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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시론 ③] 국사 쓸 수 있는 국가 지도자 갈망한다

중앙일보 2011.01.26 01:06 종합 33면 지면보기






김진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위원회 위원장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동서양이 융합하는 평화의 중심 국가가 되는 날, 그런 날을 맞으려면 통찰력 있는 한국사 한 권쯤 쓰는 지도자들이 나와야 한다. 인도 출신으로 옥스퍼드대 교수 시절 복지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현 하버드대)의 저서를 읽다 보면 그가 인도경제사에 아주 통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굴제국, 영국 식민지배 그리고 민주국가로 독립한 이후까지 500년 가까운 기간을 대상으로 식량 기근 발생이 통치 내용에 따라 국민의 후생에 어떤 차이로 나타났는지를 소상하게 분석하고 있다. 내가 센에게서 부러워하는 것은 정치 민주화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탁월한 연구실적뿐 아니라 모국의 빈곤 해결을 위한 열정이 인도경제사 연구에까지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경제학자·사회과학자들은 주로 현대학문 방법에 의한 연구, 특히 정책 연구는 통계작업이 쉬운 1960년대 이후로 한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만 해도 1인당 소득산정의 시계열(時系列)을 메이지시대 이전으로 올려놓는 작업을 완료한 지 40년이 넘었다. 한국 주류 학계의 국사 무관심, 역사 경시의 기계론적 접근은 끝내 몇 가지 심각한 반작용과 역류를 일으켰다. 첫째 1970년대 이후 극단의 국수주의, 둘째 급진적 민중 민족주의가 배출한 기형아, 즉 본격적 민족주의와 휴머니즘이라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북한 세습독재 찬양의 현대사 왜곡, 셋째 통계적 산출에만 의존하는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 등이 그러하다.



 대한민국에 불행한 일은 아직도 정사(正史)라 할 만한 현대사의 정리가 깔끔하게 돼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교육부 산하 국사편찬위원회가 1988년에 간행한 ‘대한민국사(大韓民國史)’가 있으나 당초부터 여러 가지 제약으로 그 후 정사로 인용되는 경우가 드물다. 역사학과 사회과학계가 해방 후 근대화 격변, 심지어 초근대 현상까지 보이는 한국의 변화를 이조 전기까지는 못 올라가도 적어도 18세기 이후 21세기까지 일관되게 연면하여 시간과 공간과 주체의 연관관계를 정리하는 종합적 노력을 해주기 간절히 바란다.



 대한민국은 극단의 고통을 극복하고 극단의 성공을 이룬 현대 인류 세계사의 기념비적 자산이다. 1945년 이후 독립한 140개 가까운 제3세계 국가 중 근대화를 완벽하게 성취한 유일한 국가다. 정치 민주화, 시민의 자유, 언론 자유, 근대경제성장, 기업의 국제화, 1인당 소득, 교육과 과학기술의 선진화, 문화예술의 개방, 사회의 다원성, 보통사람들의 해외 진출,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4대 강국에서 활동하는 교포 등 제3세계 개발도상국들과는 비교의 대상이 없다. 시민자유, 과학기술, 기업, 예술의 일부는 선진국을 앞서고 있다. 가히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이라 할 만하다.



 물론 이런 ‘극단’과 ‘압축’과 ‘폭발’의 양극성과 속도로 인해 여러 함몰도 있고 그것은 21세기 인류문명의 패러다임 변혁과 더불어 새로 도전해야 할 국가적 과업이다. 그러나 특정 인물이나 정권적 안목을 넘어 대한민국 60여 년을 계속성·일관성·통합성의 차원에서 보면 대한민국 성공의 역사적·세계적 좌표가 정리된다. 바로 근대화에 가장 성공한 대한민국의 경험을 숙성, 혁신하면 특히 중국을 포함한 인류의 세기적 고민인 지속성장 가능성의 해답도 우리가 낼 수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사를 써야 하는 사명이기도 하다.



 인도의 건국 총리 자와할랄 네루가 어린 딸의 역사교육을 위하여 쓴 옥중서한 역사서(『Glimpses of World History』)는 인도역사와 세계사를 함께 녹여 ‘역사의 교훈’을 남겨주었다. 그는 노예제가 필요하다 했던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의 말을 들려주며 옛 인물을 평가할 때 오늘이 아니라 그가 활동했던 그때의 생각, 조건, 환경에서 이해하라고 충고했다. “과거를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또한 현재를 과거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통찰이다. 그런 통찰을 체화한 지도자들, 나름으로 한국사를 쓸 수 있는 지도자들이 나올 때 우리 안의 역사 이념갈등이 용해되고 대한민국은 근대화 혁명을 넘어 21세기 지구촌 시대 리더로 성공할 수 있다.



김진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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