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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싸게 시위 막으려다 값비싼 대가 치러”

중앙일보 2011.01.26 01:52 종합 4면 지면보기
지난 23일 집단 이탈했던 강원경찰청 307 전경대 소속 전경 6명이 구타 및 가혹행위의 실상을 주장하면서 경찰조직에 비상이 걸렸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가해자 엄중 처벌’ 방침을 밝힌 상황에서도 전·의경 부대 내 구타·가혹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 이날 오전 9시엔 인천 중부서 소속 심모(20) 의경이 목을 매고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가혹행위 여부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지난해 8월엔 이 부대 구모(21) 의경이 선임 2명으로부터 구타를 당했으나, 이 사실을 적발한 지휘부는 외출·외박 금지 등의 조치만 내렸다.


인천 ‘구타 부대’ 의경 자살 … 전·의경 가혹행위 왜 반복되나

일반 군부대의 경우 사라져가는 추세인 구타·가혹행위가 왜 전·의경 부대에서는 계속 문제가 되는 것일까. 전·의경 근무를 마치고 제대한 12명에게 그 원인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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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경기도에서 전경으로 근무한 심현규(26)씨는 “전경의 경우 거의 매일 시위 진압에 나서는 특수 임무를 맡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강 해이가 실제 시위 상황에서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에 따라 엄격한 규율이 존재하게 됐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방범순찰대원으로 있었던 이영택(26)씨는 “쇠파이프나 죽창 등으로 덤비는 폭력적인 시위대와 맞서는 상황에서 긴장하지 않으면 병신이 될 수 있다. 지휘관들도 긴장감을 유지하고 정신을 번쩍 차리라는 의미에서 데모 현장에 나갔을 땐 구타를 눈감아 준다”고 말했다.









조현오



 군부대와 달리 전·의경들이 사회와 접해 있어 오히려 기강을 과도하게 잡는다는 의견도 있다. 2006년 경기도 모 부대에서 의경으로 제대한 김요셉(27)씨는 “방범순찰대의 경우 바깥 활동이 비교적 편한데 내무반 생활까지 쉬우면 기강이 무너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2007년까지 행정직으로 근무했던 전광수(27)씨는 “고참 중 한 명이 자기 전에 후임들을 옆으로 불러 성행위 흉내를 내는 경우를 종종 목격했다”고 털어놨다.



 전·의경 구타, 가혹행위 문제가 계속 불거지자 경찰청은 “내부 고발제를 적극 장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역시 현실은 쉽지 않다. 현재 구타행위를 신고할 경우 다른 부대로 전출이 가능하지만, “(가혹행위 등을) 찔러서 온 애”라는 소문이 나 왕따가 되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전·의경 관리에 소극적인 직원들도 문제로 지적된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부끄럽지만 전·의경 관리를 맡은 다수 경찰 직원이 승진 시험에만 매달려 군대만큼 부대 관리에 신경을 안 쓴다”고 말했다.



 ◆"전·의경 제도 근원적 재검토 필요”=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근무는 시민들과 같이 하면서, 매일 집회 시위를 막으려면 그 긴장감의 강도는 군인과 다를 것이다. 이를 위해 강한 군기가 요구되고, 결국 부작용을 낳게 된다”고 말했다. 전·의경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황의갑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전·의경 제도는 1970년대에 일반 경찰관이 진압하기에 부담을 느낄 만큼 시위가 많자, 이를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해 상대적으로 값싼 젊은이들을 제도적으로 충원한 것”이라며 “ 민주화된 지금 시점에선 경찰관이 집회 시위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값싸게 관리를 하려다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이 황 교수의 지적이다. 한편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전·의경 부대에서 일어나는 구타와 가혹행위의 원인을 세밀하게 파악해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해달라”고 경찰에 지시했다.



 송지혜·이한길 기자 enjoy@joongang.co.kr



◆트라우마(trauma)=심리학에서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 즉 정신적 외상을 뜻한다. 큰 사고나 사건을 당한 사람이 외상이나 정신적 충격 때문에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됐을 때 불안해지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1월 26일자 4면 ‘값싸게 시위 막으려다 값비싼 대가 치러’ 제하의 기사 중 의경 출신 김준현씨는 자발적으로 인터뷰를 한 것이 아니라 취재기자와의 개인적인 인연으로 질문에 답한 것임을 밝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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