 원시성, 그 질감이 가칠가칠한 초기 명반들은 예외로 하자).

어쨌거나 레드 제플린이 쌓아 올린 아홉 개의 정규 앨범 금자탑마다엔 아홉 가지, 아니 구천 가지도 넘는 에스프리가 깃들어 있다. 이름난 엔간한 록 그룹과도 그 레벨이 다른 느낌이다. 동시대에 바로크풍 사이키델릭 록으로 시작해 본격 하드 록으로 일가를 이룬 딥 퍼플(Deep Purple)도 레드 제플린 수준의 리듬감, 임팩트엔 못 미쳤지 싶다. 세계 최강의 중저음 기타 리프(반복 악절)로 열혈 신도를 거느리던 블랙 새버스(Black Sabbath) 역시 2% 역부족이었지, 나는 생각한다.

레드 제플린 초기 명반들 못잖게 자주 꺼내 듣는 음반이 있다. 두 장짜리 6집 ‘Physical Graffiti’(75년)다(기승전결의 명연 ‘Stairway To Heaven’이 들어 있는 4집 앨범을 최고봉으로 치는 팬이라면 이 앨범에 다소 불평할지도 모르겠다). 6집 음반이 늘 삼삼한 이유 중 하나는 다채로움이 뿜어내는 에너지다. 비틀스 ‘화이트 앨범’(68년)의 경이로운 성취와 견주고 싶을 정도다. 레드 제플린 앨범 중 가장 ‘프로그레시브’하니까.

게다가 바로 그 가공할 펀치력이다. 11분짜리 묵직한 블루스 록 넘버 ‘In My Time Of Dying’이 특히 그렇다. 면도날보다 예리한 로버트 플랜트의 샤우팅 목청이 1, 2집 앨범보다 약간 무뎌진 감은 있다. 암만 그래도 카랑카랑 쩌렁쩌렁 ‘고옥탄가’로 내뿜는 호소력, 섹슈얼한 야성미가 어디 가나. 가슴 저 밑바닥을 은근 긁어대는 지미 페이지의 슬라이드 기타는 또 어떻고.무엇보다 존 보냄(John Bonham·1948~80)이 난타하는 파워 드러밍, 거의 ‘작살’이다. 예의 그 천둥소리다. 셔플 비트에도 능란했던 존 보냄은 늘 예측불허의 박자로 드럼을 두들겼다. 레드 제플린의 리듬이 ‘록 비트의 알파와 오메가’라 불리는 이유다. 슬로 템포 곡조차 정박이 아닌 엇박으로 시작한다. 이 팀 연주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 존 폴 존스는 약동하는 베이스 라인으로, 때론 일렁이는 멜로트론 선율로 묵묵히 빛난다.

얄미우리만치 예쁜 앙상블이 영롱하게 울리는 컨트리풍 트랙 ‘Down By The Seaside’도 근사하고-. 하긴 이들 어느 노래인들 안 그럴까. 세월의 더께가 쌓인 무수한 록 밴드 중 화석이 되지 않은 진행형의 그 기품이라니. 아찔한 사운드의 늪으로 유혹하곤 하는 필생의 연인, 그 이름은 레드 제플린이다.




정규 음반을 왜 앨범이라고 할까. LP판을 왜 레코드라고 할까. 추억의 ‘사진첩’이고,‘기록’이기에 그런 거라 박진열 편집 기자는 생각한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