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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 기자의 스타일 발전소(끝) 남끝동, 아들 낳은 아낙의 표식이었다네요

중앙일보 2011.01.26 00:22 경제 18면 지면보기



진주 생각
‘옷 입기는 반(半)바느질’이라죠, 하지만 잘 입는 것도 중요해요.
우리 옷, 1년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입어 보세요.



‘남끝동 자주고름’을 한 윤영. 아들을 낳은 뒤 마침내 안주인으로 인정받았다.



지난해 겨울, 외국인이 많이 모인 어느 파티장. 화려한 서양식 드레스 사이로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색색의 모란이 수놓인 치마허리, 종처럼 풍성하고 둥그스름한 청록색 치마. 그것은 한복이었다. 한데 뭔가 허전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저고리가 없었다. 풍만한 가슴골을 드러낸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여인을 보며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홧홧해졌다. 누가 소개라도 시켜줄까 봐 슬그머니 고개를 돌릴 정도였으니. 그날의 ‘저고리 실종사건’은 내게 꽤 깊은 ‘내상’을 남겼다.



‘분홍색 회장저고리 / 남끝동 자주고름 / 긴 치맛자락을 살며시 치켜들고 / 치마 밑으로 하얀 / 외씨버선이 고와라(신석초, ‘고풍(古風)’)’,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 자주빛 호장을 받친 호장저고리 /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조지훈, ‘고풍의상’)’. 시인들이 입을 모아 노래하던 전통의상의 아름다움은 어디로 간 걸까. ‘한복을 알리려면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의무감마저 들었다.









세개 달린 삼작노리개.(왼쪽)비취장식이 달렸다. 매듭 하나짜리 단작노리개. 진주로 장식했다.



설날을 일주일 앞둔 오늘, 스타일발전소의 마지막 순서로 ‘조선 중기 양반가’의 두 자매를 불러내 그들의 ‘가상 이야기’를 통해 한복 제대로 입는 법을 알아봤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G20 (주요 20개국) 정상회담’에서 각국 퍼스트레이디들에게 우리 멋을 알린 ‘전통한복 김영석’이 함께했다.



글=이진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모델=양윤영·최준영(에스팀) 의상·소품=전통한복 김영석(호텔신라 아케이드) (02)2234-0153 헤어·메이크업=‘바이라 뷰티살롱’ 민상 대표원장·혜경 부원장



(02)511-3373 장소=삼청각 (02)765-3700 www.samcheonggak.or.kr



시집간 언니, 다니러 오시네



#준영 준영은 설렌다. 설빔 때문만은 아니다. 시집간 언니 윤영이 이태 만에 아들을 낳고, 마침내 친정에 다녀오란 허락을 받았다는 전갈이다. 근심하며 기다린 외손자 소식에 아버지도 모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아버지는 명나라에 수차례 사신으로 다녀오셨던 분, 주상 전하의 신임을 받는 거유(巨儒)시다. 예 있을 땐 뉘라서 언니를 함부로 대했으랴. 하나 여자는 아버지의 딸에서 어느 어르신의 며느리가 되는 순간, 운명이 바뀐다. 명에서 구해 오신 사라능단(紗羅綾緞:얇은 사, 두꺼운 단 등 온갖 종류의 비단)으로 언니에게 삼회장(三回裝: 깃과 고름·곁막이(겨드랑이)·끝동(소매)의 세부분을 저고리 바탕색과 다른 색으로 댄 것) 저고리를 지어 드려야지. 아이 낳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조카는 얼마나 예쁠까. 바늘이 손에 안 잡혀 공연히 뜰 안을 서성거린다.



#윤영 ‘녹의홍상(綠衣紅裳: 초록저고리 다홍치마)’ 입고 시집가 꿈같은 이태가 흘렀다. 꿈속의 장면들이 즐겁기만 하였으랴. 꿈 밖의 이들에겐 차마 말하지 않으련다. 지아비에게 안길 때도 눈물이 났다. 그리운 친정, 보고 싶은 아버님. 가문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으려 인내하고 또 인내했던 날들. 비로소 ‘남끝동 자주고름’ 두르니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난다. 이작은 남색 천 조각이 아들 낳은 에미의 표징이라지. 이게 무에라고 아들 못 낳은 어머니는 그토록 죄스러워하다 떠나셨나. 당신께서 끝내 누려보지 못한 호사를 딸이 받잡아 누리고 있다. 어머니 살아 계셨으면 그 작은 어깨를 비로소 펴고 다니셨으리. 철없는 강아지 같은 우리 준영인 아가씨가 다 됐겠지. 마침내 만나는 날, 손 잡고 오래오래 이야기 나누리라.









1 새색시 윤영은 ‘녹의홍상’을 입었다. 신혼의 단꿈에 젖었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친정 생각에 가슴이 아린다. 2 철없는 막내딸 준영. 시집간 언니가 온다는 소식에 가슴이 뛴다. 색동저고리는 미혼여성의 상징. 3 혼담이 오간다는 소식에 준영은 두렵다. 노랑저고리는 색동과 마찬가지로 아가씨의 옷이었다.







조선 여인의 길



#준영 색동저고리로 할까, 노랑저고리로 할까. 공연히 이옷 저 옷 입어보며 경대를 들여다본다. 심란할 때 마당을 거니는 건 아버지의 오랜 습벽. 눈밭을 밟으며 당신의 맘을 헤아려본다. 김정승 댁에서 혼담이 들어왔다지. 대장부로 태어났으면 호방한 기개 펼쳐볼 수 있으련만, 내 앞에는 여인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자매, 사임당 신씨처럼 친정에 머물며 오순도순 아들딸 길러내면 좋으련만.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듯 풍습도 바뀌어, 혼례 치른 딸자식이 친정에 머무르는 일은 흠이 되고 말았다. 내 아버지의 딸이 아니었다면, 황진이처럼 모든 걸 훌훌 털어내고 예술가가 될 수도 있었으리. 하나 ‘착수(窄袖: 기생들이 입었던 소매가 좁은 저고리)’는 나의 옷이 아니다.



#윤영 아들을 낳은 뒤 나의 지위는 달라졌다. 한때는 헛헛한 마음에 금은보화로 만든 단작(매듭 하나)·삼작(매듭 세개) 노리개·비녀·가락지 따위에 탐닉한 적도 있었다. 이제 나는 이 집안의 당당한 안주인. 사치하지 않고 규모 있는 살림을 꾸려가리라. 준영이 곧 혼사를 치를 모양이다. 시(詩)·서(書)·화(畵)에 재능 있는 그 아이도 피할 수 없는 여인의 길을 걸어야만 하리라. 하지만 앞으로 나의 며느리가 들어오고, 준영이 딸을 낳는다면, 그들은 조금 다른 길을 걸었으면 한다. 아들 낳지 않은 여인도, 결혼하지 않은 여인도 제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날이 오면, 지하에 계신 어머니도, 곧 따라갈 나도 어깨춤 추며 노래 부르리라. 다만, 여인들이여. 어느 때고 기품만은 잃지 말기를.





한복은 색으로 말한다

아가씨는 홍색, 유부녀는 남색 치마










조선중기까지 유행했던 길이가 긴저고리. 털을 넣어 지어 따뜻하고, 요즘 보아도 세련됐다.(왼쪽) ‘아가씨색’인 노랑을 치마에도 넣어 현대적으로 배색했다.



한복도 생물이다. 저고리 길이, 소매통, 치마폭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해왔다. 조선 초기 70~80㎝였던 저고리 길이는 말기엔 13~14㎝까지 짧아졌다. 가슴이 드러날 지경이 되자 수를 놓아 강조한 치마허리로 감췄다. 오늘날과 같은 25~26㎝ 정도로 정착된 건 1930년대였다. 소매통이 좁아 팔에 딱 붙는 ‘착수’는 기생의 상징이었다. 치마는 큰 변화 없이 풍만한 종 모양이었다. 개량 한복은 저고리에서 고름을 떼어내고 똑딱단추를 달았다. 어린이용 한복에는 서양식 리본을 달기도 한다. 한때 치마를 변형해 야회복으로 소개한 디자인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치마·저고리’라는 기본형에서 너무 나간 것이란 지적이 있다.



 한복 입는 법도 중 가장 엄격한 건 배색이었다. 예전 양반가의 여인은 출가하기 전에는 홍색 치마, 출가한 뒤에는 남색 치마, 나이가 들면 옥색 치마를 입었다. 남편이 있는 여인은 평소엔 옥색을 입더라도 집안의 큰 행사를 치를 때는 남색 치마를 입었다. 저고리는 채도가 낮은 송화색(송홧가루색)과 녹두색, 연옥색(흰색에 가까운 옥색)이 기본이었다. 자색은 회장과 치마에 사용했다. 김영석 한복 디자이너는 “연예인 중엔 기생처럼 파격적인 색이나 디자인을 원하는 이도 더러 있지만, 점잖은 집안에선 지금도 여전히 전통 배색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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