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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태광 넉 달 반 수사 … 남기춘 의욕 앞섰다

중앙일보 2011.01.26 01:45 종합 5면 지면보기
‘오기인가, 의욕인가’. 서울서부지검이 한화그룹 전·현직 임직원 5명에 대해 청구한 사전구속영장이 24일 또다시 기각되면서 검찰의 수사방식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영장 11건 중 10건 기각 … 조사 방식 논란 불거져

한화그룹 수사과정에서 청구된 구속영장 8건이 모두 기각됨에 따라 수사를 이끌 동력도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서부지검에서 진행 중인 태광그룹 수사도 이호진 회장만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되고 전·현직 임원 2명에 대한 영장은 기각됐다. 법원의 잇따른 영장 기각으로 수사가 교착 상태에 빠진 분위기다. 원인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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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은 넉 달 반 동안 한화그룹 수사를 해 왔다. 태광그룹 수사는 석 달 반이 됐다. 김승연 한화 회장과 이호진 태광 회장은 각각 세 차례씩 소환조사를 받았다. 두 그룹을 상대로 한 압수수색도 총 20여 차례 실시됐다. 한화의 경우 수사과정에서 300여 명에 달하는 임직원이 검찰청에 나와 조사를 받았다. 수사에 1차 경고음이 울린 것은 지난해 12월 한화그룹 전 최고재무책임자(CFO) 홍동옥(62)씨에 대한 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면서였다. 그러나 검찰은 20일 홍씨에 대한 영장을 재청구하고 다른 전·현직 임원 4명에 대해서도 영장을 청구해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나 법원은 또 영장을 기각했다. 영장기각 사유에 대해 법원은 “추가된 범죄 사실 및 소명자료를 봐도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커 보인다”며 사실상 수사가 부실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준규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 주요 원인으로는 검찰의 ‘의욕과잉’이 꼽힌다. 한화 사건의 경우 당초 총수 일가의 비자금 의혹을 수사하다가 여의치 않자 기업 수사의 단골메뉴인 횡령과 배임 쪽으로 수사 방향을 틀었다. 차명계좌 5개에서 출발해 계열사 간 자금 거래 문제, 한화S&C 주식 거래 문제 등으로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된 것이다. 태광 수사 역시 차명주식과 차명계좌에서 시작해 채널 배정 대가로 다른 그룹에서 유상증자를 받은 사안 등으로까지 수사가 확대됐다.



 검찰 안팎에서는 남기춘 서부지검장의 수사 스타일이 이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남 지검장은 피의자가 자백을 하지 않으면 계속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란 평을 들어왔다. “검사로서 강단이 있다”는 평가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지적이 엇갈린다. 그는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때 중수부 과장으로 일정 부분 성과를 올렸고, 2006년 서산지청장으로 있을 땐 당시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 문석호 의원을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했다. 문제는 수사 강도를 계속 높이다 보면 ‘오기(傲氣) 수사’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핵심 혐의가 아닌 곁가지 의혹까지 저인망식으로 훑게 돼 ‘별건 수사’란 비판을 받게 된다.



 ◆김준규 총장의 ‘환부 도려내기’ 수사는=김준규 검찰 총장은 취임 후 “최단시간 안에 환부만 도려내 기업을 살리는 수사를 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러나 일선 수사에선 이 원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검찰 조직의 리더십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대검의 한 간부는 “적진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은 지휘관이 가는 길에 적의 중대·소대를 다 토벌하고 가는 게 옳은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봉욱 서부지검 차장검사는 26일 브리핑에서 수사 장기화로 기업 경영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고통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가영·정선언 기자



◆별건수사=특정 혐의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수집된 증거나 정황 등을 이용해 피의자의 또 다른 혐의를 수사하는 것. 본래 혐의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피의자를 압박하거나 이른바 ‘먼지 떨기식’ 수사에 악용될 수 있어 그 정당성에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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