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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 소학동자를 자처한 김굉필

중앙일보 2011.01.25 19:54 종합 33면 지면보기


김굉필을 모신 도동서원(道東書院)의 모습 : 소학 공부를 몹시 중시했던 김굉필은 위정자의 덕목으로서 수기(修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갑자사화 때 희생됐던 그를 모신 도동서원은 대원군의 철폐령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사진=문화재청 홈페이지]

‘글을 읽었어도 아직 천기를 알지 못했는데/ 소학 책 속에서 어제의 잘못을 깨달았도다/ 이제부턴 마음을 바쳐 자식의 직분을 다하려 하니/ 구차스러운 부귀를 어찌 부러워하리오’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이 남긴 ‘소학을 읽고[讀小學]’라는 제목의 시다. 하늘의 이치를 깨우치려는 거창한 공부에 매달리기에 앞서 당장 어제 저지른 잘못을 깨닫고 부모에게 제대로 효도할 수 있는 일상의 공부에 매진하겠다는 다짐이 확고하다.

 김종직(金宗直)의 제자이자 조광조(趙光祖)의 스승이었고, 조선을 대표하는 오현(五賢)의 한 사람으로서 문묘(文廟)에도 모셔진 김굉필의 소학 사랑은 각별했다. 그는 말년까지 ‘소학동자’(小學童子)로 자처하면서 사람들이 시사(時事)에 대해 의견을 물으면 ‘나는 소학동자니 어찌 대의를 알겠는가?’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소학은 주희(朱熹)의 친구 유자징(劉子澄)이 지은 책이다. 여덟 살부터 열네 살까지의 아동들을 가르치기 위한 도덕 교과서인데 크게 내편(內編)과 외편(外編)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편에는 입교(立敎)·명륜(明倫)·경신(敬身)·계고(稽古) 등이, 외편에는 가언(嘉言)·선행(善行) 등이 수록돼 있다. 선현들의 언행 가운데 아동에게 모범이 될 내용들을 뽑되 ‘물 뿌리고 청소하며 어른을 대하는[灑掃應對]’ 일상의 생활 습관부터 바르게 하는 것을 강조한다. 효(孝)와 경(敬)을 제대로 익혀 자신을 온전하게 닦는 ‘수기(修己)’를 이룬 뒤에야 사회인이자 위정자로서 남을 다스리는 ‘치인(治人)’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왕조는 수기치인의 바탕으로써 소학 교육을 강조했다. 조선 초부터 향교(鄕校)를 비롯한 각급 학교의 학생들에게 소학을 온전히 익힐 것을 주문했다. 세종대에는 『소학』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다량으로 찍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조선시대 내내 과거 응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소학은 어린아이들이나 배우는 유치한 학문’이라고 여겨 외면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토였다. 이 때문에 실학자 유수원(柳壽垣)은 ‘지금 사대부들이 글을 조금만 알면 성리(性理)와 도학(道學)을 논하지만, 몸과 마음에서 체험한 것이 아니라 껍데기만 주워 형식만 꾸민 것이니 명성이 아무리 높아도 실제에는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신랄히 비판한 바 있다.

 바야흐로 체벌 금지 조처 이후 교육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청소년들을 통제할 그럴듯한 묘책을 아무리 짜낸다 한들 문제가 쉽게 해결될까? 당장 어른들부터 김굉필처럼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소학동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명기 명지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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