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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이 남자 한마디에 수입 음반 1000세트 동났다

중앙일보 2011.01.26 00:19 종합 27면 지면보기



KBS1 FM 클래식 방송 ‘명연주 명음반’ DJ 정만섭
“남들이 다 좋다면 맘에 안들어…무조건 내가 좋아야 좋은 거죠”



정만섭씨는 2002년 이후 대본 없이 클래식 방송을 진행했다. “대본을 읽으면 오히려 솔직하게 전달할 수가 없다”고 했다. 덕분에 음반을 소개하는 그의 말투는 건조하고 확실하다. [김형수 기자]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4번 들으셨습니다. 브람스의 피아노 5중주 작품번호 34, 듣겠습니다.”



 음악과 음악 사이, 말은 짧다. 음악칼럼니스트 정만섭씨의 방송 스타일이다. 그는 요즘 KBS1 FM(93.1Mhz)에서 ‘명연주 명음반’(오후 2~4시)을 진행하고 있다.



 그의 설명은 클래식 방송 특유의 친절함과 거리가 멀다. 까칠하다. 들으려면 들으라는 식이다. “이 음악은 좋은 녹음이 여럿 있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연주로 틀겠습니다.” “수입은 많이 되지 않은 음반이지만 홈페이지에 제목과 사진을 올려놨습니다. 구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무뚝뚝한 말투, 군더더기 없는 설명은 ‘악플’(악성 댓글)을 부르게 마련이다. 인터넷에는 “음반을 구해볼 테면 구해보라는 뜻이냐” “기존에 명반이라 칭송 받는 음반을 일부러 외면하는 ‘음반 빗겨가기’로 프로그램 이름을 바꾸라”는 식의 항의와 빈정거림이 꽤 된다.



 하지만 음반 업계에서 ‘정만섭’ 이름 석 자는 ‘히트상품’의 유사어다. 내내 ‘냉탕’이던 방송이 돌연 ‘온탕’이 되는 순간 덕분이다. 진행자의 애정을 독차지 하는 음악·음반이 소개될 때다.



 “지휘자 르네 라이보비츠의 음원이 빛을 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여기에는 감정의 흘림이나 지휘자의 자의적인 해석이 없습니다. 하지만 휙 하고 지나가는 듯 뜨거운 열기가 오히려 느껴집니다. 특히 4악장 도입부에서 깜짝 놀라실 겁니다. 새해를 맞아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9번 전 악장을 라이보비츠의 지휘로 들어보시겠습니다.”



 음반시장은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라이보비츠의 베토벤 9개 교향곡 전곡 음반은 국내에 수입됐던 1000세트가 모두 팔렸다. 이 방송에서 일주일 동안 아홉 곡을 집중 감상한 직후였다. 감식안이 까다로운 클래식 시장에서 전례가 없던 일이다.



 그가 음반을 고르는 기준은 뭘까. 그는 “제 취향인데, 최대한 객관화시킨 제 취향이에요”라고 간명하게 대답했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건 왠지 마음에 안 드는 기질”, 즉 ‘삐딱선’ 취향이 다분히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바흐의 파르티타는 요한나 마르치, 샤콘느는 야샤 하이페츠, 이런 식으로 모두가 동의하는 ‘명반 가이드’들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무조건 내가 좋아야 한다는 기준을 세웠죠.”



 물론 ‘내공’도 단단한 편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들었고, 음반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음악과 함께 살았다. 틈만 나면 음반 매장에 나가는 것을 기본으로,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샅샅이 뒤진다. 한국에 수입되지 않는 음반을 구하려 비행기도 탄다. 발로 찾아가 귀로 듣고 나서야 음반을 소개한다. 그는 ‘주관에 믿음을 가지고 손에 달라붙는 음반을 소개한다’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



 ‘마누엘 블라스코 데 네브라’는 외우기도 힘든 이름이지만, 정씨에게는 ‘감’이 온 작곡가였다. 모차르트와 동시대에 스페인에서 활동했던 작곡가다. 정씨는 지난해 3월부터 네브라의 건반 소나타 음반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방송 후 수 백장이 팔렸다. 이 앨범을 수입한 미디어 신나라의 김세란 실장은 “음반 애호가에게도 인지도가 낮은 작곡가였는데, 방송에 나간 직후 판매량이 급증했다. 간혹 왜 많이 팔리는지 몰랐는데 알고 보면 정씨가 방송에서 소개했기 때문인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서점인 알라딘에서는 정씨의 ‘명연주 명음반’ 코너를 따로 마련하기도 했다.



 정씨는 전통적 명반 계보에서 빠져있는 부분을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970년대 즈음의 음반들, 즉 LP에서 CD 시대로 넘어오는 와중의 ‘낀 명반’이 많아요.” 자신의 집에 있는 오래된 LP를 CD로 바꿔 방송에서 틀고, 수입업자가 샘플로 받아놓은 것을 발매도 되기 전에 소개하는 이유다. 최근 그의 프로그램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그는 계속해서 까칠한 방송, 즉 ‘내가 좋아야 좋다’는 태도를 유지할 작정이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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