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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시시각각] 사회민주주의 괜찮은가

중앙일보 2011.01.26 01:05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철학자 랠프 다렌도르프(1929~2009)는 20세기가 ‘사회민주주의의 세기’였다고 주장했다. 다렌도르프는 뛰어난 학술 업적을 인정받아 영국 왕실이 준 작위까지 받은 대(大)학자다. 사회민주주의는 민주적·평화적·점진적 방법으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거나, 적어도 자본주의를 개혁하자는 중도좌파 이념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복지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복지는 정책 문제이자 이념 문제다. 복지를 이념 차원에서 논의할 때 중심에 놓아야 할 이념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다. 지난 세기에 복지국가 추구에 앞장선 것은 사회민주주의다. 복지와 사회민주주의 사이에는 친연성(親緣性)이 있다.



 우리가 복지 문제에 사회민주주의라는 이념을 대입하기를 꺼리는 이유가 몇 개 있다. 우선 사회주의에 대한 혐오가 큰 원인이다. 그러나 21세기 사회민주주의에서 마르크스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오늘의 기독교민주당이 기독교와 거의 무관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민주당 또한 사회주의와 거리가 있다.



 사회민주주의가 쇠퇴하고 있다는 ‘신화’도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무관심을 유발한다. 그러나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지율 하락이 우파-좌파 사이의 선거·집권 주기 때문인지, 사회민주주의의 몰락을 의미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게다가 어느 정당이 집권하건 사회민주주의적인 틀이 유지되고 있다. 우파 정당이 집권해도 사회민주주의적인 법과 제도를 섣불리 바꿀 수 없다.



 대표적 사회민주주의 국가인 스웨덴에서 사회민주당은 2006년, 2010년 선거에서 연거푸 프레드리크 레인펠트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에 졌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의 사망 선고를 내리기에는 눈에 띄게 달라진 게 없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상징되는 복지국가의 기능은 바뀌지 않았다. 스웨덴 유권자들이 중도우파의 손을 들어 준 것은 복지 체제를 유지하되 사회민주당보다 더 잘하겠다는 약속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사회민주주의의 파고가 심상치 않다. 상당수 학자들이 미국에서도 사회민주주의적 요소가 진작 정착했다고 주장한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미국의 자유주의가 용어만 다를 뿐 내용은 겹친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은 미국에 이미 있었던 사회민주주의 성향을 가속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사회주의의 종착점도 사회민주주의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공산당이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게 된다면 이는 흥미로운 사례가 될 것이다. 전후 세계에서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사회민주주의는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이미 사회민주주의로 가는 길에 접어들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주장할 근거는 무엇인가. 국가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미국보다는 유럽에 가깝다. 국민 정서가 사회민주주의 도입에 적합한 것이다. 여야는 정부의 크기와는 별도로 모두 강하고 생산적인 정부를 지향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복지 정책 실현의 범위와 속도는 다르지만 여야 모두 복지를 내세우고 있다. 여야가 복지를 놓고 경쟁하면 그 결과는 사회민주주의가 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사회민주주의의 길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미국 모델이나 유럽 모델이나 모두 성공한 모델이다. 둘 다 장점·단점이 있다. 사회민주주의의 실패 사례로 사회민주주의 자체를 깎아내리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하지만 우리가 가게 될지 모르는 사회민주주의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는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사회민주주의 체제는 높은 세율과 강력한 노조가 특징이다. 또한 사회민주주의는 경제적 역동성과 창의성을 저해하는 대신 사회 통합과 경제적 평등은 증진시킨다는 주장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편견이 아니라 냉정하고 객관적인 검토다.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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